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로그인 | 회원가입 | 2024-05-13 (월)

시애틀N 최신 기사를 보시려면 여기를 클릭하세요

2021년 1월 시애틀N 사이트를 개편하였습니다. 열람하고 있는 사이트에서 2021년 이전 자료들을 확인 할수 있습니다.

시애틀N 최신 기사를 보시려면 여기를 클릭하세요


 
작성일 : 13-05-13 20:44
안문자/부챠드 가든
 글쓴이 : 안문자
조회 : 6,911  

안문자 수필가
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 지부 회원


부챠드 가든

이민 오기 전 가족들이 부챠드 가든을 여행하며 찍은 사진들을 보내주었다. 천당이 꼭 이럴 거란 생각이 들었다. 시애틀에 오자마자 갔던 첫 번째 여행지가 그 꽃동산이었고 우린 또, 또 가곤했다. 누구나 마찬가지겠지? 꽃을 좋아하는 것 말이다. 나는 꽃을 너무 좋아해서 “꽃 좋아하는 문자야!”라고 부르는 친구도 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꽃이 많은 곳에 가면 “엄마, 꽃하고 사진 찍고 가야지?”했다. 귀찮을 때면 “에이, 또 꽃이네. 엄마 사진 찍어야지…”하기도 했다. 시애틀에도 꽃이 많지만 눈 가는 곳마다 온 천지가 꽃뿐인 곳은 부챠드 가든, 아마 그곳이 최고일 것이다.

빅토리아 섬에서 가장 아름다운 부챠드 가든, 입구에서부터 환성이 터진다. 100여(1904)년 전에 부챠드라고 하는 남자가 사랑하는 부인 제니에게 조그만 정원을 선물했다고. 그 후 부챠드 일가는 시멘트 사업 후에 황폐해진 석회암 처리장을 기름진 땅으로 만들고 여러 종류의 꽃식물을 가꾸기 시작했다는데 조그만 정원을 시작으로 지금은 55에이커의 꽃동산이 되었다고 하니 후손들의 마음이 얼마나 갸륵한지, 경이롭다.

꽃들은 3월부터 10월까지 200만 송이 이상이 피고 진다. 매년 세계 곳곳에서 100만명 이상의 관광객들이 끊임없이 몰려와 잔잔한 파도의 꽃물결을 바라보며 감탄사를 쏟아낸다. 그뿐인가, 밤마다 은은하게 발하는 신비한 불빛 속에서 음악회가 열리고 토요일마다 펼쳐지는 웅장하고 예술적인 불꽃놀이로 황홀한 신음소리가 꽃동산을 흔든다.

그렇다면, 1월부터 3월까지…겨울에도 꽃이 피려나? 물론이다. 온실 속의 온갖 꽃들은 싱싱하게 피어나 꽃숲을 이룬다. 눈보라치는 겨울에도 쉬지 않는다. 하얗게 쌓인 눈을 헤치며 크리스마스 장식과 함께 오색찬란한 수 천 개의 꼬마등이 쏟아지는 별처럼 반짝이고 있다.

이토록 빈틈없는 기획으로 그곳은 일년 내내 연중무휴다. 3대째 내려오는 부챠드 일가, 그 후손들의 효도와 뭉쳐진 가족들의 정성이 얼마나 고귀한지…. 가업을 귀히 여기는 형제들의 사랑과 200명이 넘는 관리인들의 손길에 고마움과 존경의 마음을 보낸다.

이 우주, 이 자연 속에서 사람이 만든 상상할 수 없는 창조력은 하나님의 축복일 것이다. 정성이 깃든 수고는 사람들에게 아름다움을 선물한다. 이것이 나눔의 기쁨이 아니고 무엇이랴. 수 만 가지 꽃들의 표정에 눈이 부시다. 꽃들의 숨소리도 들리는 것 같다. 코끝에 간질거리는 가득한 향기를 마시고 있자니 꽃들이 아우성치며 몰려오는 것 같아 어지러워진다.

“꽃들이 너무 많으니까, 너무 예쁘니까 아찔해진다. 그치?”휘청대며 꽃 벤치에 앉는다. 요정 같은 작은 군악대가 뚜따따… 뚜따따… 흥겹게 지나가고 평화로운 여행객들은 꽃물 든 분홍빛 얼굴로 일제히 웃는다.

나는 꽃이예요/ 잎은 나비에게 주고/ 꿀은 솔방울에게 주고/ 향기는 바람에 보냈어요/그래도 난 잃은 게 하나도 없어요/ 더 많은 열매로 태어날 거예요/

김용석 시인의 시를 떠올리며 소박하면서도 고운 친구와 함께 꽃과 꽃 사이를 하루 종일 누볐다. 꽃 달린 모자를 쓰고.

아들과 이름이 같은 남편의 친구는 재미있는 표정으로 못을 박는다. “어머니, 아무개 아들이 대접합니다. 하하하”바다가 출렁이는 호사스런 레스토랑에서 우리는 어린아이같이 앞치마를 목에 걸었다. 새빨갛게 익은 랍스터를 깨지 못해 쩔쩔매며 또 까르르 웃는다.

문득 하늘을 메우며 흘러가다 멈춘 주홍색의 노을을 바라보고 있자니 괜스레 가슴이 서늘해지며 쿵쿵 뛴다. 우리들이 걸어가야 할 황혼의 시간을 느꼈나? 잔잔한 바다와 붉은 노을이 지평선에 하나가 되어 황금물결로 반짝이고 갈매기 한 마리 황혼에 입 맞추듯 재주를 부리며 쏜살같이 날아간다. 마치 조나단인 것처럼.

여행을 마감하며 아쉬운 마음으로 나는 친구에게 주전자를 폭 감싸는(물이 식지 말라고) 수예품을, 그녀는 나를 위해 분홍장미가 가득 핀 두 개의 찻잔을 샀다. 차를 마실 때 마다 서로 기억하자는 마음을 알아차렸나? 우리는 행복하게 웃었다.

어느 한 구석 버릴 것이 없는 아름다운 섬, 빅토리아! 수 없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꽃덩어리들, 눈이 가는 곳마다 낭만의 극치. 꽃, 꽃, 꽃!

영국을 상징하는 빨간 버스와 고풍스러운 건물들을 뒤로 하고 자동차가 수도 없이 들어가는 거대한 페리속으로 올라오니 텅텅 비었다. 못다 푼 이야기보따리와 웃음보따리를 풀어 헤치고 있는 동안 어느새 잔잔한 항구, 아나코티스의 불빛이 우리를 향해 반짝이며 다가오고 있었다. 아, 즐거웠던 꽃여행은 우리 부부의 마음 밭에 또 한 그루 우정의 꽃나무로 심어졌다.


 
 

Total 696
번호 제   목 글쓴이 날짜 조회
696 안문자/포인세티아 시애틀N 2013-05-06 6386
695 조영철/갈대는 하늘만 바라본다 시애틀N 2013-05-06 4481
694 문갑연/어머니의 솥단지 시애틀N 2013-05-06 5002
693 문창국/꽃 핀다 시애틀N 2013-05-06 4410
692 박경숙/한 박자 느리게 시애틀N 2013-05-06 4339
691 섬돌 김영호/녹이 슬다 김영호 2013-05-13 5354
690 신순희/오늘을 산다 신순희 2013-05-13 4582
689 신동기/형형(炯炯)한 레이니어여 신동기 2013-05-13 4526
688 여기열/지혜를 펼치는 해 여기열 2013-05-13 4176
687 김순영/새해에는 갑절의 은총을 김순영 2013-05-13 3903
686 이한칠/자리 잡기 이한칠 2013-05-13 4360
685 김윤선/가짜로 산다 김윤선 2013-05-13 4730
684 안문자/부챠드 가든 안문자 2013-05-13 6913
683 공순해/그녀의 봉사 공순해 2013-05-13 4208
682 김학인/바람의 길 김학인 2013-05-13 4482
 1  2  3  4  5  6  7  8  9  10    



  About US I 사용자 이용 약관 I 개인 정보 보호 정책 I 광고 및 제휴 문의 I Contact Us

시애틀N

16825 48th Ave W #215 Lynnwood, WA 98037
TEL : 425-582-9795
Website : www.seattlen.com | E-mail : info@seattlen.com

COPYRIGHT © www.seattlen.com. ALL RIGHTS RESERVED.
상단으로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