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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12-06 08:13
[시애틀 문학-이 에스더 수필가] 겨울나기
 글쓴이 : 시애틀N
조회 : 8,186  

이 에스더 수필가
 

겨울나기 

 
이제야 춤사위가 수그러졌나 보다.
매서운 바람이 온종일 집 주위를 돌며 현란한 칼춤을 추더니, 지쳐서 그만 잠이 들었는지 사방이 조용하다. 바람의 예리한 칼날에 베어 나간 잔가지들과 채 단풍이 들기도 전에 떨어져 버린 잎들의 가쁜 숨소리만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을 덮고 있다

바람이 한바탕 놀고 간 놀이판을 치우는 것은 사람들의 몫이다. 작년 겨울에는 바람에 쓰러진 담장 때문에 몹시 고생스러웠는가 하면, 어느 해에는 이웃집 나무가 쓰러지면서 집 앞에 세워 둔 차를 완전히 부숴버리기도 했다

이번에도 역시 곳곳에서 쓰러진 나무로 길이 막히고 정전이 되어 오랜 시간 불편을 겪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의 발 빠른 움직임으로 막혔던 길이 뚫렸고, 썰렁하고 어두웠던 집안은 온기를 되찾았다. 큰 피해가 없는 것 같아 다행이다.

바깥에 나가 보니, 바람에 부러진 나뭇가지들이 전쟁터에서 부상 당한 병사들처럼 여기저기 쓰러져 있다. 어두워지기 전에 치워야 한다고 잰걸음으로 돌아다니며 잔가지들을 주워 모았다

손수레에 가득 실린 가지들의 모습이 마치 들것에 실려가는 부상병들 같다. 담장 너머 나무들은 제 몸에서 떨어져나간 작은 가지들을 어찌하지 못해 애처로운 마음으로 발만 동동 구르며 서 있다. 저들의 시린 아픔을 어찌 달래 줄까나. 조심스레 손수레를 밀고 가서 나무들의 발치에 상처 입은 가지들을 눕혀 주었다

나무가 조용히 이파리 하나 떨군다. 어미의 손길이런가. 신음하는 어린 것들의 등을 다독이며 때이른 겨울잠을 서둘러 재운다. 무엇으로 이불을 삼아줄까, 가지들이 누워 잠든 곳에 낙엽을 소복이 덮어 주었다.

숲 속 어둑한 곳에 웅크리고 있던 땅거미들이 줄지어 나오기 시작한다. 거미들이 지나는 곳마다 어둠이 묻어난다. 서둘러 기구를 정리하고 집안에 들어와 숨을 고른다. 두 손에 감싸 안은 찻잔의 온기가 평온함을 더한다.

창 너머로 가지들이 잠든 곳을 바라본다. 길고 긴 겨울잠에서 깨어나면 연한 초록빛 예쁜 싹으로 세상에 다시 태어나겠지. 저희들의 새로운 모습에 화들짝 놀라 푸른 웃음꽃을 숲 속 가득 채우며 아름답고 튼튼하게 자라가겠지

다음날 아침, 가지들이 떨어져 나간 자리에 햇살이 환하게 내려 앉았다. 나무들 사이로 맑은 하늘이 보인다. 무성했던 가지들과 잎들을 떨구어낸 후에라야 비로소 보이는 하늘이다.

유난히도 큰 일이 많았던 올해, 내 안에도 많은 잔가지들이 생겨났다. 기쁨과 감사 속에 곧게 뻗어나간 가지들도 있지만, 원망과 불평 속에 미움과 분노로 비뚤게 자라난 가지들도 많다. 내 안에도 전지작업이 필요한 때이다.

집안 청소를 하며 마음도 함께 청소해야지. 구석구석에 쌓인 먼지를 털고 걸레질을 하며, 마음에 두껍게 쌓였던 먼지도 함께 닦아내었다. 말간 나무 결이 기분 좋게 드러난다.

다음에 하리라고 미루었던 것들을 정리하고 쓰레기를 버리며, 그 동안 풀지 못했던 크고 작은 섭섭함과 미움의 찌꺼기들도 쓰레기통에 쏟아 버렸다. 오랫동안 자리만 차지하고 있던 덩치 큰 물건들은 새로운 주인을 찾아 주어야지 싶어 재활용품 센터에 보내기로 했다

그래도 여전히 망설여지는 것들은 다음을 기약하며 남겨 두었다. 떨쳐버리기에는 아직 이른 것일까. 옹색한 마음이 넉넉하게 자랄 때까지 기다려야 할 것 같다.

집안 정리가 마무리 되면서 내 안의 가지치기도 대충 끝이 났다. 치우고 비워낸 자리를 여유로운 미소가 대신한다. 내어 놓은 물건들이 작은 이삿짐 수준이다.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가지들을 잘라낸 내 안에는 맑은 하늘과 함께 왔는지 상쾌한 바람이 인다.

짐이 가득 실린 차에 시동을 걸고, 나무들을 바라본다. 밑둥이 더 굵어 보인다. 저희 어린 것들은 겨울잠 잘 자고 있노라고, 가지를 쳐낸 내 안에 찬 바람 들지 않게 조심하라며, 의연한 모습으로 나를 내려다 보고 있다.  

바람의 칼춤과 함께 시작된 겨울, 가지치기로 겨울나기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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