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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4-04 01:49
[시애틀 수필-이한칠] 봄 산행
 글쓴이 : 시애틀N
조회 : 2,750  

이한칠 수필가(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 지부 회원)

봄 산행

풋풋한 꽃 향내가 난다. 시냇가에서는 경쾌한 봄의 소리도 들린다. 아기자기한 매화를 뒤이어 수선화, 튤립, 자두꽃, 그리고 배꽃도 앞다투어 봄을 보여 준다. 어느덧, 코와 귀 그리고 눈까지 즐겁게 해주는 봄의 한 가운데 서있다. 

겨울의 매운 냉대를 잘 벋대어 참고 견뎌낸 봄의 손짓에 응답하듯, 나도 큰 기지개를 켠다. 만물이 소생, 거듭나는 모양새로 새로운 출발을 알려 주는 봄이 있어 참 좋다. 그런 봄을 업어라도 주고 싶다.

봄 산행을 나선다. 사시사철 산을 즐기니, 겨울의 우중산행이나 눈신 산행도 스스럼없지만, 오늘은 발걸음이 한결 가볍다. 

계곡 부근에는 묵은 거목에 겨우내 내린 비와 따뜻한 날씨 덕에 싱그러운 연초록 이끼가 무성하다. 가지마다 축축 늘어진 모양새가 영락없이 예술 작품이다. 계곡 아래 이래저래 생긴 잔돌들은 흐르는 물줄기와 한 몸이 되어 재잘재잘 신이 났고, 그 곁에는 우람한 바위들이 그들을 지켜 주는 듯 떡 버티고 있다. 

산기슭에는 쭉쭉 뻗은 젊은 전나무들이 셀 수 없이 빼꼭하다. 잘 훈련된 정예대군(精銳大軍)처럼 그들의 원기는 하늘을 찌른다. 나는 봄이 내뿜는 새로운 정기를 가슴에 가득 담는다.
 
산행은 우리의 삶을 똑 닮았다. 경사가 완만한 산행로가 있는가 하면 험준한 곳이 있고, 내려가기도, 올라가기도 해야 하는 모습이 그렇다. 나무나 들풀, 바위 그리고 꽃 같은 아름다운 것을 만나기도 하지만, 때로는 거친 계곡의 돌다리를 조심조심 건너야 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면서, 여기저기 도사리고 있는 어려움으로 말미암아 이것저것 살피며 신중해야 하는 것과 똑같은 그림이다. 

정상을 앞두고 예상하지 못한 가파른 곳을 만날 때가 있다. 흔한 말로 마지막 한고비, 깔딱 고개이다. 험한 고갯마루를 오르기 어려워 주저앉아 정상 도전을 포기하기도 한다. 

그 모습이 어찌 그리 우리네 삶과 꼭 같을까. 깔딱 고개에 맞닥뜨렸을 때, 함께 한 일행들이 격려해주는 힘으로 정상에 오를 수 있듯이, 우리의 인생에서도 어려움에 부닥쳤을 경우, 주위의 따뜻한 배려가 꼭 필요하다. 누구에게나 크기와 모양이 다른 그런 고개는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용기나 의욕을 북돋아주며 다독여 줄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어, 잘 넘긴 그 깔딱 고개는 우리의 인생을 더욱 풍요롭게 해줄 것이다.

어쩌다 난도가 높은 산을 오를 때, 전문 산악인이 아닌 나는 각오를 단단히 한다. 산을 오르는 일에 몰두하다 보면 주변을 살필 겨를이 줄어든다. 숨을 고르고 내 걸음 속도를 유지하여 정상을 향해 힘들게 오르다 보면, 주위의 경치를 보는 것도, 때론 일행을 보살피고 챙기는 것도 놓친다. 내 코가 석자인 셈이다. 

그러고 보면 현실에서도 내 일로 앞만 보고 달려갈 때, 주변을 살피며 함께 해야 하고, 챙겨야 할 부분을 놓친 적은 없었는지 돌이켜 볼 일이다. 

드디어 산꼭대기에 섰다. 내가 해냈구나. 뿌듯한 감동이 잔잔하게 여울진다. 주변에 드리워진 새털구름, 눈 아래에 펼쳐져 있는 청록색의 넓은 호수는 한 폭의 수채화이다. 사방으로 탁 트인 풍광이 시원하고 빼어나다. 

온 세상을 다 안은 듯하여 가슴이 벅차오른다. 땀을 흠뻑 쏟으며, 고비마다 어려움을 함께 견뎌낸 일행들의 표정에서 어느새 우애지정은 두터워져 간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어려울 때 함께 해준 친구와 새록새록 정이 깊어가는 것과 진배없다.

하산하는 길이다. 산을 오를 때에 보지 못했던 정경이 새롭게 펼쳐진다. 우리가 언제 이렇게 아름다운 곳을 지나왔지, 또 어떻게 이런 험한 길을 올라왔을까? 계곡의 가느스름한 물소리도 들리고, 노목 등걸 위에 청초히 앉아 있는 연초록 새싹이 새롭다. 

산을 오를 때에 비해 세세한 것까지 보이니, 하산 길이 재미있다. 올라갈 때와 딴판으로 발걸음이 가볍다. 주변의 아름다움을 카메라에 담기도 한다. 정상을 힘들게 오른 뒤의 여유일까. 아마 하고자 했던 나름대로 목표를 성취한 뒤에 갖는 여유로움과 같은 것일 게다. 

쉬운 하산길일지라도 방심은 금물이다. 때로는 긴 하산길에서 순간 한눈팔거나 서둘다가 넘어지기도 한다. 산을 오를 때보다 너무 쉽게 생각한 탓이지 싶다. 살면서 뭔가를 이루고 난 뒤에도 겸손해야 한다는 교훈이 여기에 있다.

내가 산행을 즐기는 이유는, 오르고 내려오며 내 인생의 한 편을 매번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온갖 것이 거듭나 새 출발을 알려 주는 봄, 오늘 같은 봄 산행은 더욱 진한 행복을 느끼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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