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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06-23 03:00
[신앙과 생활-김 준] 영의 귀에만 들리는 소리
 글쓴이 : 시애틀N
조회 : 3,441  

김 준 장로(종교 칼럼니스트)
 
영의 귀에만 들리는 소리
 
일본에 천주교가 전해지던 당시, 폴란드 출신 르도이꼬 신부와 신도들이 겪은 참상을 일본의 종교작가 엔도슈사꾸가 실화 소설로 남겼습니다

일본 당국은 기독교를 전한 선교사와 신도들을 체포한 뒤 그들에게 배교할 것을 강요하면서 예수님을 배반한다는 표시로 예수님의 초상화를 밟고 지나가게 했는데, 그것이 바로 그 악명높은 후미에(그림을 밟는다는 일본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성화를 밟지 않은 신도들을 잔혹하게 처형했는데, 바닷물이 썰물로 밀려나갈 때 거기에 십자가를 세워놓고 그 위에 신도들을 묶어 둡니다. 몇 시간 후 밀물로 바닷물이 밀려오면 그 십자가는 거기에 묶인 신도들과 함께 물에 잠겨 버립니다. 그리고 다시 썰물로 바닷물이 밀려 나갈 때는 십자가에 달린 신도들은 시신이 되어 마치 빨래를 널어 놓은 듯 축축 늘어져 있었습니다.

해변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동안 산골짜기에서는 또 다른 인간 살육이 자행되고 있었습니다.

한 여름 깊숙한 산 속. 사방이 높다란 산정으로 둘려 있는 적막한 계곡에서 수 많은 신도들이 생사의 갈림길인 그 후미에를 통과하고 있었는데, 성화 밟기를 거부한 신도들은 단 칼에 참수되었고 시신들은 피를 쏟으며 질질 끌려 바로 근처에 파 놓은 구덩이에 하나 하나 던져졌습니다. 이 처참한 악의 현장을 살아 계신 하나님은 분명 보고 계실텐데

하나님의 진노가 뇌성벽력으로 천지를 휘몰아칠 것같은 이 계곡에는 피비린내를 맡고 몰려든 파리들의 윙윙 소리 밖에는 아무 것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고요한 적막이었습니다. 완전한 침묵이었습니다.

이처럼 몸서리치는 살육 속에서도 대부분의 신도들이 성화를 밟지 않고 순교의 길을 택하였지만 개중에는 성화를 밟고 죽음을 모면하려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생명은 함께 잡혀온 르도이꼬 신부에게 담보되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만약 그 신부가 나중에 성화를 밟지 않으면 이미 성화를 밟고 생존하려던 신도들도 그 신부와 함께 처형되기 때문입니다.

르도이꼬 신부가 성화 앞에 섰습니다. 이미 살아 남기 위해 성화를 밟은 신도들의 초조한 눈망울과 후미에라는 배교의 갈림길에서 그는 조용히 눈을 감고 마음 속으로 하늘 아버지와 대면하는 그 순간 그 만이 들을 수 있는 하늘의 음성이 고요히 들려왔습니다.

“밟아라! 성화를 밟아라! 나는 너희들에게 밟히기 위해 이 땅에 왔고, 너희들에게서 고통을 없이하기 위해서 십자가를 졌느니라. 성화를 밟는 네 발이 아플 것이다. 그 아픔만으로 충분하다.

비록 그림일망정 주님을 상징하는 그 성화를 짓밟는 그 배신과 모멸의 장면을 보시면서도, 그 그림을 밟으면서 괴로워할 자녀들의 고통이 더 견디기 어려우셨던 아버지의 자비하신 음성이었습니다

그 자비의 손길이 신부에게 닿아 있는 한, 그 분의 영원한 사랑의 품이 기다리고 있는 한, 그리고 신부의 모든 희생이 이 황무지를 개간 시킬 수만 있다면 르도이꼬 신부는 자신의 생명 열개를 묶어 바쳐도 오히려 부족할 것만 같았습니다.

르도이꼬 신부의 생명도, 신도들의 생명도 바로 그 생명 보다 귀한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는 제단 앞에 바쳐지는 것보다 더 값진 희생은 없었습니다. 르도이꼬 신부의 육신은 대지 속으로 잦아 들었으나 그의 영혼은 이미 육신을 떠나 주님 품 안에 안기었습니다.

성화를 밟은 신도들을 수장시키던 저 해변의 침묵도, 인간 살육을 자행하던 저 산중의 침묵도 사실은 침묵이 아니라 우주를 뒤흔드는 하늘 아버지의 사랑의 오열이었습니다

그 오열은 인간의 고막이 포착할 수 있는 진동의 폭을 훨씬 넘는 것이었기에 그것은 영의 귀에만 들려지는 고요였고 속삭임이었습니다. 그 음성은 이 땅에 복음의 씨를 뿌리며 산화한 수 많은 순교자들에게 들려진 신령한 음성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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