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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05-13 20:47
공순해/그녀의 봉사
 글쓴이 : 공순해
조회 : 4,206  

공순해 수필가
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 지부 회원


그녀의 봉사

모임의 임원단이 바뀌어 처음 가진 임원회의 자리에서였다. 평소 조곤조곤 재미 있게 말하는 그녀는 그 날도 조곤조곤 말했다.

“이제까지 여러분들이 불편해 하실까 봐 말을 아꼈어요. 그러나 한 번은 말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아 그러니, 불편하시더라도 아량을 베풀어 오늘은 제 말 좀 들어 주세요. 어느 단체에나 뒤에서 궂은 일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단체가 잘 운용되어 나간다고 저는 생각해요. 그래서 대단한 임무는 아니지만 이게 내가 맡은 소명인가 보다 생각하고, 기쁘게 일하고 있는 중이에요. 한데, 이런 경우는 그냥 넘기기가 좀 그랬어요. 제가 이 모임에 속해 있는 걸 아는 친지들이 가끔씩 물어 봐요. 분명 회원이라고 했잖아. 한데 언론에 보도되는 행사의 단체 사진을 보면 왜 얼굴을 볼 수가 없지? 회원이 맞기는 한 거야? 이때 전 참 난감해요. 그 사정을 일일이 설명하기가 좀 그렇잖아요. 행사에서 회원들이 날아갈 듯 차려 입고 단체기념사진 찍고 있을 때, 나는 뒤에서 앞치마 두르고 식사 준비를 하고 있었어. 이렇게 설명하긴 뭣하더라구요. 내가 바보가 되는 것 같기도 해서요. 그렇다고 궂은 일하는 게 싫어서 하는 말은 아니에요. 봉사는 즐거운 일이잖아요. 정말 전 기쁜 마음으로 일해요. 하지만 딱 하나 아쉬운 건, 단체 사진 찍을 때만이라도, 절 끼워 주셨으면 하는 거예요. 어느 한 분만이라도 홍자씨! 홍자씨는 어딨지? 사진은 함께 찍어야지, 라고 챙겨주신다면, 함께라는 의식이 더욱 돈독해질 것 아니겠어요? 몇 년을 이리 지내고 보니 이제는, 나는 이 모임에서 뭐하는 사람인가, 내가 왜 여기 와 있을까, 이런 맘이 들기도 해요. 앞으로도 즐겁게 일할 마음이어서 솔직하게 제 마음을 털어 놓았어요. 미안해요. 너무 솔직하게 말했나. 하하.”

그녀가 이야기를 마치고 콧등의 땀을 닦아낼 때까지 좌중은 누구도 그녀의 말을 가로채지 못했다. 숨죽여 경청했다. 그녀는 우리 모임에서 봉사부장이란 직함을 갖고 있다. 한인들이 갖는 모임에는 악습인지 양습(良習)인지는 모르겠으나, 으레 밥을 먹여주는 관습(?)이 있다.

그래서 우리도 그에 따라 월례회 때마다 밥을 먹었고, 그녀는 모임이 발족한 이래, 4년 동안 식사를 주관해왔다. 언제나 웃는 얼굴로 푸짐한 식사를 주선하는 그녀는 그 방면에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회원들의 위(胃)를 계량하는데 아무도 그녀를 따를 자가 없었다. 그랬기에 구 임원단이 모두 교체되었지만 그녀만은 신 임원단에 다시 합류하게 되었던 것이다.

모임에 참석하게 된 지 2년 되었던 나는 그녀의 밥주걱을 몹시 신뢰했다. 그래서 모임에서 그녀가 밥을 퍼주지 않으면 밥맛이 나지 않는다고 농담을 하기도 했다.

다정한 그녀의 손길이 없는 월례회의 저녁 식사를 상상할 수 없었던 탓이다. 게다 월례회뿐이랴. 일 년에 세 번 치르는 연례 행사-창립 기념 행사ㆍ야유회ㆍ출판 기념회도 그녀를 빼 놓곤 일이 진행되지 않았다. 일이 이렇게 된지라, 우리는 언니나 엄마 같은 그녀의 손길에 마음 놓고 무심히 길들여져 왔나 보다. 그래서 그녀가 어깨가 아프다고, 몸이 아프다고 할 때면, 일을 거드는 시늉만 했을 뿐 그녀의 처지에 대해선 눈감고 있게 되었나 보다.

그리하여 그녀가 설거지 통에 손 넣고 음식과 씨름하고 있을 때, 우리는 날개 같은 옷을 차려 입고 무대 주변에서 담소를 즐겼다. 정기 모임엔 소홀했어도 무대와 사진은 즐겼다. 그녀가 준비된 음식의 양이 모자랄까 봐 한 귀퉁이에 서서 전전긍긍하고 있을 때, 우아하게 식탁에 앉아 젓가락질을 즐겼다. 그 결과 깨닫지 못하는 사이 우리는 우(愚)를 저지르고 말았다. 자신들의 일상이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도움으로 이루어져 간다는 사실을 놓치고 만 것이다.

그랬기에 비로소 속마음을 털어 놓은 그녀 앞에서 나는 쥐구멍이라도 찾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얼굴이 붉어져 대꾸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몹시 마음이 찔린 나는 속으로만 대답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일하는 그대 같은 사람이 많아야 사회는 살 맛 나는 세상이 되지 않겠어요. 당신은 분명 복 받으실 거예요. 부끄러움을 가르쳐 주어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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