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문화방송(MBC)과 한국방송공사(KBS) 양대 공영방송의 노동조합이 경영진의 퇴진과 '공영방송의 정상화'를 내걸고 공동 총파업에 돌입한 지 50일째를 맞았다.
뉴스, 시사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예능 프로그램까지 방송이 중단되고 파업이 장기화되면서 양대 공영방송의 노동조합이 파업을 하고 있는 이유와 그들의 요구 사항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도 집중되고 있다.
'공영방송의 정상화'라는 기치를 걸고 진행되고 있는 양대 공영방송 노동조합의 파업 배경에는 지난 2008년부터 10년 가까이 쌓여왔던 노·사간의 뿌리 깊은 갈등이 자리하고 있다.
◇2008년 '광우병 파동'부터 시작된 MBC 파업 불길
MBC 파업의 시발점은 지난 20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8년 4월29일 MBC의 PD수첩은 '긴급취재! 미국산 쇠고기, 과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편을 방송한다. PD 수첩의 방송은 여론에 큰 영향을 미쳤고 당시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은 깊어졌다.
그런데 PD수첩이 일부 영문자료를 오역해 보도하고 이에 대해 논쟁이 일면서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그해 7월 MBC에 대한 제재를 결의한다. 또 보도를 이유로 PD수첩 제작진이 정운찬 당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에게 명예훼손과 영업방해 혐의로 고소당하고 제작진이 체포되는 등 MBC에 대한 정부의 압박 수위는 높아졌다.
이후 대법원까지 가는 소송에서 PD수첩 방송분의 일부 내용이 오역됐다는 사실은 인정됐으나 명예훼손과 영업방해 혐의는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런 과정에서 2010년 여당 측 인사가 과반이 넘는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이사회에서 김재철 청주MBC 사장을 신임 MBC 사장에 선임하자 노조는 즉각 김 사장이 정부의 언론장악 목표를 위해 내려온 '낙하산 인사'라고 반발하며 퇴진을 요구했다. 미국산 쇠고기 문제 등 정권에 비판을 제기하는 MBC를 탄압하기 위해 정부가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인사를 내려보냈다는 것이 노조 측의 주장이었다. 이어 김 사장이 노조가 반대하는 황희만 특임이사를 부사장으로 임명하자 이에 반발해 파업에 돌입했다.
MBC본부에 따르면 당시 파업에 참여했던 노조원들이 징계를 받고 원래 업무와 전혀 상관없는 부서에 배치되는 등 인사상 불이익을 받거나 해고되는 사례가 속출했다.
이에 2012년 MBC본부는 다시 총파업을 결의하고 170여일간 경영진 퇴진 등을 주장하며 사상 최장 기간 파업을 진행했다. MBC본부는 "퇴진의 목적을 달성했다"라며 파업 종료를 선언했지만 김 사장은 퇴진하지 않았다.
MBC본부는 2012년도 파업 이후에 앞선 파업과 같이 파업 참가자와 조합원들에 대한 경영진의 보복성 조치가 더 늘어났다고 밝혔다.
이후 2017년 2월 정부에 우호적인 보도편성을 했다는 의혹으로 '공정성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김장겸 보도본부장이 MBC 신임사장에 임명되자 노조와 회사 측 간의 갈등을 더욱 심화됐다. 먼저 PD수첩 제작진이 제작거부에 들어가고 잇따라 이에 동참하는 조합원 수가 늘어 9월4일부터는 총파업에 돌입하게 됐다.
MBC본부는 김 사장을 비롯해 전·현직 경영진이 이명박·박근혜 정부에 우호적으로 편파·왜곡 보도를 지시했으며, 이에 불응하거나 파업에 참여한 조합원들을 해고하고 부당 전보하는 등 인사상 불이익을 줬다고 주장하고 있다. MBC본부는 이런 내용을 정리해 지난 6월 고용노동부 서울서부지청에 특별근로감독을 신청했고, 조사를 마친 서울서부지청은 김장겸 사장 등 전현직 경영진을 부당노동행위 등의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50일째 파업을 진행하고 있는 MBC본부는 고용노동부의 특별근로감독 신청에 이어 그동안 경영진으로 인해 진행된 부당노동행위 등 불법행위에 대해 추가적인 고소·고발을 진행할 방침이다.
한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새노조)는 앞서 지난 2월 이미 총파업 돌입을 투표 참가자 83%의 찬성으로 가결해놓은 상태로 본격적인 파업을 진행하지는 않고 있었다.
KBS본부의 파업의 목표도 현 경영진사퇴에 있다. 지난해부터 KBS본부는 2015년 박근혜 정부가 임명한 고대영 사장의 취임 이후 진행된 '조직개편'과 '감축경영' 등으로 인해 회사의 경쟁력은 후퇴했으며 조직문화는 과거로 퇴행했다고 밝혀왔다.
또 노조는 고대영 사장이 '수신료 인상'이라는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눈 감고 수신료 현실화를 무시하고있다"며 "오직 수익만을 기준으로 프로그램을 평가하고 협찬을 따오지 않으면 제작의 엄두도 못 낼 판을 만들어 버리고, 당장의 수익성 악화를 핑계로 KBS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는 많은 프로그램을 폐지한 상황에 이르렀다"고 지적했다.
KBS본부는 KBS 내에서 이승만·백선엽 미화 등 뉴라이트 역사 강요, 4대강·천안함·세월호·사드·최순실 사태 등의 보도 내용을 막은 행위, 방송편성규약과 제작 가이드라인 등 규정과 지침을 위반한 편파 보도 등이 이뤄져 왔다며 이에 맞서 싸워온 KBS 구성원들과 노동조합에 대해 회사는 해고와 정직, 감봉 등 온갖 징계로 탄압했다고 주장했다.
특히 KBS본부는 고 사장이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해 '최순실이 측근이 맞냐'며 소극적인 대응으로 일관했으며, 이명박 정권 당시 군의 사이버 사령부가 댓글 공작 활동을 청와대에 보고한 사실을 KBS 기자가 단독 취재했음에도 보도를 의도적으로 누락했다고 비판했다.
또한 KBS본부는 회사가 공적 책무를 벗어나는 활동을 하고 있음에도 KBS의 이사회가 이를 견제하는 역할을 하지 않았다며 이인호 KBS 이사장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이사회 구성 변경, 향후 파업에 향방 정할 듯
현재 퇴진 압박을 받고 있는 경영진이 자진해서 사퇴할 의사를 밝히지 않고 있는 가운데 MBC·KBS본부가 주장하고 있는 경영진의 사퇴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서는 절차적으로 '이사회'의 결정이 꼭 필요하다. 각 이사회는 사장을 임면할 권한을 가진다.
KBS 이사회의 경우 11명으로 구성되는데 그중 7명은 박근혜 정부에서 구여권의 추천으로 임명돼 현 경영진을 옹호해 왔다. 하지만 최근 김경민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이사직에서 물러나면서 구여권과 구야권의 비율이 7:4에서 6:4로 변경됐다. 구여권 측에서 이탈표가 나와 경영진이 사임 할수 있는 확률이 높아진 것이다.
MBC의 이사회 역할을 하는 방문진의 경우에도 노조에 유리한 방향으로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방문진은 구여권 인사 6명과 구야권 인사 3명으로 구성돼 있었는데 최근 구여권의 유의선, 김원배 이사가 차례로 이사직에서 사퇴할 의사를 밝히면서 비율이 급격하게 변경됐다.
한편, 각 이사회에서 발생한 공석을 두고 현 여·야 정치권의 다툼이 벌어지고 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과거 확립된 여야 비율에 따라 현재 여당 추천 인사가 빈자리를 메꿔야 한다는 입장이고, 자유한국당은 사퇴한 이사를 추천했던 쪽에서 추천권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각 이사회의 이사 선임 권한은 방송통신위원회의 고유 권한이며 여·야 추천 비율은 관행일 뿐 방통위가 독립적으로 이사 선임 권한을 행사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만약 현 여권 측 인사가 보궐 이사로 선임될 경우 노조가 주장하는 경영진 사임이 받아들여져 파업은 종결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이에 대한 공방이 지속될 경우 파업은 더욱 장기화 될 것으로 예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