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춘 한국일보 시애틀지사 전 고문
늙기도 설워라커든
신정 이후 줄곧 시치미를 뗐지만 이제 구정까지 쇠었으니 또 한 살 늘었음을 부인할 핑계가 없다. 올해는 음력설이 빨라 나이도 더 서둘러 먹은 느낌이다. 노인들이 아무리 손사래를 쳐도 춘추(春秋)는 춤추듯 달음박질 해온다. 시답지 않은 노인네 넋두리지로 들리겠지만 공감할만한 사람이 한국과 미국에 도합 6,000여만명이나 있다는 사실이 그나마 위안이 된다.
한국정부의 지난해 말 통계에 따르면 65세(노인으로 공식 인정받는 나이) 이상 인구가 802만6,915명으로 집계됐다. 주민등록부를 기준으로 조사해 상대적으로 정확하단다. 전체인구(5,184만9,861명)의 15.5%가 노인이라는 얘기다. 미국은 2017년 센서스에서 65세 이상 인구가 약 5,100만명을 헤아렸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노인이 인구 7명당 1명꼴을 넘어섰다.
그러고 보니 진짜 문제는 내가 빨리 나이를 먹는다는 게 아니라 나 같은 노인네들이 빨리 늘어나는 것이다. 지난해 한국의 전체인구는 전년보다 고작 2만3,802명(0.05%) 늘어났지만 65세 이상 노인인구는 1년 새 37만6,507명이나 불어나 역대 처음으로 800만명 선을 돌파했다. 유소년인구(640만6,872명)보다 156만여명 더 많아 그 격차가 전년보다 50% 이상 커졌다.
현재 15.5%인 노인인구 비중이 20년 뒤(2040년)엔 33.9%로 2배 이상 뛰어 세계 2위가 될 전망이다. 그 5년 뒤(2045년)엔 37%로 더 늘어나 세계에서 가장 늙은 나라가 된다. 2067년엔 46.5%까지 치솟아 세계 평균 노인비중인 18.6%는 물론 2위 대만(38.2%)과 3위 일본(38.1%)을 압도하게 된다. 고령화 속도에서 한국이 세계평균(9.5%)보다 5배 정도 빠른 셈이다.
설상가상으로 한국의 생산연령 인구비율은 현재 72.7%이지만 35년 뒤(2055년)엔 50.1%로 줄어들어 세계에서 가장 낮아지고 2067년엔 45.4%까지 떨어진다. 노인인구 증가속도도, 생산연령인구 감소속도도 모두 세계 1위다. 한국인구 자체가 고질적 저출산 때문에 현재 5,200여만명(세계 28위)에서 2067년엔 3,900여만명으로 줄어 세계 56위로 곤두박질할 전망이다.
자연히 노인부양비가 걱정된다. 지난해 노인부양비는 생산연령 인구 100명당 노인 20.4명꼴이었다. 젊은이 5명이 노인 1명을 부양했다는 얘기다. 그러나 2067년엔 노인부양비가 102.4명으로 5배 가까이 늘어난다. 젊은이 1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하는 비율로 역시 세계에서 가장 높다. 유소년 인구까지 합하면 같은 기간 총 부양비는 37.6명에서 120.2명으로 증가한다.
미국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65세 이상 인구가 2007년 3,780만명에서 2017년엔 5,090만명으로 늘어났다. 2060년엔 9,470만명으로 더 폭증할 전망이다. 10년 뒤(2030년)엔 모든 베이비부머들이 65세 이상이 된다. 전체국민 5명 중 1명이 시니어라는 뜻이다. 15년 뒤(2035년)엔 65세 이상 인구가 7,800여만명에 달해 18세 미만 미성년자(7,670만명)를 앞지르게 된다.
백수노인들이 늘어남에 따라 한국에서처럼 노인부양비가 사회이슈로 부상한다. 현재 젊은이 3.5명당 노인 1명꼴인 비율이 2060년엔 2.5명당 1명으로 줄어든다. 연방정부의 사회보장연금(소셜시큐리티)은 돈줄이었던 베이비부머들이 대거 은퇴함에 따라 올해부터 수입보다 지출이 많아진다. 2030년대 중후반께 소셜시큐리티 기금이 바닥 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노인인구 증가와 함께 노인병 환자도 늘어난다. 현재 580여만명인 알츠하이머 환자가 2050년엔 1,380만명으로 폭증한다. 양로병원 신세를 져야하는 65세 이상 노인도 2017년 120만명에서 2030년엔 190만명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이들의 섭생과 치료를 위해 지출되는 소셜연금과 메디케어 비용이 현재도 국내총생산의 8.7%를 차지하지만 2050년엔 11.8%로 증가한다.
늙고 병든 노부모를 국내외에 유기하는 불효자식들이 요즘 한국에 늘어난단다. 현대판 ‘고려장’이라지만 정작 고려시대엔 그런 못된 풍속이 있지도 않았다. 현재 한국인 중간연령은 42.6세다. 아마도 고려 때 노인 나이일지 모른다. 기대수명이 82.5세인데다 ‘100세 인생’을 구가하는 세상이 됐으니 노부모를 유기하는 ‘한국장’이 유행할까 노파심 아닌 ‘노옹심’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