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월이면 겨울나기 위해 흰기러기 몰려와
시애틀에서 북쪽으로 한 시간 가량
올라가면 라코너라는 곳이 나옵니다.
I-5에서 북쪽으로 올라가다 221번
출구로 나가면 나오는 조그마한 어촌 마을입니다. 물론 오늘은 라코너가 목적지는 아닙니다. 라코너를 가기 전에 있는 철새 보호구역인 ‘Skagit Wildlife
Recreation Area’ 지역이 오늘의 목적지입니다.
이곳엔 매년 1월에서 3월 사이 캐나다 겨울 철새인 흰기러기(Snow Goose)가 겨울을 나기 위해 모여드는 장소입니다. 한
지역에 엄청나게 많은 철새들과 텃새들이 모이는 곳으로 유명한 곳입니다. 1년 중 1월에서 3월 사이가 가장 많다고 합니다.
갈 때마다 새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장관을 볼 수 있는 답은 시간에
있다
나는 이곳을 매년 한번 정도는 들르는
듯 합니다. 매년 가다 보니 습관이 되어 안가면 뭔가 찜찜하게 느껴지곤 합니다. 갈 때는 항상 많은 새들이 반겨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갑니다. 그런데
그것도 생각 같지는 않습니다. 어느 때는 그 넓은 벌판에 새가 거의 보이지 않을 때도 많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복권 당첨 확률과 같은 기분으로 가야 합니다.
나중에 알았습니다. 군대식으로 이야기한면 새들은 분대 별로 따로 움직입니다. 그러다 자기들끼리 무슨 신호가 있는지 어느 순간 한곳으로 모여듭니다. 거의
다 모였을 때가 장관입니다. 갔을 때 새들이 없어 보이는 것은 분대별로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니 하루 종일 기다리다 보면 장관을 볼 확률이 높다라는 말입니다. 한마디로
시간이 해결해주는 곳입니다. ^^
가까이 가서 새들을 놀라게 하면
벌금이 226달러
몇 년 전 일입니다. 내 기억으론 두 번째 방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221번
출구로 나와 라코너 방향으로 길을 잡았습니다. 얼마 가지 않아 좌우로 넓은 벌판이 펼쳐집니다.
드문드문 무리의 새들이 눈에 띕니다. 오래 전에
들러서 보았던 새들의 장관을 다시 볼 생각을 하니 가슴이 뛰기 시작했습니다. 라코너로 넘어가는
길목에 거의 다와 왼쪽으로 엄청난 무리의 새떼들이 보입니다.
사진 촬영을 다니다 보면 주차 공간이
마땅치 않아 애를 먹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런데 다행히도 바로 입구에 조금 넓은 주차공간이
있었습니다. 차를 세우고 카메라들을 챙기고 빠른 걸음으로 새들에게 다가갔습니다. ‘Skagit Wildlife Recreation Area’란 팻말이 조금은 초라하게 서있습니다.
급한 마음에 조금 더 들어가니 그
지역 안전요원이 더 들어가지 말라고 주의를 줍니다. 새들을 보호하기 위한 차원인 듯 합니다. 나중에 알았지만 새를 놀라게 해서 일부러 날리게 한다든가 너무 가깝게 접근하면 벌금으로 226달러란 엄청난 돈을 물어야 한답니다.
자연보호
및 야생 동물 보호에 대한 이들의 생각에 다시 한번 박수를 보냅니다. 이 시기엔 새들 보호
차원에서 안전요원들도 계속 순찰을 돕니다.
앉았다 다시 날고, 날다가 앉았다는 반복해
그리고 우리 이외에 많은 사진가들이
이름도 거룩한 대포(초대형 망원렌즈)로 무장하고 사진들을
찍고 있습니다. 조류 사진이나 야생동물 촬영은 가깝게 접근할 수 없어 이러한 초망원 렌즈가
제격입니다.
그러나 나는 일반 풍경 촬영을 많이 하다 보니 초망원 계열 렌즈는 없습니다. 그래도 굴하지 않고 열악한 장비를 들고 당당하게 촬영을 시작했습니다.
몇 년 전에도 본 풍경이지만 오늘은
유난히 더 많아 보입니다. 뭐라고들 하는지 지저대는 소리가 시끄럽습니다. 앉았다 다시 날고, 날다가 다시 앉고를 반복하면서 무슨
신호라도 주고 받는지 조금씩 계속 오른쪽으로 이동합니다. 이런 풍경을 보면서 참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뭐라 형언 할 수 없는 그런 풍경들이 내 눈앞에 펼쳐집니다. 생각 같아서는 돌을 던지든가 소리를 질러 한꺼번에 날개하고 싶지만 보는 눈들이 많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조금 아쉬운 마음을 가지고 계속 셔터를 눌렀습니다.
파인더에 꽉 찬 새들, 황홀하다는 말 자체가 적합
사진을 오래하고 그래도 웬만한 사진은
자신 있다 생각한 나도 조류 사진이 이렇게 어렵구나를 새삼 절감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사진의
한계는 끝이 없는 듯 합니다.^^
파인더로 보는 이들의 세상은 경이로움
그 자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을 듯 합니다. 정신 없이 눌렀습니다. 세상에 태어나서 한번에 이렇게 많이 셔터를 눌러본 적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만큼 한 컷 한 컷에 자신이 없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예측
불허의 상황으로 전개되는 순간을 잡아낸다는 어려움이 이런 것이구나를 현장에서 느끼는 하루였습니다.
새들의 이동을 따라 계속 옮기다 새들이 모여있는 가장 끝 쪽까지 갔습니다. 어떻게
하면 좀더 좋은 사진을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다시 파인더를 들여다 보는 순간 갑자기 수 천 마리 아니 수 만 마리가 될 것 같은 새들이 동시에
날기 시작했습니다.
카메라 파인더에 빈틈이 없을 정도 새들로 가득합니다. 뭐라 말이 나오질 않았습니다. 황홀 하다는 말이
가장 적합한 듯 합니다. 조그마한 파인더에서 움직이는 새들의 요동은 정말 장관 그 자체였습니다. 정신이 없었습니다. 초점 맞추고 구도 잡고 할
여지도 여유도 없었습니다.
그 느낌 그대로라도 화면에 담았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 밖엔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습니다. 정말 난생 처음 느껴보는 절묘한 기분이었습니다.
황홀한 여운을 느끼기 위해 매년
출사 나가
매년 찾아오는 새들이 줄어들어 마음이
아파
정신을 차리니 새들은 조금 먼 다른
공간으로 다 이동한 상태였습니다. 조금 전에 느꼈던 황홀한 기분의 여운이 계속 남았습니다.
이랬습니다. 이 기분을 다시 느끼고자 매년 찾는 듯 합니다. 그런데 그 후론 그때 같은 많은 새를 보지 못했습니다. 기상이변으로
그랬는지 이곳을 찾는 새들의 수가 해가 갈수록 많이 줄어드는 듯해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지난해는 그때보다 조금 늦게 가보았습니다. 2월3째 주였습니다. 반신반의
하면서 갔습니다. 그래도 실망시키진 않았습니다. 넓은
벌판에 두 군데로 나뉘어져 새의 숫자가 예전보단 많이 작아 보였습니다.
그런데 한 무리씩 한
곳으로 옮겨갔습니다. 새들의 이동을 따라 같이 이동하다 보니 어느새 두 군데의 새들이 한곳에
다 모였습니다. 그런데 좀처럼 날 생각들을 하지 않더니 잠깐 순간에 동시에 날기 시작하더니
다시 한번 감동을 줍니다.
깜박하는 순간에 보는 그 장면 오래
잊혀지지 않아
깜박하는 순간 입니다. 짧은 순간에 보는 그 장면은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습니다. 이런
감동을 여러분과 나눠 보고 싶습니다. 새가 없으면 라코나나 바로 근처에 있는 디셉션 패스를
둘러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자, 이번 주말 한번 떠나 보세요. 새로운 용기와 다짐이 용솟음
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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