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준 장로(칼럼니스트)
끊임없는
성추행
TV나
신문을 보면 거의 매일 유명 인사들의 성추행에 대한 기사가 이어지고 있는데, 알려지지 않은 추행 사건들은
또 얼마나 많이 있겠습니까.
‘남녀 7세 부동석’이라는 예법으로 성추행을 원천 봉쇄하던 때와는 달리 지금은 지나치게 개방된 성문화에 따른 온갖 자극적인 유혹을
헤쳐나갈 도덕적 저항력이 실종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성
도덕과 연관이 되는 실화 하나를 소개합니다. 오래 전 내가 잘 아는M씨로부터 직접 들은 이야기입니다.
그의
친구 S씨는 모범적인 공무원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그러했듯이 그도 일과를 마친 후에는 동료들과 다방에 들러 차를 마시면서 다방 아가씨들에게 짓궂은 농담도 하고, 가끔
술집에 갈 때도 접대하는 여성들을 희롱하면서 그들의 어깨에 손을 얹는 등 가벼운 스킨십을 하곤 했지만 그런 언행은 그 당시 다방이나 술집에서 흔히
있는 일이었기에 S씨는 거기에 아무런 가책이나 죄의식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S씨의 건강에 이상이 생겨 병원을 찾아갔습니다. 증세로
보아 심상치 않은 병 일거라고 짐작했는데 역시 중병이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때부터 S씨는 많은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느 날 문병을 간 M씨에게 S씨는 그의 심경을 털어놓았습니다.
50대 초인 그는 벌어놓은 재산도 없었기에, 만일 그가 세상을 떠난다면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는 두 딸은 어떻게 될 것인가.
대학에 진학도 할 수 없을 것이고, 아버지 대신 직업전선에 나설 수 밖에 없을 텐데, 직장을 찾아 헤매다가
어쩌면 다방이나 술집 같은 곳에서 접대하는 일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르자 그는 자신이 살아온 과거의 생활, 그 다방, 그 술집, 그
식당 종업원들에게 아무렇게나 행하던 그 무례함, 그 비정함이 너무나 후회스럽고 가슴이 아팠습니다.
만일
그가 죽고 그의 딸들이 그런 직장에서 일을 하게 될 때 그 딸들을 대하는 손님들이 자기 딸들을 ‘내
딸처럼’대해주었으면, 그 손님들이 자기 딸들을 ‘아버지를 여읜 불쌍한 딸’로 대해줬으면 하고 바라지만 S씨 자신이 그렇게 살지를 못했기에 염치 없는 기대요 바램이라면서 탄식을 했습니다.
S씨가
함부로 대하던 그 아가씨들은 어쩌면 자신의 딸들보다 더 불쌍한 처지에서 역경을 헤쳐나가려고 직업전선에 뛰어든 그녀들이었기에 그 어떤 직업여성들보다
더 큰 박수와 격려를 받아야 했을 텐데, 그들의 고귀한 인격을 무시하고 살아온 자신의 과거가 너무도
부끄럽고 증오스러웠습니다.
그
후 몇 개월이 지나 S씨의 임종이 가까워진 어느 날 M씨가
마지막 문병을 간 날이었습니다. S씨는 M씨의 손을 꼬옥
붙잡고 기력이 쇠잔한 나직한 음성으로 속삭이듯 말했습니다.
“M선생, 난 죄가 많은 사람이야!”
그렇게 말하는 S씨의 눈가로 눈물이 주르르 흐르고 있었습니다.
죄
많은 사람이 어디 S씨 뿐이겠습니까? 우리는 누구나 다 S씨와 같은 고백을 해야 할 사람들이 아니겠습니까.
사람들은
허다한 죄를 짓고 있으면서도 그 죄에 면역이 되어 죄인 줄을 모르고 살다가 그나마 시간이 지나면 다 잊고 기억조차 못하는 것이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성추행! 무엇이 원인일까요? 사랑의 결핍입니다. 이성을 성의 대상으로만 보고 있는 한 성추행은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이성을, 모든 인간을 사랑의 눈, 형제 자매로서의 눈으로 보지 않을 때 인간은
또 다른 인간에게 못할 일이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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