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로그인 | 회원가입 | 2024-04-27 (토)

시애틀N 최신 기사를 보시려면 여기를 클릭하세요

2021년 1월 시애틀N 사이트를 개편하였습니다. 열람하고 있는 사이트에서 2021년 이전 자료들을 확인 할수 있습니다.

시애틀N 최신 기사를 보시려면 여기를 클릭하세요


 
작성일 : 14-11-15 11:44
눈산조망대/ 던지니스 등대
 글쓴이 : 시애틀N
조회 : 4,992  

윤여춘 한국일보 시애틀지사 고문


던지니스 등대

 
걷는 건 나도 꽤 잘하는 편이라고 내심 뻐기다가 코가 납작해졌다. 나흘 전 11마일을 걷고 탈진해 주저앉았다. 고산을 오른 것도 아니고 평지 5.5마일을 왕복했다. 그 평지 길이 사실은 모래톱과 자갈밭이었다. 내 행선지 리스트에 오래전부터 올라있던 스큄(Sequim)의 ‘던지니스 스핏’이다. 스핏(spit)은 삐져나온 모래톱을 뜻한다. 순수 우리말로는 ‘곶’ 이다.

던지니스는 스큄 북쪽의 작은 어촌이다. 맛좋은 ‘던지니스 게’의 특산지다. 거기서 완 데 푸카(Juan De Fuca) 해협 한 가운데로 좁은 모래톱이 길게 뻗어 있고, 그 끝에 하얀 등대가 가물가물 보인다. 우리 목적지이다. 던지니스는 1790년 이 해협을 통과하며 이상한 지형을 본영국 탐험가 조지 밴쿠버가 영국해협의 던지니스 갑()과 닮았다며 붙인 지명이다.

자연발생의 모래톱으로는 미국에서 가장 긴 던지니스 스핏은 그 전체가 자연생태 보호구역이다. 그래서 연방정부가 관리한다. 이곳에선 비오리, 독수리, 부엉이, 물떼새, 도요, 흑기러기 등 조류 250여종을 볼 수 있고 그중 91종이 서식하는 것으로 확인됐단다. 조류뿐 아니라 게, 조개, 굴이 개펄에 넘쳐나고 물개, 바다사자 등 포유동물도 출몰한다고 했다.

주차장에서 반마일의 울창한 숲길을 따라 비탈길로 내려오자 모래톱이 시작됐다. 아침산책 나온 엘크 한 쌍이 입구에서 환영해준 뒤 잽싸게 숲속으로 사라졌다. 썰물을 따라 드러난 해안의 모래톱과 자갈길을 걷기 시작했다. 표류 고목들이 쌓인 오른쪽 둔덕은 통행금지다. 그 너머 물결이 비교적 잔잔한 던지니스 베이 쪽 스핏이 생태의 보고이기 때문이다.

청명한 늦가을 날씨였지만 바람이 심했다. 인적이 전혀 없었다. 파도에 휩쓸린 해초 잔해들이 휑한 모래톱 위에 낙엽처럼 뒹군다. 표류 나목 위에 누군가가 돌멩이를 차곡차곡 쌓아 놨다. 지루했던 모양이다. 눈알 빠진 새끼물개의 사체가 모래톱에 엎드려 있다. 이따금 해협을 지나가는 거대한 컨테이너선들도 느릿느릿 기어간다. 마치 시간이 정지한 듯하다.

그렇게 얼마를 걸어가자 스핏이 오른쪽으로 약간 굽으면서 비로소 눈 덮인 Mt. 베이커를 배경으로 수평선의 빈들 한가운데 선 하얀 등대가 시야에 들어왔다. 손톱만큼 작다. 스핏 자체는 달라진 게 없다. 바람소리, 파도소리, 물새소리 외에 적막강산이다. 열심히 걷지만 등대는 좀체 가까워지지 않는다. 그 정도 지점에서 되돌아서는 사람이 많다고 들었다.

두 시간 반 이상 걸은 끝에 등대에 도착했다. 경내 파란 잔디밭이 깔끔하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자 할머니 등대지기가 반갑게 맞아준다. 우리 부부가 그날의 첫 방문객이라고 했다. 거의 160년된 등대의 역사를 보여주는 전시실과 박물관 방이 있다. 스핏의 수집품들을 모아놓은 ‘발견 방’에는 일본 쓰나미 후 태평양을 건너온 ‘天然水’ 브랜드 물병도 있다.

한 사람이 겨우 오를 수 있는 나선형 계단을 통해 등대 탑에 올라가자 망원경으로 사방을 관찰하고 있던 그녀의 남편이 환영해줬다. 18마일 북쪽의 캐나다 빅토리아가 손끝에 잡힐 듯하다. 60대 후반의 오리건 주민인 이들 부부는 던지니스 등대협회 회원으로 1인당 350달러의 회비를 내고 1주일간 등대지기로 자원봉사한다며 우리에게도 해보라고 권했다.

그들처럼 세상과 떨어져 탁 트인 경관만 바라보며 살고 싶었다. 아담한 살림집이 따로 있었다. 등대 앞의 방향표시대로 ‘적막(Serenity)’을 떠나 5마일 밖의 ‘현실(Reality)’로 되돌아오며 옛 노래가 머리에 떠올랐다. “얼어붙은 달그림자 물결위에 자고/ 한겨울의 거센 파도 모으는 작은 섬/ 생각하라 저 등대를 지키는 사람의/ 거룩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마음을…”

올 때와 달리 돌아갈 때는 여러 사람과 마주쳤다. 대부분 노인과 청소년들이다. 하지만 관광객이 아니었다. 손에손에 비닐백을 들었다. 파도에 휩쓸려온 쓰레기를 청소하는 자원봉사자들이었다. 힘들고 지루한 5마일을 오물을 주우며 가는 그들의 뒷모습이 아름다웠다. 모처럼 별천지에서 선한 사람들을 많이 만난 그날, 다리는 무거웠지만 마음은 가벼웠다.

**윤여춘 고문의 <눈산조망대> 목록을 보시려면 아래를 클릭


 
 

Total 330
번호 제   목 글쓴이 날짜 조회
90 눈산조망대/ 시간은 어디로 가나 시애틀N 2014-12-27 6666
89 눈산조망대/ 말과 혀로만 아니라… 시애틀N 2014-12-20 4563
88 눈산조망대/ 연말을 음악과 함께 시애틀N 2014-12-13 4835
87 눈산조망대/ 누드촌 사람들 시애틀N 2014-12-06 7130
86 눈산조망대/ 후미꼬 할머니 시애틀N 2014-11-29 5079
85 눈산조망대/ ‘믿거나 말거나’ 시애틀N 2014-11-22 4982
84 눈산조망대/ 던지니스 등대 시애틀N 2014-11-15 4994
83 눈산조망대/ 어지러운 세상 시애틀N 2014-11-08 4842
82 눈산조망대/ 작심하고 찍자 시애틀N 2014-11-01 4729
81 눈산조망대/ 시애틀의 브루스 시애틀N 2014-10-25 5083
80 눈산 조망대/ 땅속으로 간 등산 시애틀N 2014-10-18 5777
79 눈산조망대/ 콜럼버스 좋아하세요? (1) 시애틀N 2014-10-11 4672
78 눈산조망대/ 하늘 아래 첫 우체통 시애틀N 2014-10-04 4935
77 눈산조망대/ 건재한 미국의 ‘God’ 시애틀N 2014-09-27 5260
76 눈산조망대/ 갈라서선 못 살아 시애틀N 2014-09-20 4666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About US I 사용자 이용 약관 I 개인 정보 보호 정책 I 광고 및 제휴 문의 I Contact Us

시애틀N

16825 48th Ave W #215 Lynnwood, WA 98037
TEL : 425-582-9795
Website : www.seattlen.com | E-mail : info@seattlen.com

COPYRIGHT © www.seattlen.com. ALL RIGHTS RESERVED.
상단으로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