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줌마는 차승원과 아줌마의 합성이란다.
잘못된 언어 교육이다. 방송이 만들어내고 일반인들이 쓰다보면 언어를 자신들의 편의에 따라 재단하게 된다. 학교 교육이 도저히 따라갈 수 없다. 아무리 국어 교육을 학교에서 열심히 받는다 해도, 사람들이 TV를 보고 재미삼아 말장난으로 책임 없이 내뱉는다. 무책임한 방송에 의해 한두 사람에서 시작된 호기심어림 말들이 전염병에 걸린 듯, 온 국민들에게 악영향을 끼친다. 급기야 재외 동포들까지 물들고, 한국어를 외국어로 교육받고 있는 사람들까지 피해를 입는다. 일부 국어학을 전공한 교수들까지 이것은 일시적 유행 현상이라고 말들을 하지만, 그 정도와 숫자가 언어 규칙의 허용치 한계를 넘으면, 지금까지 잘 지켜오던 말들은 Text를 주고받는 문자 언어, 유희의 언어, 규칙보다는 변칙(變則)이 인정받는 사회언어가 된다.
오늘날 한국 사회 뉴스를 보면, 과거에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사건들이 매일 반복되어 이제는 무감각 상태다.
매국적인 국방비리 사건, 다양한 성추행, 세월호와 같은 총체적 끔찍한 대형사건, 과거 대통령들을 비롯한 현 정치인들의 비도덕적 리더십들은 규칙보다는 변칙이 만들어낸 총집합이다.
여러 아자미 이제 바랏 가애 갯고(諸姑今海畔) <初 杜詩諺解 8:38>
내 아자비 符節을 깨혀 가져 갯는 따히 갓가오니(諸舅剖符近) <杜詩諺解 1:56>
‘앚/앛-’ 어근을 상실한 채, 이상하게 결합된 ‘차줌마’는 언어 규칙상 설명이 불가능하다.
‘아줌마, 아저씨’는 내 아버지 어머니가 아니다. 주관적인 위치보다는 객관적인 위치의 의미에 서 있는 말들이다. 내 것이 아니라 제 3위 위치에 서 있는 단어이다. 유희적 단어로 사용해도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 모두 책임질 것이 없다. 그렇지만 생각을 달리해서 내 어머니, 아버지가 성(姓)과 결합되어 새로운 말을 만들어 낸다면 듣는 당사자는 감정이 상하게 되고, 말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도 어색한 분위가 될 수 있다.
사람들은 내 것이 개입되면 촉각이 곤두서지만, 남의 것이라면 무덤덤할뿐더러 책임 없이 생각하기도 한다. 내 나랏말이 놀림을 당하는데, 치유는커녕 돌림방하듯이 방관만하는 것은 무책임하다. 이상한 나라다.
조국의 아름다운 말들이 일개 방송, 특히 작가나 PD에 의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은 분명 슬픈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