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한 잔과 마주하는 음악 탐구
광복절의 노래
O군단 예하 전차대대 정훈 장교로 복무할 당시 북에서 귀순한 북한군 이OO중사의 증언을 전 부대원이 청취하는 행사를 마치고, 이 중사가 평양 냉면을 먹고 싶다고 하여 그의 신변 보호를 위해 기무사 요원들과 서울 중구 필동의 평양 냉면 전문 한식당을 찾아갔었다. 그 곳에서 갈비와 냉면을 먹고 이 중사의 정신교육을 위해 찾아간 곳은 한식당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한국의 집'이었다.
그곳은 일제 강점기 조선총독부 정무총감의 관저로 1945년 8월 15일 아침 몽양 여운형 선생이 총독부로부터 한국의 치안권과 행정권을 이양받은 뜻 깊은 장소이다. 여운형 선생은 집 근처에 있는 휘문고등학교 운동장에 집결한 군중을 향하여 목소리를 높였다.
" 개인적 영웅주의는 단연 없애고 끝까지 집단적으로 일사불란의 단결로 나아가자! 세계 각국은 우리들을 주시할 것이다. 우리들의 태도는 조금도 부끄럼이 없이 하자. 세계문화 건설에 백두산 밑에서 자라난 우리민족의 힘을 바치자."
다큐멘터리 역사물을 빠지지 않고 보는 나는 그 태반이 일본과 관련된 것이어서 일본이 없었다면 현재의 대한민국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3.1 운동과 8.15 광복절이 없었다면 한인회는 도대체 무엇을 가지고 생색을 낼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광복 후에도 이념 논쟁으로 세계의 유일한 분단 국가가 되어버린 몹쓸 유산을 답습하듯 워싱턴 주를 근거지로 한 한인회 인사들이 한일 합방의 잔류물인 3.1절과 8.15 광복절 주최권을 두고 대립하고 있다.
시애틀 한인회는 8.15 광복절 행사를 단독으로 개최했던 이유를 설명하는 인터뷰 동영상을 유튜브에 공개하고, 주간지에 "합동행사 합의도 연락도 받은 적이 없다"는 제하의 기사로 타코마 한인회의 주장을 정면 반박했다. 이에 제임스 양 타코마 한인회장은 자신을 포함하여 거짓말을 하고 있는 누군가는 직책을 내려놓고 3년 간 모든 공직(?)에서 물러서 있자고 맞불을 놓았다.
하나의 카운티에 한 개의 한인회만을 고집하며 갈등을 유발시키더니 팔색조처럼 입장을 달리하여 깜짝쇼하듯이 화해와 화합의 제스츄어로 타 지역 한인회의 행사에 참여한 것은 위선과 가식이었단 말인가. 하기사 자기 수족인 임원을 보호 않지 않고 토사구팽한 자들의 진정성을 애초부터 믿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1989년 팀스프리트 훈련 중 척추 부상을 입고 입원한 화곡동 육군 통합병원의 재활훈련을 받고 있던 중 깨끔발로 들어오는 병사를 보았다. 발목 지뢰에 오른 다리 무릎 아래가 절단되었다고 했다. 발목 지뢰는 지뢰를 밟은 병사의 발목만 잘라내는 폭발물이다. 발목이 잘린 병사는누군가 부축을 해주어야 이 하는데 이로써 전력 손실을 배가시키는 잔인한 무기이다. 하지만 이 잔인함 속에는 '전우애'가 숨어있다. 멀쩡히 살아 고통에 몸부림치는 부하를 버리고 갈 만한 사람이 없다는 것을 기초로 만들어진 휴머니즘(?) 무기이다.
이렇게 한인회가 마땅히 해야할 봉사와 애국은 사랑과 의리로 하는 것이지 가식과 위선으로 하는 게 아니다. 또한 여건이 딱 맞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죽암 조봉암 선생은 " 우리가 독립운동을 할 때 돈이 준비가 되어서 한 것도 아니고 가능성이 있어서 한 것도 아니다. 옳은 일이기에, 또 아니하고서는 안 될 일이기에 목숨을 걸고 싸웠지 아니한가?" 라고 역설했다.
" 흙 다시 만져보자 바닷물도 춤을 춘다, 기어이 보시려던 어른님 벗님 어찌 하리, 이 날이 사십년 뜨거운 피 엉긴 자취니,길이 길이 지키세 길이 길이 지키세, 꿈엔들 잊을 건가 지난 일을 잊을 건가, 다 같이 복을 심어 잘 가꿔 길러 하늘 닿게 세계의 보람될 거룩한 빛 예서 나리니 힘써 힘써 나가세 힘써 힘써 나가세"
이 노래말을 기억하는가? 바로 정인보 선생이 작사하고 윤용하 선생이 작곡한 광복절 노래다. 정인보 선생은1912년 독립운동단체 동제사(同濟社)를 조직하여 광복운동에 투신한 분이다. 특히 선생은 광복 후 일제의 포악한 민족말살정책으로 가려졌던 국학을 일으켜 세우고 교육에 힘을 쏟아 민족사를 모르는 국민에게 올바른 역사를 알리기 위해 <조선사연구>를 간행한 민족사학자이다.
8.15 광복절을 건국절로 해석하는 분들은 개인적으로 연락하면 한글로 개역한 <조선사 연구> 상하 2권을 빌려줄테니 읽어본 후 제대로된 역사관을 세우기 바란다. 한인사회를 반토막 내는 것도 죄악스러운 것이지만 그들의 행태를 옹호하고 유구한 5천 년 역사를 우리의 혼 속에서 걷어내려고 하는 것도 역사의 죄인이 되는 것이다.
'흙 다시 만져보자 바닷물도 춤을 춘다...' 이 소절에 가슴이 울컥한다. 국권을 잃은 조국의 땅은 내 조국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서 숨쉬고 있는 공기도 흙도 광복후에야 내것이 된것이다. 너무 기쁜 나머지 대한민국 독립 만세 소리가 지천이에 요동을 하니 바닷물도 춤을 추었을 것이다.
위 광복절 노랫 가사에서 일제의 총칼에 피엉킨 암울한 시간을 36년 아닌 40년으로 묘사했다. 일반적으로 일제 통치의36년은 그 기산일을 대한제국의 내각총리대신 이완용과 제3대 한국 통감인 데라우치 마사타케가 형식적인 회의를 거쳐 조약을 통과시킨 후 공포한 1910년 8월 29일로 보는 것이다.
이 보다 앞서 4년 전 1905년 <을사 늑약>이라 불리는 2차 한일 협약의 체결로 한국 내의 일본 공사관들은 모두 철수하고 대신 통감부가 설치되어 초대 통감으로 이토 히로부미가 취임하였다. 정인보 선생은 대한제국의 외교권이 박탈당하고,통감정치가 감행된 을사늑약이 체결된 1905년부터 실질적인 국권이 일제에 피탈된 것으로 본 것이다. 늑약(勒約)의 늑(勒)은 굴레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듯이 자발적인 조약이 아닌 강권에 의한 굴욕적 조약이며 이 때 부터 사실상 우리나라는 더 이상 주권 국가가 아니었다.
시애틀 한인회의 역사도 40년을 훌쩍 넘었다. 사람으로 치면 공자가 논어에서 '불혹' 이라 하였듯이 어떠한 유혹에도 갈팡질팡하거나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이 굳굳함을 유지할 만큼 성숙한 나이다. 미주 한인회의 임원들은 5,60대가 주를 이루고 연계 단체들도 7,80대로 우리가 공경하고 보호해야 할 어르신들이다. 즉 기성세대로서 후대에게 보여주어야 할 모범을 갖추고 있는지 사방천지에서 빗발치는 비난에 변명만 하지 성찰해보는 기회를 가지기 바란다.
공자는 자신의 삶을 되짚으면서 50세는 지천명(知天命)이라 하여 하늘의 뜻을 제대로 알았고, 60세를 이순(耳順), 문자 그대로 귀가 순해졌다는 것인데 인생에 경륜이 쌓이고 사려(思慮)와 판단(判斷)이 성숙하여 남이 말을 잘 받이는 성품으로 성숙했고, 70세는 종심(從心) 으로 마음이 하고자 하는 데로 쫓았으나 법도에 어긋나는 법이 없다고 하였다.
이로써 시애틀 한인회는 단독 개최에 대해 궁박한 핑계를 댈 필요없다. 타코마 한인회 또한 이에 맞설 필요없다. 일제의 속박에서 벗어나자마자 또 다시 외세에 의해 분단된 조국으로 두고 있는 우리들은, 힘을 합치지 못해 경술국치의 부끄러운 역사를 가지고 있슴에도 그러한 치욕적인 역사의 연결선상에 있는 3.1절과 광복절 기념 행사 주최권을 가지고 분열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외국인 특히 일본인들이 어찌 볼지 또 다시 부끄러울 뿐이다. 또한 이런 저런 명분을 들먹거리지 마라, 미래에 대한 막연한 논리도 가당치 않다.
"선생님 보리이삭이 다 크고 좋았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더 가면 지금보다 더 크고 좋은 것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머뭇거렸죠, 그러다 결국은 아무 것도 따지 못하고 보리밭을 건너고 말았습니다." 이 플라톤의 말에 소크라테스는 "모든 희망을 내일에 걸지 마라, 네가 숨쉬고 있는 지금이 제일 중요하다" 라는 가르침을 주었다.
우리들 대다수는 오늘 아침 처럼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뜻한 차 한 잔을 손에 쥘 수 있는 순간, 환한 햇살과 집 뜰을 찾아온 새들의 즐거운 재잘거림이 함께 하는 순간,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바로 눈 앞의 순간 순간을 사랑할 뿐이다. 지나간 과거와 당신들이 제시하는 애매한 미래에 현재를 저당잡힐 필요가 없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게 있다. 우리는 변화하지 않고 정체하는 것을 진정 두려워해야 한다. 노자는 "눈이 수북이 쌓이다 결국 부러지고 마는 굵은 가지와, 때때로 휘어지면서 눈을 털어내는 살아있는 가느다란 가지를 비교하며 저항과 정체보다는 변화와 성장이 낫다" 고 했다. 랠프 윌도 에머슨도 " 우리는 성장할 뿐 늙지 않는다, 하지만 성장을 멈춘다면 비로소 늙게 된다." 며 과오를 반복하고 개선하지 않는 자들에게 경고했다.
전 한인회장 출신 한 원로는 현직 한인회 임원들이 도통 어른 말을 들어먹지 않는다면서 현 사태를 한탄한다. 남의 말에 귀 기울일 줄 아는 여유과 아량은 쌈 싸먹고 그저 오기로 버티기만 하고 내 것만 옳다고 주장하고, 심지어 조국 대한민국 통수권자를 대신하는 총영사와 대립한다. 이런 망국적 태도를 버리지 않고 늙어가기만 할 뿐 성장하지 않는 한인회를 우리 모두 안타까와 한다.
나라를 되찾았으나 그 혼은 아직도 일제에 저당 잡혀 분열을 일삼고 있는 자들이여, 당신들이 그 자리에 머무는 시간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 시간에 안중근 의사가 무슨 과 의사냐? 야스쿠니 신사가 누구에요"? 라고 묻는 젊은이들을 위해 할 일이 무엇인가 고민을 하는 게 낫지 않겠는가. 암흑 속에서 빛을 되찾은 기쁜 날을 더 이상 당신들의 몽매함으로 비롯된 아집으로 슬픈 날로 만들지 마라. 70년 전 늘 밟히던 흙도 다시 만져보고 대한독립만세 소리가 지축을 흔들어 바닷물도 춤을 추었던 기쁨의 노래, 광복절의 노래를 함께 부를 수는 없겠는가.
출처: http://cafe.daum.net/seattle7080guitar/HqEb/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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