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숭혁 교수(계명대 화학공학과)
월간 ‘음악저널’ 등의 칼럼니스트인 계명대학교
서숭혁 교수(화학공학)가 여름방학 동안 처형이 살고 있는 시애틀을 방문하고 귀국한 뒤 ‘시애틀
여행기’를 한국일보와 시애틀N에 보내왔다. 방문자나 여행객의 시각으로 본
시애틀의 모습을 감상문처럼 현대적 감각의 필체로 쓴 서 교수의 여행기를 4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 註]
고속도로이다. 처형이 운전을 하며 옆자리의 마눌님과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오랜만에 두 자매가 만나니 무슨 할 말이 그리 많은지 끝없이 대화를 이어가고 있다. 뒷자리에 앉은 나는 마치 경찰서에 이유 없이 잡혀와 노련한 두 형사가 꾸미는 무언가의 음모를 마냥 대책 없이
바라보고 있는 느낌이다. 소곤소곤 거리는 것 같기도 하고, 어쩔
때는 수군수군 거리는 것 같기도 하다.
심심하다.
이번 시애틀에서는 내가 장가를 ‘간’ 것이 아니라 장가를 ‘온’ 것 같다. 앞자리 두 자매는 계속 자기들만의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다. 뒷자리
나는 마치 투명 인간이 된 기분이다.
“투명 인간의 목소리는 투명할까?”라는
엉뚱한 의문이 들어, “마이크 테스트 중”하면서 헛기침을 하여 보았다.
전혀 반응이 없다. 정말 앞자리에서는 나의 투명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보다.
어쩌면 순간적이지만 내가 투명 인간으로 변하였는지도 모른다. 한국에
돌아가면 동생을 옆에 앉히고 형제가 같이 소곤소곤 또는 수군수군하며 부산에서 신의주까지 고속도로를 달리고 싶다.
물론 뒷자리에는 처형을 참고인 신분으로 배석시켜, 안과 의사인 내 동생이 비록 순간적이라도
투명 인간으로 변하는지를 자세히 관찰할 것임은 당연한 스토리이다.
갑자기 안 심심해 졌다. 페라리(Ferrari)로
보이는 빨간색 스포츠카 한 대가 마치 열대어가 슬슬 물을 차며 유영하듯 바로 내 오른쪽으로 지나가고 있었다. 오픈카의
운전자는 진한 선글라스를 낀 중년 여인이었다. 자세한 모습을 살펴보고 싶었으나,
스포츠카 운전자답게 우리 차를 슬슬 따돌리고 아쉽게도 점점 내 시야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무심코 차 뒤편을 바라보다 번호판을 보고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워싱턴주
번호판에 ‘Mrs BS’라고 씌어 있었다.(이 글을 이어가기
전에 혹시라도 실제 차 주인을 희화화하려거나, 또는 마초 같은 성적비하의 글을 쓰려는 의도가 전혀 아님을
미리 밝힌다.)
만약 BS가 내 폭소를 유발 시킨 ‘Bull Shit’을
의미하는 말이라면, Mrs BS는 우리말로 ‘개똥 여사’ 정도가 어울리는 표현일 것이다. 이 외에도 여러 가지 영어 약자가 될 수 있다.
일반적으로 큰 누이(Big Sister)가 될 수 있으며, 보다 전문 용어로는 영국 표준규격(British Standards), 이학 학사(Bachelor of
Science), 방송 위성(Broadcasting Satellite) 등의 약자로 쓰일
수 있다.
한편, 경제 용어로는 ‘After Service(AS)’와 대비하여 ‘Before Service(BS)’의
의미로도 쓰인다. AS에서는 먼저 상품을 구매하고 이에 따르는 고장 또는 불만족을 해결하여 준다.
반면 BS는 상품 구매에 앞서 제품을 직접 써보거나 충분히 경험해
본 다음 구매를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서비스 기법이다. 즉, 텔레비전
홈쇼핑에서 몇 주 동안 먼저 써 보고 언제든지 반품이 가능하다고 선전하는 것이 바로 BS 마케팅 기법
중의 하나이다.
그렇다면 이제 BS 기법을 결혼 제도에 도입한다면 어떨까? 일종의 ‘체험 결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나의 엉뚱한
상상 속의 결혼 제도를 불조심 표어로 나타내자면, “결혼하여 후회 말고 미리 한번 결혼하자”라는 의미가
된다.
조금 유치한 표현으로는, “직접 찍어 맛을 보고 된장인지
뭔지를 구별하라”는 의미도 된다. 무어라고? 신랑 또는 신부를
직접 찍어 맛을 보자고? 오싹하다. 그렇다면 앞서 말한 대로, 차 뒤편에 앉아 “장가를 갔네, 왔네”하며 또한 투명 인간이 어쩌고저쩌고하는
나는 즉각 반송 상품감일까? 절대로 아니다.
너무나도 당연히
결혼은 상품이 아니며, 어떠한 편리한 제도라도 인간의 절대 가치를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반송된다면 나는 따질 것이다. 왜 또 다른 마케팅 전략인 ‘Buy one, get one free’라는 판매 기법은 결혼 제도에 도입되지 않고 있냐고.
시애틀 고속도로에서 우연히 Mrs BS라는 번호판을 보던 7월 말쯤, 처형이 내게 한 가지 소식을 전해 주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우주인 이소연 박사가 며칠 뒤 결혼을 한다고 했다.
동향의
친동생처럼 지내며, 8월 2일 그녀의 결혼식 이후 신랑과
함께 집에 들르겠다고 했단다. 같은 과학인으로 조금은 놀랍고 아쉬운 소식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소연 박사가 촉망을 받는 여성 과학인에서 단지 평범한 일상 주부로 돌아가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천자문에서 우주(宇宙)를 ‘집 우(宇)’, ‘집 주(宙)’라고 읽듯이, 큰 우주와 같은 그녀의 인생의 꿈을 이제 시애틀의 집(가정)에 가꾸고자 하기 때문일 것이다.
한 가지 의문이 있다. 왜 그녀는 신랑으로 안과 의사를 택하였을까? 나와 같이 순간적으로나마 투명 인간으로 바뀌는 사람을 남편과 함께 찾아내고자 함이었는지도 모른다.
이소연 박사의 결혼과 그녀의 시애틀 정착 소식에 축하와 행운을 빈다.
<이소연 박사가 지난달 시애틀에서 강연한 뒤 어린이들과 기념 촬영하는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