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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11-02 22:20
[수필-안문자]손맛대신 마음 맛으로
 글쓴이 : 시애틀N
조회 : 5,342  

안문자 수필가
한국문인협회 워싱턴지부 회원


손맛대신 마음 맛으로

 
뉴욕에 사는 딸이 스마트폰으로 나 깍두기 만들었다!’하며 사진을 보냈다. 남편과 함께 신기한 듯 들여다보다가 ~맛있겠다!’하고 답을 보냈다

딸 아이가 결혼할 때 나처럼 음식을 못할까 봐 걱정을 했다. 중국인 사위는 결혼 전에 그의 어머니가 음식 만들기와 부엌일을 가르쳐 주었단다. 아내를 위하여 네가 많이 알아 두어야 한다면서. 아들이 부엌에 들어가는 것만도 질색하는 한국의 어머니와는 다르다. 중국 남편들이 아내를 극진히 위한다는 평가는 허튼 말이 아니었다.

나는 음식 만들기-하면 기가 죽는다. 40여 년을 이렇게 살아왔으니 남편은 할 수 없이 나의 음식에 길이 들여졌다. 결혼 후 15년 이상, 그러니까 아이를 낳고 부터 이민 오기 전까지 우리 집엔 출퇴근하던 도우미 아주머니가 있었다

내가 직장에서 오면 부엌에 얼씬도 못하게 했다. 이것이 나의 복인 줄 알았지 요리할 기회를 놓쳐 곤경에 빠지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시애틀에서 부모님이 우리 집에 오셨는데 아침을 차린다고 계란 프라이를 하던 나를 보고 한심해 하셨다. 노란 자위가 터져 일그러진 모양이 되었으니까. “너는 아직도 프라이도 제대로 못하니? 쯧쯧.

우리가 이민을 오니까 어머니의 걱정이 태산이다. 애가 과연 무얼 만들어 식구들을 먹이겠나? 음식이야기만 나오면 프라이 사건을 빼놓지 않고 무안을 주셨다

그러나 무얼 어떻게 먹였던 간에 두 아이는 건강하게 자랐고 남편과 나도 강산이 몇 번 변하도록 잘 살아왔다. 어머니는 프라이 사건 대신, “우리 문자가 이젠 음식을 제법 하며 식구들 건사를 잘 하는구나하며 안심하셨다

만들기는 하는데 맛이 없는 게 문제지 뭐.” 자랑도 안 되는 일을 거침없이 말하는 것은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거의가 다 아는 사실이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음식솜씨가 좋은 사람은 머리가 좋은 사람들 같다. 한국에서 어떤 여성이 의과대학 본과까지 다니다가 고만두고 요리 전문가가 되어 큰 호텔의 권위 있는 셰프가 된 예도 있다

어느 가정이나 한 두 가지씩은 주부가 자신 있게 내세우는 별미가 있다. 냉면이라든가, 매운탕이라든가, 고등어조림이라든가. 내겐 그 단골 메뉴조차 없다. 요즘은 한국의 음식문화가 세계에 떨치고 있다. 신선한 재료를 가지고 맛있게 만들기도 하지만 차림새도 격을 갖추었다.

접시에 꽃모양으로 요리를 담기도 하고 어울리는 접시에 사랑스런 모양을 내기도 한다. 음식 만들기를 즐기고 거기에 사랑을 담아 대접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착하고 아름답다. 특별한 재능과 선함을 타고난 사람들이다.

<살아있는 동안 꼭 해야 할 49가지>라는 책이 있다. 먼 훗날, 후회하지 않는 삶을 위하여,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당장 무엇인가를 실천하라는 책이다

이 중에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여 요리하기도 있다. 내가 가장 잘 못해 주던 일을 망설이지 말고 곧 실행에 옮기란다. 바쁜 일 때문에, 우선 순위를 따지다가 중요한 일을 놓치지 말라는 경고의 책이기도 하다

그런데 나는 요리에 자신이 없지만 큰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 아이들도 남편도 내가 요리를 못하는 일에 대해서 불평을 한 적이 없다. 나는 먹는 일에 그리 큰 비중을 두지 않았다. 물론 내가 잘 못하는 일 중에 하나였지만 삶의 의미 중에는 요리 잘하기보다 더 중요한 일들이 많다고 생각했다.

스코트 니어링과 헬렌 니어링 부부는1930년대에 <조화로운 삶>이란 책을 썼다. 시골에서 자연과 더불어 살며 사람이 지켜야 할 원칙과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몸으로 겪으며 쓴 책이다

그들은 생야채와 과일이 주식이었는데 먹는 일에 대한 자세가 얼마나 중요한지, 먹는 것이 인간의 삶에 어떠한 영향이 있는지를 말하고 있다. 하여, 요리법을 가르치지 않는 요리책으로 <소박한 밥상>이란 책도 냈다

여자들이 요리를 하느라고 부엌에서 많은 시간을 소비하는데 간단한 밥상으로 시간을 줄이고 책을 보거나 문화생활을 하라는 것이다. 주로 생식을 하되 조리는 아주 간단하게 하란다
몸도, 삶도, 밥상도 가볍게. 나 같은 사람이 반길 책이다. 그러나 먹는 즐거움이 얼마나 큰지, 맛있는 음식을 누구와 함께 먹는가는 또 얼마나 신나는 일인지 나도 잘 알고 있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는 것, 정말 행복하지 않은가.

어쨌거나, 나는 아무리 머리를 굴리며 맛을 내어도 언제나 시큰둥한 맛이니 어쩌겠는가. 얼마 전에 시애틀에서 많은 사람들이 존경하는 분의 구순 잔치에 갔다. 그분은 평생 음식타박을 한 적이 없으셨단다. 국이 짜면 물을 붓고, 싱거우면 간장을 치면 된다고 하여 축하객들이 와~하고 웃었다. 무엇이나 맛있게 먹고 감사하게 생각한다면 건강하게 살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니까 나 같은 사람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즐겁게 살 수 있다는 합리화에 힘을 보태준 셈이다. 음식 만들기에는 손맛도 있지만 사랑이 담긴 마음 맛도 있다고 생각한다. 정성스런 마음 맛으로 만들면 맛있게 먹을 수 있고 감사하는 밥상도 될 것이다

소박한 밥상이야말로 참 쉽다. 니어링 부부의 음식 먹기를 배우면 되니까. 기름기 많은 성찬으로 차려진 밥상에서 채소 위주의 간소한 밥상으로 바꾸면 된다. 간소한 밥상이야말로 음식을 아끼고 시간을 아끼는 것. ‘잔치하듯 먹지 말고 금식하듯 먹어라. 이것이 영적인 삶을 추구하는 삶이다.’라고 어느 목사님도 말씀하셨다.

내 솜씨 없는 음식 탓에 식탐을 절제할 수 있다면 그것도 건강을 위해 좋은 일이 아닐까. 먹는 일의 절제는 깨끗한 삶의 기본이고 몸을 성스럽게 만드는 거룩함에 기여할 수 있을 것 같다. 소박한 밥상이야말로 믿음의 사람들이 앞장서서 실천해야 할 식생활이며 영성을 위한 삶의 첫 걸음이라고 부르짖는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음식 만들기가 부실한 나를 변명하고 싶어서 억지를 부리는 내 모습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오늘도 나는 손맛대신 마음 맛으로 밥상을 대해주길 바라며 남편을 위해 부엌에서 꼼지락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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