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호 시인
숭실대 명예교수
<시애틀 천국>
태양
시애틀의 태양은 사람들의 꿈이 화산처럼 끓고 있는 하늘의 심장이다.
활 활 타는 온 몸이 가슴인 태양은 초목과 사람들의 뼈 속에 황금꽃을 피우는 예술가.
겸손한 자들이 이마에 핀 꽃을 꺽어 찬양하고 경배하는 신(神 ), 그의 사자(使者)이다.
가슴속에 촛불을 키고 기도하는 자들의 소망을 별꽃화원으로 가꾸는 태양,
그들의 맑은 눈에 포도나무 새싹을 모종하고
선함의 키만큼 영육의 키를 자라게 하는 농부이다.
하늘역에서 수만톤의 곡물, 꽃씨, 새노래, 시집, 성경들을 싣고
지구역으로 내려오는 태양열차,
집집의 앞마당에 바람과 비가 짐들을 하역한다.
해는 행인들의 모닝커피잔 속으로 들어가 출근 도장을 찍고
어두운 길목 노숙자의 빈 모자속으로 들어가 잠옷을 입히고 노을이불을 덮어준다.
하늘을 오래 바라보는 자의 눈에 창문이 열린다.
그 사람의 얼굴에서 해가 웃는다.
시애틀 사람의 얼굴은 사과다. 사과가 웃는다.
사람들의 외로운 가슴속이 해의 집이다.
고독하고 아픈 자들의 방문앞에 해의 신발이 놓여있다.
대지위에 바다위에 시를 쓰는 대시인,
그가 풀잎위에 쓴 꽃시들을 휘파람새가 읽고 파도가 물고기들의 시를 낭송한다.
해변의 조약돌에서 날개가 돋아 갈매기의 신생아로 태어난다.
창공에 산야에 수채화를 그리는 대화가, 사슴떼들이 스키어들처럼 눈산 위를 뛰놀고
산새들이 구름자전거를 타고 허공 속을 달린다.
풀벌레가 눈먼 사람에게 해바라기의 노래를 햇살점자로 읽어주게 한다.
귀가 어둔 자의 얼굴을 만져주어 그의 두 귀가 비들기가 치는 새벽종소리를 듣게 하고
먼 고향의 라이락꽃 향기가 태평양을 건너 날아오는 소리를 듣게 한다.
하루 종일 불꽃 땀방울 뚝 뚝 떨구며 밭을 갈고 희망을 경작한 후
고달픈 노동자들의 흙발을 금빛석양으로 씻어주고
그들의 절절한 염원을 날개속에 품어 하늘로 하늘로 퇴근하는 시애틀의 태양,
거대한 영생의 불사조, 불사조이어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