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로그인 | 회원가입 | 2024-05-18 (토)

시애틀N 최신 기사를 보시려면 여기를 클릭하세요

2021년 1월 시애틀N 사이트를 개편하였습니다. 열람하고 있는 사이트에서 2021년 이전 자료들을 확인 할수 있습니다.

시애틀N 최신 기사를 보시려면 여기를 클릭하세요


 
작성일 : 17-01-29 14:44
[시애틀 수필-이 에스더] 퍼즐 맞추기
 글쓴이 : 시애틀N
조회 : 2,847  

이 에스더 수필가(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 지부 회원)

 
퍼즐 맞추기

 
두 개의 퍼즐 상자가 상 위에 나란히 놓여 있다.
퍼즐을 가운데 두고 오종종히 모여 있는 식구들이 정겹다. 이번에는 큰딸 내외와 호주에서 온 조카까지 한자리에 모인 탓에 모두가 달뜬 분위기다

첫 상자를 열어 쫙 펼쳐 놓으니 천 개나 되는 퍼즐 조각들이 한 상 가득하다. 마치 잔칫상이라도 받은 듯 다들 입맛을 다신다. 모든 것이 신기한 십 개월 된 손녀도 제 몫을 하겠다고 소리 지르며 흥을 돋운다.

온 가족이 함께 모이면 퍼즐을 즐겨 한다. 아이들이 방학을 맞아 집에 오면, 그 앞에 퍼즐을 내어놓곤 했다. 서로 머리를 맞대고 퍼즐을 맞추던 그때, 손을 맞잡고 퍼즐 속으로 걸어 들어가 미지의 세상을 함께 만들어가던 추억이 새롭다

퍼즐이 하나씩 제 자리를 찾아 채워질 때마다 오랫동안 멀리 떨어져 있던 거리가 퍼즐 조각들처럼 가까워지면서 가족들 사이에 따뜻한 기운이 감돈다. 퍼즐이 완성되기까지, 집에 들어오면 으레 상에 펼쳐진 퍼즐 판을 먼저 들여다보곤 한다. 누군가 맞춰놓은 퍼즐을 볼 때마다 함께 이루어가는 기쁨이 퍼즐 조각 채워지듯 조용히 퍼져간다.

식구들의 음식을 마련하느라 며칠을 종종대며 다니는 동안 첫 번째 퍼즐이 완성되었다. 퍼즐 속 에펠탑 뒤로 내리는 석양이 우리 집 거실까지 아름다운 빛을 드리우고 있다

두 번째 퍼즐은 엄마의 몫이라며, 내게로 슬쩍 밀어놓는다. 쉴새 없이 움직이는 어미를 앉혀놓으려는 아이들의 속내가 따뜻하다.

잠자리에 들었지만, 퍼즐 생각에 잠이 멀찍이 달아난다. 도둑고양이처럼 살금살금 계단을 내려와 퍼즐로 다가간다. 상 위에 쏟아놓은 천 개의 조각들이 불빛 아래 얼굴을 반짝이며 반긴다. 뉴욕의 가을이 담긴 퍼즐 속으로 천분의 일의 확률을 찾아 홀로 밤 여행길에 나선다

다행히 아이들이 마련해준 전체 틀과 큰애가 찾아둔 가로등을 의지하니 첫걸음 떼기가 쉽다. 달팽이처럼 한 곳에 서서 더듬이를 세운 채 한참 더듬거리다가도 제 조각을 발견하면 독수리 못지않게 손이 빨라진다. 탄성과 아쉬움이 어우러진 퍼즐 판의 골목길이 낯설지 않다. 퍼즐을 찾아 바삐 움직이던 손이 어느덧 삶을 더듬고 있다.

그림 속 허드슨 강 주변의 가을 풍경이 아름답다. 빛과 어두움의 적절한 조화가 눈길을 끈다. 더디게 채워져 가는 퍼즐 위에 나의 날들이 하나 둘 겹쳐지기 시작한다. 어둡고 우울했던 날들이 어두운 배경을 이루는 퍼즐이 되어간다

앞을 분간할 수 없어 헤매던 짙은 안개 같던 날들도 하이라이트를 향해 가는 은은한 중간 톤에 녹아 들고 있다. 부끄럽고 아픈 기억도 마다하지 않고 품은 강은 아름다운 불빛을 수면에 새기며 흐르고 있다

강변을 따라가며 곳곳에 무리지어 피어있는 꽃들은 내 삶의 기쁜 날들을 기억하는 듯 환하게 웃고 있다. 두 개의 가로등은 빛 되신 그분을 늘 기억하라며 강의 양쪽을 지키고 있다. 멀리 보랏빛 짙은 구름 사이로 기도 손을 닮은 두 빌딩이 우뚝 솟아 금빛으로 빛나고 있다.

한밤에 떠난 퍼즐 여행길에서 뜻하지 않게 많은 시간의 조각들을 만났다. 오십년이 훌쩍 넘도록 쌓여온 시간 속에서 나는 밝고 행복했던 시간들만 기억하려 했다. 그런데 떨쳐버리고 싶었던 시간들이 든든한 조각이 되어 퍼즐 판 곳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애써 외면하려 했던 시간들도 바위나 나무의 뿌리가 되어 퍼즐 판의 기초를 든든하게 붙잡고 있었다

이제야 깨닫는다. 어둡고 칙칙한 퍼즐들을 버려둔 채 밝은 색 퍼즐만으로는 아름다운 작품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곱고 밝은 퍼즐이 제 아무리 좋은 자리를 찾았다 한들 어둔 색의 퍼즐이 받쳐주지 않는다면 그저 흩어져 있는 조각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빛과 그림자의 동행을 생각한다. 차라리 지워버리고 싶었던 그 시간들을 퍼즐 속에서 찾아내어 이제라도 보듬어야겠다. 혹여 길을 걷다 버려진 시간이 걸림돌 되어 넘어진다면 또 다시 아파하는 어리석음을 반복하고 싶지 않다

차가운 곳에서 추위에 떨고 있던 내 삶의 조각들을 만나 그때의 나와 화해하고 남은 길 함께 걸어가고 싶다. 그 길에 들꽃 잔잔히 피어나면 그런 미소 지으며 갈 수 있을 것 같다.

천 개의 퍼즐 중 어느 것 하나 똑같은 게 없다. 비슷한 모양은 많으나 그 중 어느 것도 제 자리를 대신 할 수 없다. 우리 식구들을 닮고, 사람 사는 세상을 닮았다. 서로 다른 조각들이 제 옆자리를 내어주며 함께 어우러져 작품을 이루어가는 과정이 귀하고 아름답다. 자기의 자리를 귀히 여기고 지키기 위해 애쓰는 세상의 모든 작은 조각들에게 뜨거운 박수를 쳐주고 싶다.

복잡해 보이던 다리가 거의 완성되었다. 밤새 우렁 각시 노릇하느라 뻑뻑해진 눈이 맑아지는 듯하다. 창 너머로 뿌옇게 밝아오는 새벽이 나를 내려 보고 있다.

다음에 만날 새 퍼즐이 벌써 궁금해진다.

**시애틀지역 한인 문학인들의 작품을 보시려면 아래를 클릭


 
 

Total 696
번호 제   목 글쓴이 날짜 조회
486 [해설과 함께 하는 서북미 좋은 시- 박준우] … 시애틀N 2017-02-22 3838
485 “번역할때 글자 한자 한자가 우리 작품이었… 시애틀N 2017-02-16 4770
484 [시애틀 수필-김홍준] 잊혀가는 설 명절 시애틀N 2017-02-13 5803
483 [시애틀 수필] 13년 후 시애틀N 2017-02-12 5145
482 [김영호 시인의 아메리카 천국] 시애틀의 조… 시애틀N 2017-02-12 3301
481 결국 공부하고 노력해야 좋은 문학작품 나온… 시애틀N 2017-02-10 3637
480 2월 UW 북소리 주제는 '조정래와 소설 <… 시애틀N 2017-02-07 3375
479 문인협회 워싱턴주지부 ‘작가 등용문’으로… 시애틀N 2017-02-06 3802
478 [기고-장원숙] 인간의 타락 시애틀N 2017-02-04 3127
477 [해설과 함께 하는 서북미 좋은 시- 이춘혜] … 시애틀N 2017-02-04 2974
476 강정실 수필가 시애틀서 문학특강 시애틀N 2017-01-31 3135
475 [시애틀 수필-이 에스더] 퍼즐 맞추기 시애틀N 2017-01-29 2849
474 [김영호 시인의 아메리카 천국] 불의 계곡(Vall… 시애틀N 2017-01-29 2929
473 [시애틀 수필-이경구] 노르웨지안 쥬얼호를 … 시애틀N 2017-01-21 3640
472 [해설과 함께 하는 서북미 좋은 시- 조정외] … 시애틀N 2017-01-21 320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About US I 사용자 이용 약관 I 개인 정보 보호 정책 I 광고 및 제휴 문의 I Contact Us

시애틀N

16825 48th Ave W #215 Lynnwood, WA 98037
TEL : 425-582-9795
Website : www.seattlen.com | E-mail : info@seattlen.com

COPYRIGHT © www.seattlen.com. ALL RIGHTS RESERVED.
상단으로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