역시 명작(名作)이다.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력, 짜임새 있는 스토리, 감동과 전율을 오가는 넘버, 그리고 눈을 뗄 수 없는 무대장치까지. 무엇보다 이 월드 클래스의 공연이 한국 제작진의 주도하에 기획됐다는 점이 가장 놀랍다. 지난 10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에서 개막한 '지킬앤하이드 월드투어'는 한국의 오디컴퍼니와 미국의 워크라이트 프로덕션이 힘을 합쳐 새롭게 기획한 버전의 뮤지컬이다. 해외 투어의 첫 지역인 한국에서 자리매김한 이후 아시아, 유럽, 미국 등에서 공연을 이어나갈 계획.
스토리는 지난 1997년 브로드웨이에 입성한 원작을 충실하게 따라간다. 자신의 신념을 밀어붙이는 지킬과 이를 저지했던 위선자들을 처단하는 하이드를 통해 선과 악이 공존하는 인간의 이중성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여기에 엠마, 루시라는 두 여인의 비극적인 로맨스가 더해져 매혹적이면서도 안타까운 이야기들이 완성된다.
오디컴퍼니 대표인 신춘수 프로듀서의 리드 하에 새롭게 재탄생된 이번 공연은 인간의 심리를 파고드는 심도 있는 감정 묘사가 인상적이다. 특히 '나는 누구일까(No one Knows who I am)'와 같이 주인공들의 내면을 강조하는 넘버에서는 연기는 물론 연주, 음향, 조명 등의 디테일들이 집합된 표현력으로 관객들의 심금을 울린다.
'내가 원조'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극의 사실성을 강조한 점도 눈길을 끈다. 영국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당시의 클래식한 문화, 관념, 감성을 다양한 방법들을 통해 고증해냈다. 그리고 이는 한 번 들으면 잊을 수 없는 멜로디 넘버들과 어우러져 극의 몰입감을 높이는데 기여했다는 평이다.
참신함이 돋보이는 다이애나 디가모의 연기도 빼놓을 수 없는데, '아메리카 아이돌 시즌3'의 준우승자인 그는 천진난만함과 섹시함을 고루 지닌 매력으로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루시를 창조해냈다. 너무 클래식해서 기존 팬들에겐 자칫 지루할 수 있는 이번 공연에 색다른 활력을 불어넣는 소중한 존재다.
그리고 이러한 차별성은 지킬과 하이드를 광기 어린 연기로 소화해낸 카일 딘 메시가 있었기에 더욱 빛날 수 있었다. 그는 '지킬앤하이드'의 대표 넘버인 '지금 이 순간(This is the moment)'을 미성과 허스키함을 오가는 보이스와 몸부림 하나조차 허투루 하지 않는 디테일한 연기로 소화해내며 극의 중심을 단단하게 잡아줬다.
린지 블리븐 또한 우리가 그동안 상상했던 엠마를 무대 위에 그대로 옮겨놓아 감탄을 자아냈다. 다만 한 가지, 다수의 배우들이 한꺼번에 등장하는 군무신에선 아직 무대를 압도할 정도의 카리스마가 느껴지지 않아 다소 아쉬웠지만 말이다.
한국이 주도적으로, 그것도 이토록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 브로드웨이에 진출한는 점에서 매우 흥미로웠던 '지킬앤하이드 월드투어'. 한국 제작진, 브로드웨이 배우, 체계적인 프로덕션 등 3박자를 모두 갖춘 이 작품이 과연 전세계로 명성을 떨치며 한국 뮤지컬 역수출의 좋은 예로 남게 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한편 '지킬앤하이드 월드투어'의 서울 공연은 오는 5월 21일까지 계속된다. 약 2시간 50분. 8세 이상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