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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4-16 11:38
[시애틀 수필-이 에스더] 라벤더 꿀향
 글쓴이 : 시애틀N
조회 : 3,531  

이 에스더 수필가(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 지부 회원)

라벤더 꿀향

또 재채기다. 화사한 봄의 어두운 그림자, 알레르기 탓이다.
눈을 계속 비벼대며 콧물로 범벅이 된 화장지를 휴지통에 구겨 넣는다. 내가 사는 지역에서 채취한 꿀을 먹으면 알레르기가 없어진다는 말에 귀가 번쩍 띄었다. 다행히 동네 가까운 곳에서 꿀을 구할 수 있었다. 열심히 꿀을 먹었더니 과연 콧물이 멎고 재채기가 사라졌다.

꽃향기 그윽한 앞마당에 부지런한 벌들의 비행과 나비들의 춤사위, 꽃물을 빠는 작은 벌새의 날갯짓이 바쁘다. 문득 꽃밭에서 놀다가 벌에 쏘여 울던 어릴 때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때 얼마나 아팠던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벌을 보면 더럭 겁부터 나곤 했다. 그런데 벌꿀 덕분에 알레르기에서 벗어난 지금, 벌이 그저 고마운 친구처럼 반갑다.

알레르기는 면역체계의 이상으로 나타나는 증세라고 한다. 전에 없던 알레르기가 생긴 것은 내 안에서 문제가 생겼다는 뜻일 게다. 다행히 벌꿀 덕에 겉으로 드러나는 재채기와 눈의 가려움증은 사라졌지만, 요즘 들어 속에서 터지는 알레르기 증세는 커다란 꿀단지로도 해결할 수가 없다.

멀리 있던 두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오자, 조용했던 집안에 활기가 넘쳐났다. 아이들을 위하여 음식을 준비하고 가족이 오랜만에 함께 하는 시간이 즐거웠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상기류가 감지되었다. 매사에 또랑또랑 제 목소리를 내는 아이들이 처음에는 대견하게 여겨지더니 갈수록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마음 한 구석에서 돋아나는 불편한 심기의 정체를 알지 못해 혼돈스러웠다

어려운 손님 치르듯 몸과 마음이 피곤해지기 시작했다. 엄마와는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는 말에 패인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혼자서 속병을 앓다가 결국은 남편 앞에서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벌에게 쏘인 듯 쑥쑥 아리고 벌겋게 부어 오른 속내를 감추지 못해 비틀거리는 내 모습이 낯설다.

흔들리는 엄마의 뒷모습을 보는 아이들 역시 알레르기를 앓고 있는 것 같다. 이미 생긴 간극을 더 넓히고 싶지 않아서일까. 엄마를 바라보는 아이들의 눈 속에도 안타까움이 일렁인다

가끔 스치는 아이들의 손끝에는 여전히 부드러운 온기가 있고, 어미의 손을 잡고 싶은 여린 마음이 느껴진다. 그럼에도 나는 아이들 앞에서 재채기를 하고 있다. 눈이 가렵고 콧물이 멈추지 않는 심한 알레르기를 속으로 앓고 있다.

벌들은 제 먹었던 것을 토해내어 꿀을 만든다. 작은 벌집 하나에 꿀을 채우기 위해서 벌들은 꽃을 찾아 얼마나 오랜 비행을 해야 하는지 모른다. 또 집에 돌아와서는 토악질을 해야 한다. 어렸을 때 심하게 체한 내가 할머니의 손에 이끌려간 곳은 체 내리는 집이었다

거기서 나는 속이 뒤틀려 창자가 끊어지는 듯하고 눈알이 쏟아질 것 같은 토악질을 했다. 벌꿀이 몸에 좋다고 열심히 먹으면서도 끊임없이 토해내야 하는 일벌들의 고통을 나는 생각해 보지 못했다. 비록 미물일지라도 생명 있는 것들의 아픔이 응집된 것이기에 꿀은 인간의 고통까지도 다스릴 수 있나 보다.

큰 애가 유럽여행길에 사온 것이라며 라벤더 꿀이 든 예쁜 유리병을 보내왔다. 아이가 사는 먼 곳, 동쪽으로 난 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지나가던 햇살이 유리창 너머에서 손짓을 한다

밖으로 나가 햇살과 나란히 벤치에 앉았다. 이제 막 속을 비워내고 벌집을 나선 벌들이 춤을 추고 있다. 잉잉거리는 벌들의 날갯짓 속에서 어떤 노랫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눈을 감고 귀를 크게 열었다.

‘됐다 됐다 토해 봐, 가볍고 가볍지, 높이 높이 날아봐, 아름다운 날.

꿀벌들의 노래 속에 세 아이들의 목소리도 함께 들려왔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 큰애가 보내온 라벤더 꿀이 있었지.

꿀물을 탔다. 코끝에 와 닿는 라벤더 향이 속 깊은 큰애의 손길 같다. 가슴으로 스며드는 부드러운 향에 심한 체증이 가신다. 둘째에게 따뜻한 꿀물을 건네며, 나는 아이의 볼을 쓰다듬었다.

 “엄마 때문에 힘들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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