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숭혁 교수(계명대 화학공학과)
월간 ‘음악저널’ 등의 칼럼니스트인 계명대학교 서숭혁 교수(화학공학)가 여름방학 동안 처형이 살고 있는 시애틀을 방문하고 귀국한 뒤 ‘시애틀 여행기’를 한국일보와 시애틀N에 보내왔다. 방문자나 여행객의 시각으로 본 시애틀의 모습을 감상문처럼 현대적 감각의 필체로 쓴 서 교수의 여행기를 4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 註]
변한
맛에 한국 ‘도루묵’이 생각나
같은
나이 또래의 처형을 미국에서 다시 만난 것은 꼭 10년만이다.
우리
부부는 이번 여행 중 시애틀 인근 도시에 있는 처형 집에서 얼마간 체류하기로 하였다. 도착하여 처형이
시애틀에서 가장 먹고 싶은 것이 무어냐고 묻자 나는 한 치의 주저함도 없이 ‘크램 차우더 스프(Clam Chowder
Soup)’라고 말했고, 처형 내외와 우리 부부는 시애틀 시내 항구 근처 파머스 마켓에
위치한 대표적 식당인 ‘파이크 플레이스 차우더(Pike Place
Chowder)’를 찾았다.
10년 전을 포함하여 시애틀에 들를 때마다 몇 번 찾았던 제법
눈이 익은 식당이다. 굴
튀김 요리와 함께 주문을 하였다. 동서 형님과 나는 서로 돈을 내겠다고 신용카드를 동시에 계산대에 내밀었다. 정이 많은 우리네들에게 익숙한 풍경이다.
나의 경험에 의하면 외국인
종업원 대부분은 이를 지켜보고만 있다. 서로 내겠다고 옥신각신하는 모습을 단칼에 정리하기는 어렵다. 사실 스스로 알아서 해결할 때까지 기다릴 수 밖에는 방법이 없다.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다. 괜히 끼어들었다가 십중팔구는 ‘None of your
business’라는 핀잔을 듣기가 십상이다.
이번에는 흥미롭게도 이를 지켜보던 금발의
여종업원이 우리에게 먼저 말을 걸어왔다. 그리고 단칼에 결론을 내려 주었다. 그녀의 해결 방법은 간단했다.
먼저
둘 중에 누가 시애틀에 사느냐고 물었다. 동서 형님이 본인이라고 대답하자, 다음에는 개인적으로 양해를 구하듯이 내게 눈을 찡긋하였다. 나도
그녀에게 눈을 찡긋하며 “GR Eat”라고 마치 암호 같은 답을 하였다.
영리한 그녀는 금방 알아차리고 “Yes, great”하며 내 크레디트
카드를 돌려주었다. 우리는 함께 웃었다. 식사
전 웃음은 나의 식욕을 더욱 기분 좋게 자극했다.
의자에 앉아 하늘을 보니, 해변을 날고 있는 갈매기의 날개가 오후의 햇살에 반사되어 눈부신 은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모든 것이 완벽한 식사 분위기였다. 부드러운 버터 향과 함께 쫄깃한
조갯살이 듬뿍 들어 있는 크램 차우더 스프에 크래커를 잘게 부셔 넣고 한 숟가락 입에 넣었다.
미국
아이들 표현으로 ‘Yummy’라는 감탄 소리가 저절로 나옴직하다. 그러나
비록 내색은 하지 않았으나, 이번에는 왠지 전과 맛이 달랐다. 무언가가
짜고 또한 무언가가 빠진 느낌이 들었다. 짠 맛을 줄이려고 크래커를 더욱 넣을수록 맛이 엉망이 되어
간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유지태는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하지만, 오늘 크램 차우더 스프는 “어떻게 사랑의 맛이 변하니?”하고 내게 묻고 있는 것도 같아 먹으면서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였다.
과연
옛날과 다른 점이 무엇일까?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생각하여 보았다. 우리가 잘 아는 ‘도루묵’ 이야기가 생각났다. 임진왜란 중에 선조는
한양에서 평안도로 바삐 피난을 간다. 왜적에 쫓긴 임금의 행차는 처량하였을 것이고, 먹는 것 역시 초라하기 짝이 없었을 것이다.
의주에서 한 백성이
선조에게 ‘묵’이라는 이름의 생선을 바친다. (어떤 글에는 바친 이가 유성룡이라고도 전해지기도 하며, 또한 동해안에서 잡히는 생선인 도루묵이 평안도 의주에서 등장하는 배경 자체가 단지 이름에 얽힌 우스개 이야기임을
암시한다.)
선조가 먹어보니 과연 맛이 너무 좋아 크게 칭찬을 하며 그 자리에서 ‘은어’라는 이름을
하사하였다. 임진왜란이 끝난 뒤 선조는 문득 이 생선 맛이 다시 그리워 은어를 청한다. 그러나 예전과 달리 맛이 없자 “도로 ‘묵’이라고 하라”고 하였고, 그
뒤로부터 이 생선은 도루묵이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선조의
‘도루묵’과 나의 ‘크램 차우더 스프’와는 서로 다른 내용의 이야기이나, 여기에 공통점이 있다면 ‘세월’
또는 ‘시간’이라는 점일 것이다.
저항과 반전의 가수 밥 딜런도 이제 나이가 드니 “Things have changed”라고 노래를 부르듯이, 인생에 있어서
‘세월’ 앞에서 영원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 날 저녁 집으로 돌아와 처형네와 맥주를 마시다 취기가
돌자, 내가 한마디 하였다.
“세상 사는 맛이 없군요.” 나는 여기에 사랑이라는 단어도 곁들였다. “아아, 세월이여, 아니 시간이여. 도루묵이라도
좋으니 나의 사랑을 되돌려다오.” 내가 영원히 좋아할 것 같았던, 나의
사랑 ‘크램 차우더 스프’의 맛이 사라져 버렸기에 하는 말이기도 하였다.
나의 진지한 신파조 대사에
처형이 나를 빤히 쳐다본다. 어쩌면 처형은 우리 부부에게 무슨 사랑의 문제가 있는지 오해하였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