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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2-26 14:09
[시애틀 수필-안문자] 우리 고모
 글쓴이 : 시애틀N
조회 : 6,767  

안문자 수필가(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 지부 회원)
 

우리 고모

 
나는 조카들에게 고모이고 이모다
어머니는 외딸이어서 우리 형제들에게는 이모가 없다. 이모, 이모하며 따르고 이모들이 잘해주는 친구들을 보면 지금도 부럽다. 나도 조카들에게 좋은 이모, 고모가 되고 싶었는데 잘하지 못했다

이젠 조카들이 다 자라서 가까이, 또는 멀리서 제 몫을 충실히 하고 있으니 좋은 소식을 들을 때마다 기쁘고 감사하다. 꼬마 조카들이 구술 같은 목소리로 작은 고모! 문자 이모!’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우리들에게는 세 분의 고모님이 계셨다. 평양에서의 일이라 이남에서 출생한 밑의 두 동생은 고모들을 모른다. 시골 부루리라는 동네에 살아서 부루리 고모라고 불렀던 둘째 고모는 일찍이 병으로 돌아가셨고 큰고모도 역시 시골인 고장골에, 막내 고모는 평양의 우리 집 옆에서 사셨다.

어머니는 막내 고모가 시누이인데도 친구처럼 다정하게 지내셨다. 하루는 두 분이 할머니 몰래 머리를 지지고(파마)오셨는데 숨기려고 수건으로 가렸지만 할머니에게 들켜서 야단을 맞으셨다

‘아니, 그 머리를 어드르케 한 거가? 이놈의 세상이 어찌 되려고 그러는디 원, 기생들이나 하는 짓을, 쯧쯧.’엄마와 고모가 머리를 조아리면서도 마주보며 살짝 웃으시던 모습이 떠오른다

꼬마였던 나는 갸름한 쇠 두루마리 속에 숯불을 넣어 지졌다는 꼬불꼬불한 머리가 신기하고 예쁘기만 한데 할머니는 왜 화를 내시지? 했었다. 어머니는 고모들과 함께 피난오지 못한 것을 두고두고 한탄하셨다. 나는 피난지 대구에서 혹시 고모들이 오시지 않을까? 기다려 보기도 했다.

큰 고모는 막내 동생인 우리 아버지가 앞으로 목사가 될 사람이라고 자랑스러워하며 특별히 사랑하셨다고 어머니가 여러 번 이야기하셨다. 고모가 가끔 우리 집에 오실 땐 명절보다 더 신이 났다. 이고 지고 양손에 가득했던 선물꾸러미 때문이었다

끝없이 쏟아지던 맛있는 것들은 마치 흥부의 박을 쪼개놓은 것 같았다. 빨갛고 파란 줄이 그어진 눈깔사탕, 두툼하고 동그란 찐빵, 빨래판만 하던 인절미, , 깨강정, 복숭아, 사과… 때론 붉은 술을 흔들어대며 꼬꼬댁 대던 장닭하며, 왕방울만한 대추와 까맣게 반짝이던 밤이 와르르 쏟아지곤 했으니까. 고모가 거칠어진 손으로 우리들을 쓸어안을 땐 엄마하고 또 다른 깊은 맛의 푸근함으로 행복했었다. 그러기에 세상의 고모들은 다 우리 고모 같은 줄 알았다.

큰 고모는 예수를 믿지 않는 부잣집으로 시집을 가셨다. 시아버지는 동네가 다 아는 술주정뱅이셨고 고모부는 너무 착하기만 해서 고모가 그 큰살림을 도맡아 집안을 이끌어 가셨다. 할머니와 우리 아버지가 흐뭇해하셨던 일이 있었다

고모가 주정뱅이 시아버지와 고모부, 시댁식구들을 다 전도하여 독실한 신자들이 되게 하신 것 말이다. 고모는 시아버지를 정성으로 섬겼고 살림을 알뜰하게 하셨다. 뿐만 아니라 선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예수 믿는 삶의 본을 보였기에 온 동네 사람들에게도 전도가 되었다

동네의 어른으로 사랑이 많은, 어려운 이웃들을 도와주던 고모의 삶이 존경스러워 한 가정도 빠짐없이 예수를 믿게 되었다고 했다. 그 작은 고장골에도 교회가 세워진 건 당연하다.

우리 아버지가 어느 날 새벽, 산책하다 큰 누님이 생각나셨다. 그래서 <새벽 산보>란 시를 쓰셨는데 ‘이제 와서 옛일은 생각해 무엇 하나’ 이 대목을 읽을 때마다 아버지의 슬픈 마음이 느껴져 눈시울이 뜨거워지곤 했다
 
새벽산보 하다가/ 갑자기 가마타고 시집가던 누나 생각이 났다/
보리 밭 고개로 가다가 사라질 때/ 엄마 울고 나 울던 옛날 생각이 갑자기 났다/
바보처럼, 이제 와서 옛 일은 생각해 무엇 하나/ -중략-

 
큰 고모는 어린 우리들에게 진한 가족의 사랑을 보여주셨다. 어려서는 맛있는 것들 때문에 고모가 좋았지만 지금은 형제들과 어린 조카들을 끔찍이도 사랑하셨던 애틋한 마음을 느낄 수 있다. 내리사랑의 참 모습을 보여주신 분이다지금 세상에도 이토록, 진정으로 형제들을 도와주고 조카들을 사랑하는 고모가 있을까?

어머니는 ‘나처럼 시누이를 좋아한 올케는 아마 이 세상에 없을 게다. 누구보다 보고 싶은 사람이 너희들의 두 고모야’ 라고 하셨다. 생전에 한번 만이라도 만나 보았으면 원이 없겠다고 슬픈 얼굴이 되시곤 했다. 지금은 하늘나라에서 그토록 사랑하시던 동생과 올케를 만나 지나온 세월의 회포를 풀며 기쁨의 눈물을 닦아주고 계시려나?

나도 우리 고모 같은 이모, 고모가 되고 싶었는데… 형제들을 사랑하면 조카들도 예쁘다. 형제들과 의가 나쁘면 조카들도 남처럼 되고 말테지. 생각만 해도 쓸쓸다. 조카들이 어른이 되고 나는 늙어가도, 언제나 보고 싶은 문자고모, 문자이모가 되고 싶었는데… 세월은 너무 빨리, 너무 멀리 가버렸다. 나는 이미 우리 큰 고모의 나이보다 더 먹고 말았구나.

고목을 위로하는 눈부신 꽃잎 사이로 향긋한 희망의 열매들이 익어가듯 아, 이젠 그들이 나에게 기쁨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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