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로그인 | 회원가입 | 2024-05-18 (토)

시애틀N 최신 기사를 보시려면 여기를 클릭하세요

2021년 1월 시애틀N 사이트를 개편하였습니다. 열람하고 있는 사이트에서 2021년 이전 자료들을 확인 할수 있습니다.

시애틀N 최신 기사를 보시려면 여기를 클릭하세요


 
작성일 : 13-07-14 00:00
공순해/핵심
 글쓴이 : 시애틀N
조회 : 3,494  

공순해 수필가
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 지부 수필분과위원장 

핵심
 
마음에 불화가 일어날 때, 나는 계란을 깬다.
그리고 휘젓개로 그 알들을 힘껏, 진지하게 저어댄다. 저을 때 바가지에 부딪치는 소리가 신경을 거슬릴 만큼 강하게 일어나 준다면 더욱 좋다.

미끈덩거리는 물질, 생명이었을 수도 있던 알들이 이윽고 액체로 변한다. 거기에 약간의 물을 붓고 다시 더 꾸준히 젓는다. 그 뒤 국간장으로 간을 맞추고, 어슷 썬 파, 채 친 붉은 파프리카, 깨소금, 후추를 투하한 채 그것들을 한 번 더 잘 섞는다.

내용물이 준비됐다. 그러면 프라이팬을 불에 올리자. 우선 센 불로 프라이팬을 충분히 달구어 기름을 두른다. 그런 뒤 아주 낮은 불로 줄인다. 온도와 타협하는 과정이다

기다림 끝에 타협이 충분히 이루어졌다 생각이 들면, 그리고 저어두었던 계란 물을 프라이팬 전체에 골고루 펴서 붓는다.

색깔은 별로다. 계란 풀은 것에 맹물을 붓고 간장까지 넣었으니 때깔이 고울 리 없다. 허나 걱정할 것 없다. 기다리면 될 것이리니.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계란물은 약간씩 지지직 소리를 내며 서서히 변화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단백질이 익어가는 소리는 생명의 소리, 다정하기 그지 없다.

약간의 시간이 좀더 흐르면 프라이팬 위에는 변화가 확실하게 나타난다. 밑바닥부터 올라오는 완숙의 노란 빛깔. 그러나 뒤집긴 아직 멀었다. 대신 은근하게 익어 올라오는 색깔을 골똘히 들여다보며 마음속에 일어나고 있는 불화를 함께 들여다 본다

불화의 이유는 많다. 상대가 과해서, 경우에 따라선 이 쪽이 과해서. 또는 상대가 부족해서이기도 하다. 물론 내가 부족해서 일어나는 불화도 있다. 그런 상태를 내가 받아들이지 못해서 스스로 불화를 일으키는 것이다. 익어가는 계란 물을 들여다보면서 나는 그런 불화에 대해 몰두한다. 불화의 골이 깊으면 화해의 산이 높아 보이기만 한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다 보면 계란물의 밑부분 색깔이 병아리 털처럼 반쯤 노랗게 변하는 게 보인다. 이제부터가 본격적인 시작이다. 빠지직빠지직 익기 시작한 한 귀퉁이를 살짝 들어올려 안으로 말기 시작한다

이 대목에선 약간의 두려움이 심중에 깃들기도 한다. 바로 요 부분이 이 요리(?)의 핵심, 뜨거움의 중심이기 때문이다

만일 이 초기 단계에서 말기를 실패한다면 나중에 완성된 모양이 우습게 된다. 뜯어 먹다 놓친 빈대떡처럼. 그러기에 성공과 실패의 갈림길에서 긴장한 나머지 두려움이 느껴지기도 하는 걸게다신념을 갖고 온갖 정성을 다 해 집중하여, 단단하고 단정하게 말아 나가기 시작한다.

드디어 중심이 잡혔다. 이젠 뒤집개로 살살 밀어만 주면 된다. 만일 크기가 크다면 두 개의 뒤집개를 사용한다. 이런 경운 양 쪽의 협력이 잘 이루어져야만 한다. 좀 덜 익은 계란물이 있다 한들 그건 상관없다. 뜨거운 중심이 덜 익은 계란물을 끌어안고 함께 덥혀, 스스로 익어 줄 터이니. 일단 모양이 잡히고 아래 위만 잘 잡아 주면 계란물은 저희끼리 알아서 잘 익어 간다.

시간이 좀 지체되어도 좋다. 불은 충분히 약하니까 탈 염려는 없다. 일단 엉기기 시작한 계란물은 뜨거운 중심에 의해 저희끼리 끌어 안고 속도를 높여 스스로 요리를 완성해 나간다. 차츰 일손이 바빠진다. 열정을 다해 뭉친 중심을 따라 바깥도 함께 뜨겁게 익어 가니까 여기부터는 좀 서둘 필요가 있다. 일이 막바지에 오른 것이다.말고 있는 음식이 뜨거운 만큼 내 마음 속에서도 뜨겁고 고통스러운 땀이 흐르기 시작한다
이처럼 자신이 열정을 가지고 중심이 되어 주위를 끌어 안을 수만 있다면 세상의 어떤 불화가 두려우랴. 이루지 못할 융화가 어디 있으랴.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이 순간은 어느 시인의 말이 부끄러울 따름이다. 이 음식의 중심만큼도 뜨겁지 못한 내 차가운 속안을 들킨 것 같아서이다.

그랬기에 천천히, 익어가는 계란을 말고 있는 사이, 계란물들이 열정을 다하여 서로를 끌어 안고 음식으로 변화하듯, 내 마음에도 뉘우침이 일어 불화는 물이 되고 다시 덥혀지고 익어서 서서히 화해 쪽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어느 순간, 마음 안에 도사리고 있던 불화가 가뭇 사라진다.

드디어 계란말이가 완성되었다. 멀뚱멀뚱하던 계란물은 환골탈태하여 노란 병아리 색, 아니 활짝 핀 개나리처럼 생명의 색으로 다시 살아났다. 이걸 알의 부활이라고 부른다면 너무 수다스러울까? 게다 파와 파프리카의 색깔-초록 빨강의 무늬마저 입고 아름답게 누워 있는 모습을 보면, 새로운 물질의 창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것을 식구 수대로 자른 뒤 접시에 담고 살짝 모양을 잡아 식탁에 올린다. 가족들은 그 아름다운 자태에 환호성을 지르며, 서둘러 그것들을 젓가락으로 집어 올린다. 아름다운 화해를 입에 무는 순간의 가족은 행복하다.

그래서 마음에 불화가 일어나는 날이면, 나는 계란을 깬다.



egg 13-07-15 07:34
답변 삭제  
계란말이를 하는데도 이같은 문학적인 접근과 분석이 가능하군요. 문학인들의 세심한 관찰과 분석에 놀랄뿐입니다.
 
 

Total 696
번호 제   목 글쓴이 날짜 조회
51 안문자/웃으시는 하나님 시애틀N 2013-07-14 6247
50 김학인/삶과 기다림 (1) 시애틀N 2013-07-14 4982
49 공순해/핵심 (1) 시애틀N 2013-07-14 3496
48 [이효경의 북리뷰] 김갑수의 『지구 위의 작… (1) 이효경 2013-07-09 5551
47 이현주/호수의 날개 김영호 2013-07-06 3612
46 독립 기념일 (6072) 김충일 2013-07-04 3380
45 김영호/필척 산 김영호 2013-07-02 3483
44 크리스천에게 추천하는 혜민스님의 『멈추면… (3) 이효경 2013-07-02 3927
43 두번째 UW ‘북:소리’ 13일 오후 1시에 열린다 시애틀N 2013-07-02 3891
42 꽃의 왈즈 (6064) 김충일 2013-07-02 3297
41 슬픈 왈즈 (6056) 김충일 2013-06-30 3791
40 임풍 시인/캐스케이드의 아침 시애틀N 2013-06-28 4027
39 송명희 시인/구름발치에 시애틀N 2013-06-27 5692
38 6.25 추모시 (6036) 김충일 2013-06-25 3866
37 서북미의 좋은 시 김영호 2013-06-24 3578
   41  42  43  44  45  46  47  



  About US I 사용자 이용 약관 I 개인 정보 보호 정책 I 광고 및 제휴 문의 I Contact Us

시애틀N

16825 48th Ave W #215 Lynnwood, WA 98037
TEL : 425-582-9795
Website : www.seattlen.com | E-mail : info@seattlen.com

COPYRIGHT © www.seattlen.com. ALL RIGHTS RESERVED.
상단으로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