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시애틀지사 고문
조용히 살았으면…
예상대로 본국의
‘세월호’ 페리참사 불똥이 사고발생 한달여 만에 미주 한인사회로 튀었다.
청천벽력, 전대미문, 천인공노,
후안무치, 언어도단 등 부정적 수식어를 모두 동원해도 표현 못할 민족적 비극에 더해
정부의 어처구니없이 졸렬한 수습 자세를 지켜본 한인들이 충격 받고 분노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로 인해
한인사회가 분열되는 것이 더 문제다.
LA, 뉴욕, 보스턴, 애틀랜타 등 미국의 일부 주요 도시에서
세월호 희생자들을 애도하고 박근혜 정부의 무능한 대처에 항의하는 한인 시위가 5‧18 민주화운동(광주항쟁) 24주년 기념일인 내일(18일)
오후 열릴 예정이다. 시애틀에서도 이날 오후 2시 다운타운 웨스트 레이크 센터에서 시위가 열린다고 ‘정상추’(정의와 상식을 추구하는 시민네트워크)가 밝혔다.
시애틀 시위계획이
발표된 직후 워싱턴주 한미 애국단체연합 소속 18개 보수단체들이 ‘시국선언’을 발표하고 “유족들과 온 국민의 아픔을 정치적, 이념적으로 악용하려는
반국가적인 어떤 시도도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하고 “대통령 사퇴운동이나 반정부 투쟁으로 사태를 호도, 악화시키려는 일부 불순세력의 자제를 강력히 촉구한다”고 덧붙였다.
한인사회 분열양상은 1주일전에 불거졌다. 뉴욕타임스 11일자에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박근혜 정부를 규탄하는 전면광고가 게재된 것이 불씨였다.
‘진실을 밝혀라’는 타이틀과 ‘왜 한국인들은 박근혜 대통령에 분노하는가’라는 소제목을 단 이 광고는 박 정부가 무능하고
태만하며, 언론을 통제 조작하고, 여론을 무시하며 국민감정을 조작한다고
주장했다.
항의시위보다
이 광고에 더 문제가 있다고 본다. 한국에 언론자유가 없어 뉴욕타임스에 광고를 냈다지만 광고내용은 한국 언론에서 신물 나게 본 것들이다. 일부 국영방송이 사실보도를 기피했다는 것도 이미 문제됐다. 뉴욕타임스의 규탄광고 내용도 고스란히
보도됐다. 국회의원이 대통령을 ‘바뀐애’라거나 ‘그년’이라고 말할 정도로 언론자유가 넘쳐난다.
왜 걸핏하면
한국인이나 한인들이 뉴욕타임스에 국내 이슈를 대문짝만하게 광고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세계적 권위지는 광고도 권위 있는지 몰라도 효과는 별개 문제다. 가수 김장훈이 2008년 뉴욕타임스에 ‘독도는 한국 땅’이라는 전면광고를 자비로 게재해 큰
박수를 받았다. 순수한 애국심의 발로였지만 한국정부의 독도정책과 방향이 너무 달랐다.
뉴욕 외에 베를린에서도, 시드니에서도 ‘독도는 한국 땅’ 광고가 등장했었다.
아마 일본인들이 내심 더 크게 박수쳤을 듯하다. 일본은 한국 국민의 ‘냄비감정’을
자극해 흥분시킴으로써 독도가 분쟁지역이라는 인식을 국제사회에 파급시키고 이를 근거로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한다는 게 기본 전략이다.
국제 영향력에선 일본이 한 수 위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 광고도, 내일 전국규모의 시위도 ‘미시USA’라는 한인 여성 포털사이트가 주도한다. 대부분 가정 주부인 32만명의 회원을 두고 있고, 그 중 4,000여명이 이번
광고를 위해 약 2주만에 목표액의 2배 이상인 13만8,000여 달러를 모았단다. 부럽다.
시애틀 한국일보는 2개월 넘게 연말 불우이웃돕기 캠페인에 매달리지만6만달러를 모으면 대성공이다.
미시USA처럼 능력 있는 단체는 한인사회의 큰 자산이다.
이 단체가 2~3세를 위한 장학사업이나 불우동포 돕기에 나서면 단체이름 이미지에
썩 잘 어울릴 것 같다.
굳이 광고를 내고 싶으면 “굶어죽는 400만
북한 어린이를 도와주세요”라든가, “한강의 기적을 보셨나요? 한국국민은
미국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같은 광고가 한인사회와 본국을 돕는 길이다.
그런 건 기대할 수 없고, 내일 시애틀 다운타운에서 벌어질 시위가 걱정이다. 검은 상복에 노란 리본을 단 그룹이 박근혜정부 타도를 외치면 맞은편에서 중장년 남자들이 “종북좌파 물러가라”며 맞고함을 지르는 모습이 상상된다. 한인사회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대다수 한인들은 제발 미국에서나마 이념싸움에 휘둘리지 않고 조용히 살고 싶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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