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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06-04 23:09
안문자/그녀 닮은 민들레꽃
 글쓴이 : 시애틀N
조회 : 5,623  

안문자 수필가
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지부 회원 


그녀 닮은 민들레꽃


겨우내 숨어있던 싹들이 술렁대는 것 같다. 겨울 바람에 구르던 마른 잎 속의 거친 땅에서 솔솔 아지랑이가 피어나는 것을 보니. 빼 꼼, 돋아난 민들레가 봄소식이 궁금한 듯 두리번거리며 갸웃댄다.

 ‘봄이 왔어, 마음 놓고 나와, 이젠 꽃을 피워도 돼.’눈치 챈 봄바람이 민들레에게 살짝 귀띔하고 사라진다. , 민들레….

따뜻한 사람, 민들레처럼 피고 또 피고 민들레 씨처럼 멀리 멀리 사랑을 뿌리던 내 친구. 하얀 꽃씨가 되어 어느 동산에서 수 만 송이 꽃을 피우고 있으려나. 한라산 자락에서 열여섯 가지의 나물을 먹고 유채꽃을 바라보며 행복하다고 했건만

새해를 맞고도 한 참 후 크리스마스 카드의 답장은 친구의 남편에서다. 
제 아내 신 아무개는 몇 월 며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 동안의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계속되는 나의 소식에 부담을 느낀 그의 남편은 이토록 슬픈 소식을 전해줄 수밖에 없었을 게다. 나는 이제 누구에게 편지를 써야 할지 막막해졌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코끝이 맵다. 그가 하늘나라로 갔다니…. 방광암이 너무 퍼져 수술을 거부하고 한라산으로 갔던 그녀. 

 ‘사랑하는 문자야, 어느덧 서귀포의 생활이 익숙하고 즐겁다. 죽고 사는 문제는 하나님께 달린 것, 다 맡기고 나니 감사와 기쁨으로 충만하구나. 맑은 공기와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하나님과 더 가까워졌단다. 하나님의 손길을 이토록 진하게 느낄 수 있다니. 감사하기 그지없다. 아침마다 유기농 밥상이다. 열여섯 가지의 나물을 먹는단다. 점심에는 야채 스프, 저녁에는 완전 항암음식이다. 항암음식이 궁금하지? 혼자 계신 박 장로(그의 남편)와 아이들과 손주들 때문에만 아니면 여기서 살다가 하늘나라로 가고 싶구나.’ 언제나 그의 편지는 평화스럽고 희망적이었다. 

1970년대, 도시로만 빠져나가던 시절인데 그녀는 결혼과 함께 산골로 들어갔다. 명문대 농과를 나온 후덕한 남편과 새댁의 꿈은 야무졌다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과수원들이 반기던 길. 봄에는 사과 꽃으로, 가을엔 빨간 사과로 예쁘던 길이 끝나면 배추와 무밭을 지나 고구마, 옥수수, 고추가 넘실댔다. 앞마당은 앞산, 뒷마당은 뒷산인 소박한 마당에 초가집이 요조숙녀처럼 앉아 있었다

흐드러진 분꽃이 지면 색색의 국화와 실한 대추가 반짝이며 담을 이루고 졸졸 흐르던 개울엔 손가락만한 물고기들이 노닐곤 했다. 요즘의 주말 농장이나 은퇴 후의 자연생활과 다름이 없었지만 첨단을 걸을 땐, 아니 농사로 생계를 이어가기란 그 때나 지금이나 어려움은 마찬가지였다. 

어느 날, 그녀는 서울 나들이로 나를 찾아 왔다. 소를 키우기로 했다고. 그 시절 농가에서는 송아지가 자라 새끼를 낳고 자라면 또 새끼를 낳아 큰돈을 벌었다. 갑자기 소 값이 필요하니 돈을 좀 빌려 달라고. 그로부터 그는 한 달에 한 번씩 내가 일하고 있던 사무실로 찾아오곤 했다.

소가 얼마큼 자랐고 새끼는 언제 낳을 거고…. 희망소식도 반가웠지만 제철에 나는 야채나 과일, 곡물을 한 아름씩 갖고 오는 게 더 반가웠다. 그는 재미있는 얼굴로 봄도, 여름도, 가을도 갖고 온다며 아무 때나 들어섰다.

좋아라, 신이 났던 나는 착한 그녀가 이자를 대신하여 갖고 온다는 것을 한 참 후에야 알았다. 우리는 쌈하듯 옥신각신했으나한 달에 한 번 만나는 거 안 좋냐?’경우가 지나치게 밝은 그의 고집을 꺾지 못하고 계절의 선물과 함께 불어나는 가족()들의 이야기로 함께 행복했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그의 부지런한 생활력은 빛이 났고 깊은 신앙으로 키운 두 자녀는 훌륭하게 자랐다. 그에게는 이제 만족한 노후가 기다리고 있었다.

타코마에는 존경하던 여학교 때의 선생님이 계시고 안문자도 있는 시애틀에 오고 싶다고 했건만. 그와는 영락교회 주일학교 반사시절에 만났다. J여고 우등생이었지만 대학을 포기하고 부잣집 딸의 가정교사로 집안을 일으키고 동생들을 대학에 보냈다. 그런데도 늘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그는 민들레 꽃을 특별히 좋아했다. 

 “문자야, 나는 민들레가 참 좋아. 샛노란 게 꼭 금메달 같지 않니? 귀여운 꽃은 솜털같이 많은 씨로 남아 온 세상을 향해 사랑을 전하고, 잎과 뿌리는 약초로, 나물로, 김치로 다 내어주고도 불쌍하게 구박을 한 몸에 받잖니. 그런데도 하늘을 향해 활짝 웃는 착한 꽃이야. 사람들이 다 민들레를 닮으면 얼마나 좋을까?”그가 말했었다.

심는 수고를 거치지 않아도 홀로 퍼지고 홀로 나누는 민들레. 친구네 집 마당에 지천으로 피어있던 민들레는 태평양을 건너 시애틀의 북쪽 우리 집 마당에도 무차별적으로 피곤 한다. 반기지도 않는데 차가운 땅속에서 활개치며 솟아나는 기특한 민들레는 그토록 구박이 심해도 아랑곳 않는 생명력을 지녔다. 

, 봄이 오는 함성과 함께 민들레가 꽃봉오리를 밀어내며 가냘픈 꽃대를 세우고 있는 걸 보니 머지않아 샛노란 금메달을 목에 걸고 찾아올 것 같다. 민들레는 반가운 소식이다. 따뜻한 미소다. 행복을 만드는 사람의 금메달이다. 민들레가 그녀를 닮았다

**2012년 2월 한국일보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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