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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08-17 09:53
눈산조망대/‘폭풍의 건반’
 글쓴이 : 시애틀N
조회 : 4,867  

한국일보 시애틀지사 고문

‘폭풍의 건반’
 
올해 광복절은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모처럼 한인사회 기념식이 하나로 통합돼 열렸다거나, 미국 국무부가 생뚱맞게 광복절 축하 동영상을 만들었다거나, 광복절에 맞춰 남북한이 개성공단 정상화에 합의했다는 따위는 곧 망각될 일들이다. 하지만 광복절이 저물 무렵 피아니스트 서혜경이 안겨준 감동과 흥분은 쉽게 잊어지지 않을 터이다.

서혜경은 3년 전에도 시애틀에서 연주회를 가졌었다. 말기 유방암에서 기적적으로 재기한지 3년만이었다. 그 공연을 놓치고 속상했었는데 3년만에 다시 한번 기회가 찾아왔다

지난 15일 베나로야 홀에서 열린 서혜경의 리사이틀은 이미 4반세기 전 카네기 홀이 그녀를 그 해(1988)의 세계3대 피아니스트로 선정한 것이 우연이 아니었음을 입증했다.

서혜경은 5세 때 피아노를 시작해 9세에 데뷔(국립교향악단 협연)한 후 국내외 유명 콩쿠르를 석권한 신동이었다. 연주회에서 본인이 말했듯이 ‘한국 치맛바람 1호’인 어머니(이소윤 권사)의 억척같은 성화 속에 하루8~10시간씩 연습했다. 엉덩이가 늘 짓물렀다. 불을 끄고 글씨를 쓴 한석봉처럼 전등을 끄고 건반을 두드렸다. 악보를 달달 외워야했다.

그녀는 1980년 권위의 부조니 콩쿠르에서 최연소자(20)로 우승, 일약 세계적 피아니스트 반열에 올랐다. 이듬해 대한민국 문화훈장을 받았고 1985년엔 링컨센터 상(윌리엄 퍼첵상)을 받았다. 로스트로포비치(첼로), 장 피에르 랑팔(플룻) 등 대가들과 순회연주를 가졌다. 거장 아이작 스턴(바이올린)이 그녀의 집에 찾아와 점심을 함께 했을 정도였다.

서혜경은 1988년 라자르 벨만, 반 클라이번, 알프레드 브렌델, 루돌프 제르킨, 머레이 페라이어 등 톱 클라스 피아니스트 20명과 함께 카네기 홀에서 열린 스타인웨이 피아노 창립 135주년 기념 연주회에 참가하며 전성기를 구가했다

공영방송PBS-TV가 전국에 중계한 이 음악회에서 서혜경은 연주뿐만 아니라 여성 MC역까지 맡아 화제가 됐었다.

줄곧 고속도로만 달려온 서혜경은 90년대 들어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로 빠져들었다. 어머니에게서 독립해 ‘피아노 쟁이’ 아닌 ‘여자’가 되고 싶었다

연애경험이 전무하고 사회물정도 모르는 그녀는 가족과 주위의 반대를 뿌리치고 뉴욕의 한인사업가와 교제 1년만에 결혼했다. 하지만 기대만큼 실망도 컸다. 자녀 둘을 낳은 뒤 8년 만에 파경을 맞았다.

그녀에게 더 큰 시련이 닥쳤다. 2006년 유방암 3기 진단을 받고 수술항암 치료 8, 방사선 치료 33번을 겪었다. 피아노 꿈을 접고 팔 근육을 절제하라는 의사의 권유를 뿌리쳤다. 1년을 고생한 그녀는 20081월 ‘피아니스트의 히말라야’로 불리는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2~3번을 여성 피아니스트로는 최초로 연달아 연주해내며 화려하게 재기했다.

그저께 밤에도 서혜경은 21곡의 레퍼토리와3곡의 앙코르곡을 악보 없이 연주했다. 상상력 없는 음악감상은 하나마나라며 곡목들을 일일이 해설해줬다. 젊은 날의 도도하고 교만한 모습은 볼 수 없었다. ‘불 뿜는 용,’ ‘활화산,’ ‘폭풍건반’ 따위의 수식어들이 여전히 그녀에게 어울렸지만, ‘밤과 꿈’(슈베르트)은 눈물이 콕 솟을 만큼 애틋하고 서정적이었다.

교회 집사인 그녀는 암에서 새 생명을 얻었고 실패한 결혼에서 삶의 진정한 가치관을 터득했다고 한 기고문에서 간증했다. 결혼생활 동안 쿠폰을 모아 식품비를 절약했고10달러짜리 옷으로 1년을 버티기도 했다. 교만의 눈이 감겨지고 남을 배려하는 눈이 떠졌다고 했다

경희대 교수인 그녀는 재기 후 유방암환자 돕기 등 자선연주회에 앞장서오고 있다.정경화, 조수미, 서혜경 같은 거물급 한국 음악가들의 공연을 시애틀에서 들을 수 있는 건 행운이다. 특히 두 차례 모진 역경을 극복하고 일어선 서혜경의 연주는 음악 이상의 메시지를 담고 있어 감동이 더 진하다.
 
카네기 홀이 그녀를1988년의 세계 3대 피아니스트로 선정한 건 실수다. 이젠 ‘현존 세계 3대 피아니스트’로 꼽아야 마땅하다는 생각이다.

[이 게시물은 시애틀N님에 의해 2013-08-17 22:33:17 윤여춘 고문 "눈산 조망대"에서 이동 됨] [이 게시물은 시애틀N님에 의해 2013-08-19 07:24:04 헤드라인 뉴스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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