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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1-14 08:36
[시애틀 수필-김윤선] 체온나누기
 글쓴이 : 시애틀N
조회 : 3,124  

김윤선 수필가(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 지부 고문)


체온나누기


와락! 녀석이 소파에서 부리나케 뛰어내리더니 안절부절, 거실을 뱅뱅 돈다. 어라! 불길한 예감에 얼른 기저귀를 갖다 댔다. 아니나 다를까, 녀석이 울컥 속을 토해냈다. 노란 구토물이다. 두어 번 더 울컥거렸지만 토하지는 않았다. 

그러자 제 딴에도 놀라고 지쳤는지 꼬리를 축 늘어뜨리고 망연히 서 있다. 다가가 입언저리를 닦아주고 가만히 품에 안았다. 녀석이 내게 몸을 맡겼다. 가만가만 배를 쓸어 주었다. 잠시 두 눈을 스르르 감더니 이윽고 슬며시 눈을 뜨고 나를 응시한다. 엄마, 나, 배 아파!

나는 지금 오십견을 앓고 있다. 어느 날 불시에 기습한 통증은 좀체 자리를 뜰 기색이 없다. 어깨는 깁스를 한 듯 딱딱하게 굳어서 팔을 올리지도, 내뻗지도 못한다. 옷 입고 벗기가 여간 고통스러운 게 아니다. 엊그제는 차에서 내리다 모서리에 어깨를 부딪쳤는데 정말이지 까무러칠 것 같았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같이 들어온 딸아이만 없었다면 엉엉, 소리내어 울고 싶었다.

아이들이 성장통을 겪으며 자라듯 나이 들어가는 일도 그러한가 보다며 애써 달래지만 왠지 서럽다. 지난밤엔 통증이 더욱 심해서 나도 모르게 끙, 끙 앓는 소리를 냈던 모양이다. 자다가 말고 남편이 내 어깨를 주물렀다. 굳어 있던 통증 부위가 풀리면서 한결 낫는 것 같았다.

녀석이 내게 몸을 기대던 생각이 났다. 그때 좀 더 꼬옥 안아줄걸. 딸 아이가 밤새 토하고 두통을 앓았다며 지금도 속이 매스껍단다. 매실청을 따뜻한 물에 타서 먹이고 뜸을 떴다. 그리고는 한숨 재웠다. 

딸아이가 자는 동안 흰죽을 묽게 쑤었다. 먹지 않겠다는 걸 얼러서 서너 숟갈 먹였다. 딸아이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엄마가 있으니 좋네, 전에는 종일 잠만 잤는데. 녀석 생각이 났다. 그때 좀 더 꼬옥 안아줄걸.

아플 때만큼 위로의 손길이 간절할 때가 없다. 그래서 환자는 공연히 서럽다. 녀석이 맥없이 내게 몸을 기댄 것도, 딸 아이가 씨익 웃었던 것도, 내 어깨 통증이 한결 나아진 듯한 것도 실은 제 설움 나누기였으리라. 

그런데 아버지가 여태껏 병상을 떨치고 일어나지 못하시는 건 혹 당신을 안아드릴 큰 딸이 없어서가 아닐까. 체온으로 전해주는 위로가 몇 알의 약보다 훨씬 효험이 있다는 말이 허튼소리가 아닌 듯해서 말이다.

어젯밤엔 늦게까지 책상 앞에 앉아 있었는데 불현듯 내려다보니 녀석이 책상 밑에서 자고 있었다. 추울세라 제 자리에 뉘어놓으니 또다시 쫄쫄 따라와 내 발밑에 쪼그리고 앉았다. 하도 기특해서 녀석을 안아 올려 무릎에 앉혔다. 그리고는 눈을 맞췄다. 녀석이 어리광부리듯 꼬리를 살랑거렸다.

하기야 제게 밥 먹여주고 똥오줌 뉘어주는 이가 누구더라? 그래도 이 공간에 저와 나, 둘뿐이라는 생각이 들자 애틋했다. 

녀석을 가슴에 꼬옥 안았다. 녀석의 체온이 내게 전해졌다. 녀석도 그러한지 꼼짝도 하지 않았
다. 녀석이 내 마음 속에 들어왔다. 삐걱거리던 글이 절로 이어졌다.

체온이 생명의 또 다른 표현이라면 체온을 나누는 건 생명의 기운을 나눈다는 뜻이다. 사랑의 농도가 진할수록 나누는 체온도 뜨거울 터, 삶의 열정이 되살아나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한 방에서 같이 자란 형제가 더 친하고, 한 이부자리에서 잠자는 부부의 사랑이 특별한 건 다 체온나누기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중생의 고통을 자신의 것으로 여겨 자비심을 잃지 않는 부처의 품이야말로 끝없는 체온나누기임에랴.

할레드 호세이니의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을 읽었다. 소설이라지만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이 당하는 고통의 역사물이었다. 전쟁으로 인해 의미없는 죽음들이 난무하고, 난민들이 줄을 잇고, 여자를 소유물로 여기는 곳, 그곳엔 삶과 죽음의 무게가 종이 한 장보다 가볍다. 

그렇지만 그곳에서도 여전히 삶이 계속되고 있다는 게 감동적이었다. 여인들을 안아 주고 싶었다. 아니 함께 보듬고 싶었다. 고통이 어찌 저들만의 것이랴.

한국에서 온 친구가 평창올림픽 마스코트인 수호랑과 평창패럴림픽 마스코트인 반다비를 선물로 가져왔다. 평창의 빙상까지 가져온 듯해서 코끝이 시리다. 수호랑은 서울올림픽 때의 호돌이가 생각나서 정겹다. 

도전과 열정, 그리고 수호의 의미란다. 그런데 어제 북한이 평창올림픽 참가를 결정했단다. 반갑다. 가출한 말썽꾸러기가 그래도 명절이라고 찾아온 느낌이다. 체온나누기가 우선이다. 얼싸안고 뒹굴다 보면 어느 새 가족으로 돌아와 있지 않겠는가. 격려와 위로의 진심어린 체온나누기야말로 가슴을 열 첫 번째 열쇠이기 때문이다. 개막식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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