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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07-04 14:43
[이효경의 북리뷰] 가족은 결국 ‘카라마조프적인 것’을 사랑하게 한다
 글쓴이 : 시애틀N
조회 : 4,390  

이효경(UW 한국학도서관 사서)


도스트예프스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민음사)
 
 
“DNA 친자확인보다 더 정확한 것은 가문의 성정이나 속성
 

우리가 가족을 사랑하는 것은 카라마조프적인 그 무엇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살면서 엄마 입에서 가장 자주 들었던 말은 아마도 여주(驪州) 이씨의 그 성질은 아무도 못 말려가 아닐까 싶다. 엄마는 내가 어렸을 때는 친할아버지를 두고, 좀 더 커서는 아빠와 삼촌들에게 자주 이 말씀을 한숨 섞인 소리로 하시곤 했다. 이제는 오빠를 두고 같은 말을 되뇌신다.

칠척장신의 할아버지는 눈이 부리부리하시고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높은 콧마루를 가지신 분이셨다. 호탕하셔서 농담도 잘하셨지만, 칼날같이 높고 날카로운 콧등처럼 예리한 말로 어린 손녀의 가슴을 종종 서늘하게 하기도 하셨다.
 
이런 예사롭지 않은 할아버지의 성격 때문에 가끔 시골에서 서울로 다니러 오시면, 돌아가시기 하루 전날쯤 어김없이 밥상이 엎어지는 일이 생겼다. 엄마는 시집오고 나서 줄곧 여주 이씨와 살면서 이런 기질이 가문에 짙게 흐르는 것을 몸소 체득하게 되셨는데, 세월이 흘러도 쉽게 희석되지 않는 바로 그 물보다 진하다는 혈연 바로 그것이었다.
 
다혈질인 할아버지를 닮은 아빠도 집안 분위기를 주로 고압적으로 주도해갔다. 어느새 나는 엄마가 되뇌던 주문을 내 입에도 자연스럽게 담기 시작했다

이런 엄마를 이해하면서도 엄마가 우리 삼형제를 두고 여주 이씨 타령을 하실 때는, 여주 이씨만의 야릇한 유대감에 엄마만 남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엄마만 빼고 여주 이씨의 피를 고스란히 받은 우리 삼 형제 모두 외모는 서로 많이 닮지 않았지만, 그 어떤 유전인자보다도 강한 욱하는성격은 세월이 흐를수록 거울을 보듯 서로에게로부터 선명하게 읽혔다.
 
DNA의 친자 확인보다도 더 소름 끼치도록 정확한 것이 가문에 흐르는 성질이자 속성이다. 그러면서도 형제에게서 그런 모습을 보는 것이 안쓰러워 서로 연민의 정을 느끼는 것은 남의 일이 아닌 내 가족의 일이자 바로 나 자신의 일이기 때문이 아닐까.
 

아버지 표트르와 네 아들간엔 물보다 진한 카라마조프 가문의 피가 흘러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가족에게 용납하고 싶지 않은 가족사가 있는 법
 
카라마조프의 가족에게도 카라마조프적인 것이 존재했다. 아버지 표트르와 네 아들 간에는 물보다 진한 카라마조프 가문의 피가 흐른다. 가족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느 가족이나 치부로 느끼고 숨기고 싶은 혈연적인 것, 그러나 그것으로 인해 가족의 정체성을 필연적으로 느끼게 되는 애증의 유전자를 다시금 새롭게 돌아보게 된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가족에게 용납하고 싶지 않은 가족사는 있는 법이다. 지워버리고 싶지만 이미 물든 혈흔처럼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무심히 지울 수도 없는 노릇이다. 골육지친(骨肉之親)이기에 우리는 함께 그 아픔을 원하든 원하지 않든 나누어야 하고, ‘사랑의 숙제라는 무게는 죽을 때까지 부담스러운 것이 되기도 한다.

아비 없이 태어난 인간이 아닌 이상 누구나 겪어야 하는 태생과 근본으로 인한 인간의 숙명적이고도 보편적인 문제이다.
 
'파라만장한 가족사'를 담은 도스토예프스키 최고 걸작품 
 
도스토예프스키의 최고의 작품이자 러시아 문학의 절정이라고 말하는 이 책에서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 풀어야 하는 그들만의 현안을 먼저 들여다보자.
 
가족 간에 치정과 돈에 얽혀 존속살인으로 이어진 파란만장한 가족사는 현대판 막장 드라마의 수위를 훌쩍 뛰어넘는다

카라마조프의 가장 표트르는 시골의 한 지주로, 탐욕스럽고 음탕하기 그지없다. 자식을 돌보기보단 자녀의 유산마저 가로채는 불한당 같은 아버지다. 장남 드미트리는 부친의 이런 음탕하고 방탕한 피를 이어받았다

심지어 그는 아버지와 한 여인을 두고 경쟁의 관계에 선다. 차남 이반은 장남과는 다르게 냉철한 지식인으로 철저한 무신론자이며 도덕적 허무주의에 빠져있다. 그에게 가족은 의미 없는 빈 껍데기에 불과하다. 그는 아버지와 형을 저주하고 카라마조프적인 가문을 회피하고자 하지만, 결국 혈연에 묶이는 가족의 운명을 맞을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다.

막내아들 알료사는 두 형과는 자못 다른 성정을 가졌다. 선한 양심과 맑은 영혼을 소유한 가장 종교적인 인물이다. 방탕한 아버지와 제 멋대로인 형들을 향한 따뜻한 사랑을 실천하는 이상적인 가족의 일원이다

반면, 사생아이자 표트르의 서자인 스메르자코프는 태생부터 카라마조프가의 불행을 모두 안고 태어났다. 심각한 간질병을 앓고 있지만, 그에게는 소름이 끼칠 정도로 간계가 흘러 넘친다.

돈 때문에 부친 살해를 치밀하게 계획하고 결행하는 모습이 카라마조프가의 가장 큰 굴욕으로 남는다. 죄책감도 느끼지 못하는 이 음흉한 인물은 도스토예프스키의 또 다른 작품, <죄와 벌>에 나오는 살인자 주인공이나 <지하로부터의 수기>에 등장하는 철저히 세상과는 격리된 지하 인간을 떠올리게 한다.

치정과 돈 때문에 얽힌 가족이야기지만 심도있는 이야기 곳곳 

전체 스토리는 치정과 돈 때문에 장남 드미트리가 친부 살해자로 오해를 받으면서 펼쳐지는 카라마조프 가족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그러나 기본 줄거리 외에도 심도 있게 다루고 있는 이야기들이 곳곳에 포진돼 있다.
 
독자는 두꺼운 책 3권의 장편 소설이라는 느낌이 들 새도 없이 이야기를 펼쳐내는 작가의 필력에 쉽게 몰입하게 된다. 각 인물의 심리를 깊이 파헤침으로써 도스토예프스키의 영원한 주제였던 인간 구원의 문제와 신과 인간 간의 문제도 마주하게 된다.

차남 이반과 셋째 아들 알료사가 나누는 기독교와 예수에 대한 대심문관이라 이름 지어진 챕터는 어떤 종교 서적보다도 심오한 도스토예프스키의 종교적 사상과 철학을 엿볼 수 있어 그 재미가 쏠쏠하다.

아쉽게도 이 책은 이야기꾼 도스토예프스키의 미완성 작품이 되었지만, 끝까지 범죄자로 오인 당하는 장남 드미트리를 둘러싼 마지막 부분에 실린 재판 이야기는 한 편의 법정 드라마처럼 검사와 변호사간의 치밀하고도 논리적인 반박과 변론을 듣는 긴장감으로 정신 없이 책장을 넘기게 한다.
 
악마와 신이 싸우는 그 전쟁터가 바로 사람들의 마음 속이라고 했던 작가의 말처럼 카라마조프가의 인물들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내면과 조우하게 된다. 미처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그러나 분명히 존재하고 있던 복잡다단한 인간 심리를 조명해 보며, 나와 내 가족의 마음속으로 자꾸 쏠리게 되는 것은 이 소설이 가진 매력 중의 가장 큰 것이 아니었나 싶다.

 
가족이라는 이유 하나에 좋은 싫든 우리는 하나가 돼야
 
 
카라마조프적인 것은 극복돼야 할 것이기도 하지만 결국 형제와 가족이기에 공유해야 하는 끊을 수 없는 존재였다. 그래서 천성이란 문밖으로 쫓아내면 창문으로 다시 날아 들어온다는 어떤 우화도 있지 않은가. 카라마조프적인 것은 금방 엉기고 굳는 피처럼 가족을 잇는다

싫어도 가족이고 싫다고 버릴 수도 없다. 가족이라는 이유 하나에 좋든 싫든 우리는 하나가 되어야 한다. 가장 사랑해서 이룬 가족이 가장 사랑하기 힘든 대상이 되기도 하는 인간의 운명이란 생각하면 할수록 어처구니없지만, 그것이 사랑을 배우는 가장 근본적인 터전이라고 생각하니 가족 때문에 우리는 비로소 참다운 인간이 되어가는지 모르겠다.

카라마조프적인 것은 치명적이기도 하지만 무한한 사랑을 가진 '양날의 칼'

양날의 칼과 같은 카라마조프적인 것은 그 칼날이 치명적인 만큼 그것을 치유할 수 있는 사랑의 크기도 무한하다. 그것을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게서 본다
소가 닭 보듯 하던 형제들 간에도 장남인 드미트리가 살인자로 몰리게 되자, 표출되지 않고 잠재되어 있던 형제애가 서서히 싹튼다

특히 차남 이반의 반전이 주목할 만하다. 아버지를 향한 자신의 냉정함 때문에 사생아 스메르자코프가 친부를 살해하도록 방조한 것을 깨닫고, 이반은 깊은 자책에 빠진다. 정신이 이상해질 정도까지 가족의 책임을 처절히 느낀다

형을 위해 자발적으로 변호에 나서게 되는 것도 카라마조프적인 힘이 아니고서는 절대 불가능했다고 본다. 사실 그 카라마조프적인 형질 때문에 온 가족은 돈과 치정과 살인의 문제에 봉착하게 되었지만, 결국 바로 그 동일한 카라마조프적인 성질이 형제애와 가족애를 불러일으키는 근본에 있었던 것도 부인할 수 없다.
 
스메로자코프가 살인을 무슨 단순한 게임을 하듯 겁 없이 저지르고 자살로 자신의 생을 어이없이 마감하게 된 것도 어찌 보면 사생아이었기에 카라마조프적인 것을 함께 누리지 못했던 결핍의 산물이라고 해석해도 무리는 아닐 듯하다.
 
저자 도스토예프스키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 태생이 지닌 약점을 잘 극복하고 결국엔 가족을 이루어가는 긍정적인 카라마조프가로 발전하면서 가족의 이상적인 모습을 기대했는지 모르겠다.
 
그가 그려낸 막내아들 알료사는 그런 이상적 가족 구성원의 완성이다. 비록 작품은 미완성으로 끝났지만, 허물 많던 카라마조프 가족이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고 무한한 사랑으로 서로를 극복해가는 행복한 카라마조프 가족의 모습이 책을 덮은 뒤 내 머릿속에서 자연스럽게 그려진다.
 
러시아 문학을 대표한다는 도스토예프스키는 자신의 최고 걸작품에서 저들에겐 햄릿들이 있지만, 우리에겐 아직은, 일단은 카라마조프들이 있을 뿐입니다.’라고 외쳤다. 그 말이 절망적이기보단 희망적이게 들리는 것은 카라마조프적인 힘을 믿기 때문일 것이다.

평소엔 응고된 것처럼 보여도 때가 되면 너끈히 녹아내리는 뜨거운 혈연
 
촌스럽고 추하고 덜 떨어져 보이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 안에는 가족이기에 평소엔 응고된 것처럼 보여도 때가 되면 너끈히 녹여낼 수 있는 뜨거운 혈연이 된다. 그것을 찾아내는 것은 각 일원의 몫일지 모르겠다.
 
작가는 또 이렇게 말한다. ‘무릇 사람에겐 부모님의 집에서 보낸 아주 어린 시절보다 더 귀중한 추억은 없다. 가정에 손톱만큼의 사랑과 화합이라도 있었다면 거의 언제나 그런 법, 아무리 고약한 가정이었다 할지라도 자신의 영혼이 귀중한 것을 찾을 능력만 있다면 귀중한 추억들은 보존될 수 있다.’ 라고….
 
이것이 바로 우리가 카라마조프적인 것을 사랑하게 하는 가족애 아니고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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