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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06-06 08:42
[시애틀 수필-안문자] 6월의 작약
 글쓴이 : 시애틀N
조회 : 5,312  

안문자 수필가(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 지부 회원)

 
6월의 작약

 
연한 초록이 날로 익어가는 뜰에 나갔다. 향긋하다. 네모난 잔디 둘레로 몇 그루의 나무들이 다소곳하게 서있다

향긋함은 분홍색 작약과 수국, 보라색 라벤다, 두 그루의 장미가 발원지다. 꽃집을 만나면 기웃대지만 이젠 심을 자리도 없다. 화려하진 않아도 보라와 분홍이 녹색과 어울려 풋풋한 6월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그 중에도 소담스레 피어있는 작약이 싱그러움을 더해주는 것 같다.

<타샤의 정원>이라는 책에 상상을 초월한 아름다운 정원이 소개된다. 1915년 보스톤에서 태어난 타샤 튜더! 정원의 주인인 그 예쁜 할머니는 미국에서 사랑받는 동화작가요, 삽화가다

그러나 그녀의 가장 큰 즐거움은 정원 가꾸기다. 사진으로 본 그녀의 정원엔 온갖 꽃들이 구름 떼처럼 피어있고 각종 열매들은 달콤한 향기를 뿌리는 것 같다. 책을 번역한 작가는 천국 같은 정원으로의 나들이라고 표현했다

30만평의 정원은 버몬트주의 한 시골에 있다. 초대를 받았거나 구경하러 온 사람들은 꽃들의 찬란함과 향기에 취해서 숨이 멎어 버릴 것 같다고 했다

지금도 후손들이 그녀의 정원을 이어오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6월이면, 타샤의 정원에 가고 싶다. 그녀의 정원에도 작약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타샤는 말했다. “작약, 나는 폭탄이 터지는 것 같은 이 꽃이 좋아요.” 그렇다. 크고 작은 꽃잎들이 겹치고 포개져 터질 듯 넘치게 피는 작약에 가장 잘 어울리는 표현일 게다.

우리 집, 연분홍 작약이 꽃송이가 너무 커서 사방으로 늘어졌다. 더러는 고개를 숙이고 있다. 유월의 가슴 아린 역사를 기억하며 묵념이라도 하는 것일까. 땅을 바라보고 있는 힘겨운 꽃 가지를 꺾어다가 여기저기 꽃병에 꽂는다. 온 집안에 작약의 향기가 은은하다. 그 탐스러운 꽃송이를 들여다보고 있자니 콧등이 시큰댄다. , 평양의 6월에도 작약이 피었었지.

그 옛날, 아버지가 전도사로 있던 평양의 동부교회에서는 어린이 주일을 꽃주일이라고 했다. 아이들은 모두 꽃을 들고 왔고, 교회 안은 온통 꽃으로 가득했다

그 주일은 625가 터지기 몇 주 전이었다. 이 꽃주일이 예배의 마지막이 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을까? 젊은 전도사였던 아버지에게 어느 권사님이 사진을 찍자고 했다

금테안경의 고상한 권사님과 어린이 성가대원 몇 명이 사진관에 가서 사진을 찍었다. 성가대였던 언니는 세라 복을 입었고 성가대에 끼이지 못한 꼬맹이 나는 엄마가 만들어 주셨던, 치마 밑에 주름이 레이스처럼 달린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우리들은 모두 꽃을 들고 있었다

권사님의 꽃다발에 한 송이, 연분홍의 큼지막한 작약이 늘어져 있었다. 권사님은 작약을 빼어 아버지의 꽃묶음에 끼어주셨다. 아버지는 웃으며 권사님의 꽃묶음에 다시 끼어드렸다. 꽃송이가 왔다 갔다 하며 서로 양보하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결국은 아버지의 꽃묶음에 작약이 들어갔다. 아버지의 묶음에서도 꽃송이는 옆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는 아버지와 권사님의 그늘진 얼굴 때문에 어린이들도 꽃을 들고 있지만 시무룩해 보였다.

꽃송이가 무거워 늘어진 우리 집 작약이 평양의 작약과 닮았다. 은은한 향기를 풍기고 있는 커다란 작약에 아버지의 젊은 얼굴이 겹쳐진다. 아버지는 꽃송이를 조심스럽게 바쳐 들고 계셨다.

사진은 이별을 위한 마지막 인사였다. 사진을 찍은 후, 아버지의 꽃과 나의 꽃을 합쳐 내가 안고 있던 꽃다발에서도 작약은 슬프게 늘어져 있었다. 우리들의 마음이 가라앉은 것은 어른들이 수근 대던 이야기에서, 무엇인가 불길함이 가까이 오고 있다는 소문이 번져오기 때문이었을 게다.

모두들 꽃다발을 안고 있었지만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권사님과 아버지는 몸조심하고 잘 있다가 다시 만나자고 근심 어린 얼굴로 인사했다. 나는 눈물이 조금 나왔다. 꽃을 받아 꽃병에 꽂으시던 엄마의 얼굴도 수심에 가득 찼다. 꽃병에 담긴 작약이 옆으로 기울어져 계속 슬퍼하고 있었다

소문대로 얼마 후에 전쟁은 터지고 말았다. 내 안에 묻혀있는 서글픈 작약의 추억이다. 그때의 사진은 아직도 어머니의 앨범에서 잠잔다.

조붓한 정원에서 꽃송이들이 폭탄처럼, 그리고 잔잔한 미소처럼 피어난다. 아침을 맞는 작약에선 눈부신 꽃잎 사이에 살포시 안긴 이슬이 반짝이며 웃는다

저녁엔 온 종일 사랑의 햇살에 빼 꼼, 봉오리가 더 나타났다고 우쭐댄다. , 신비는 숨어 있고 생명은 약동한다. 새소리, 물소리, 꽃들의 숨소리는 가냘프게 들려도 웅장한 하나님의 손길은 크게 느낄 수 있다

비록 버거운 꽃송이로 가지가 늘어졌을지라도 나의 작약은 슬프지 않다. 평양에도 지금쯤 작약은 만발했겠지. 넘치는 풍성함에 늘어진 꽃가지를 조심스레 세워본다. 그 옛날 아버지가 하셨던 것처럼. 사연을 담은 침묵의 세월은 속절없이 흘러가는데.

흐려지는 눈시울엔 아랑곳없이 6월의 작약은 함박웃음으로 나를 달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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