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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05-13 20:52
김윤선/새의 날개 속엔 바람이 괸다
 글쓴이 : 김윤선
조회 : 3,911  

김윤선 수필가
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 지부 회장


새의 날개 속엔 바람이 괸다

바다를 보러 가는 길목에서 만난 갈매기들이 생뚱맞다. 느릿느릿한 날갯짓으로 여유를 부리던 여느 때의 모습과는 달리 바람에 맞선 채 웅크리고 앉아 꼼짝을 하지 않는다.

궁금해 하는 내게 남편이 말했다. 바람에 체온을 뺏기지 않으려는 자세라고. 생명 있는 것들의 아름다움이란, 자연의 신비로움은 이렇듯 절로 우리를 고개 숙이게 한다. 내린 날개 속에 괴어 있을 온기가 시나브로 내게로 전해져 왔다.

이곳에 오던 첫날밤, 침대도 없는 맨바닥에 담요 하나를 깔았다. 카펫이 온돌보다 나으려니 생각했던 건 착각이었다. 이리 뒤척, 저리 뒤척, 바닥에 비닐봉투를 까는 수선을 피웠지만 뼛속까지 솔솔 파고드는 냉기 때문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래도 그나마 냉기를 견딜 수 있었던 건 꾹꾹 말아서 가져왔던 오리털 이불 때문이었다. 가벼워서 무게가 나가지 않을 거라는 단순한 생각으로 가방에 넣었는데 그날 밤 그것의 따뜻함이 새삼스러웠다.

따지고 보면 따뜻함이란 게 어찌 깃털 이불뿐일까, 가난과 피곤에 지쳐있을 때 내미는 손, 그리고 다정한 말 한 마디, 공감하는 마음, 세상의 따뜻함이란 이렇듯 어디에나 괼 수 있게 무게를 지니지 않아야 한다는 걸 보여주는 듯했다. 

새의 깃털이나 동물의 털, 혹은 목화솜 이불의 속을 뒤집어 보면 낱낱의 것들이 수없이 엉켜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그 낱낱의 것 사이에는 미세한 틈이 있는데 정작 따뜻함은 그 빈틈 때문이란다. 틈새에 괴는 공기, 그것이 온기의 비결이고 보면, 날개 내린 새의 겨드랑이의 온기 또한 짐작할 만하다.

하지만 빈틈이 갖는 비결이 어찌 그뿐일까. 날개의 부담을 줄이기 위한 새의 텅 빈 뼛속, 훨훨 자유롭게 하늘을 날 수 있는 게 제 몸을 비워내는 대가라면 진정한 자유를 얻기 위한 인간의 비움의 철학 또한 어찌 입으로만 그칠 일일까 싶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틈 또한 그러하다. 무능력한 남편으로 속상해 하는 친구가 있었다. 그녀는 제 주장이 강해서 좀체 남의 의견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아내의 성격이 그런지라 남편 또한 웬만한 일에는 있는 둥 없는 둥 지냈는데, 그런 남편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남편이 떠난 빈 공간, 그 공간에 홀로 서고서야 친구는 남편의 온기를 느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가정법원에서는 이혼을 원하는 부부에게 일정기간 조정을 거치게 하는데 이를테면 틈이 주는 몫을 기대한 때문이 아닌가 싶다.

요즘 날 곤혹스럽게 하는 말은 관대함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관대함이 약점이 되는 사람도 있고 그게 되레 힘이 되는 사람이 있다. 주변을 돌아보면 관대함이란 대체로 성숙한 정신세계를 가진 사람들이 갖는 자연스러움이요, 내면의 덕이라는 걸 느끼게 한다. 그래서인지 독재자는 힘을 앞세우고 성인은 덕을 앞세우는 모양이다.

어릴 때는 관대함을 마냥 약함으로만 여겼다. 이순신 장군이나 세종대왕 같은 분을 위인으로 떠받드는 건 장군으로서의 용맹과 정의감, 그리고 대왕의 위업 때문인 줄 알았다. 위인전 속에 그려진 그들의 성품은 대개 올곧은 성격, 불의에 타협하지 않는 정의감, 그런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진정 백성의 마음을 산 것은 위엄이나 용맹보다 자비롭고 따뜻한 관대함이라는 걸, 세상을 웬만큼 살고 난 지금에야 깨닫는다. 백의종군 하는 마음의 뒷자락, 한글을 무시하는 한학자들에 대한 불편함, 관대함이란 그런 틈새에서 자라는 감정이 아닐까.

누구나 살다 보면 어느 새 끼어드는 교만함과, 강한 자에게 약하고 약한 자에게 강한 인간 속성을 드러내기 쉽다. 쉿! 소가 들을 수 있으니 험담을 하지 마라, 고 한 농부에게서 삶의 교훈을 배웠다는 황희 정승의 일화는 우리에게 많은 깨우침을 준다. 고대국가에서는 고작 몇 개의 금법이면 될 일들이 오늘날엔 나라마다 수많은 법 규정이 있는 걸 보면 관대함만으로 세상을 살아간다는 게 얼마나 자기희생이 따라야 하는 일인가를 느끼게 한다.

삶의 난관에 부딪쳤을 때 사람됨이 드러나듯, 날개를 내리고 바람과 맞서 있는 새의 의연한 자세에서 삶의 순리를 배운다. 따지고 보면 세상의 적이라는 것 또한 얼마나 좁은 소갈머리에서 비롯되는 것인지. 적을 품어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는 우주의 원리, 새의 내린 날개가 보여주는 그 순리의 끝에서 나는 무한한 관대함을 배운다. 팔짱을 낀 내 겨드랑이에서도 시나브로 온기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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