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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9-04 14:07
[시애틀 수필-이한칠] 손
 글쓴이 : 시애틀N
조회 : 3,782  

이한칠 수필가(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 지부 회원)
 



 
나는 싱그러운 초록이 너울거리는 시애틀의 여름을 사랑한다. 화창한 날씨에 집을 나서기만 하면 산, 바다, 그리고 호수 등 갈 곳이 천지이다. 시애틀을 사랑하는 마음은 이곳에 사는 우리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 사는 사람들도 매한가지인가보다.

8월에도 한국에서 세 팀의 손님들이 다녀갔다. 이곳을 다녀간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시애틀을 다시 방문하고 싶다고 말한다.

손님들이 올 때면 나는 종종 막걸리를 만든다. 그들과 내 손으로 빚은 막걸리의 잔을 기울이며 정담 나누기를 좋아한다. 그 바람에 아내도 덩달아 할 일이 늘어났다. 바로 막걸리 안주를 준비하는 일이다. 불고기, 해물파전, 오징어 초무침, 해삼탕, 낙지 볶음 등 안주 차림이 푸짐했다

평상시 아내와 주로 양식으로 식사를 해오던 터인지라, 막걸리 덕분에 화려한 한식이 등장할 때면 나는 신이 난다.  

매번 하는 것처럼 이번에도 친구들을 위해 막걸리를 빚었다. 새로운 안주도 등장했다. 바로 오향 돼지족발이었다. 집에서 기른 깻잎에 고추, 마늘과 함께 싸서 먹는 쫄깃쫄깃한 그 족발의 맛에 모두 찬사를 보냈다. 때로는 와인을 즐기기도 했는데, 안주 때문인지 막걸리가 가져다 주는 운치를 훨씬 더 좋아했다.

태평양을 넘나드는 그리운 이들과 만나고 헤어지는 일이 반복되면서 반가움과 아쉬움이 교차하는 분주한 여름이었다.

일상으로 돌아와 언뜻 보니, 아내의 왼손 집게손가락에 반창고가 감겨 있었다. 그녀의 손은 고운 편이다. 내가 의아해서 손가락에 웬 반창고를 감았느냐고 물었다

대답인즉슨, 족발을 썰다가 손을 베었다고 했다. 정성껏 기름을 빼내어 꽁꽁 묶어 냉장고에서 굳혔더니 워낙 단단해져서 썰기 쉽지 않았단다. 그 얘기를 하는 아내의 얼굴에 피곤이 조롱조롱 달려 있었다

그제야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언젠가 내가 지나가는 말로 막걸리 안주로는 돼지족발이 제격이라고 했던 게 맘에 걸렸다. 또 내가 막걸리 만드는 일을 즐기듯, 아내가 요리할 때도 그런 줄만 알았지 힘들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손님들이 오면 맛깔스러운 음식에 정담을 나누며, 함께 즐길 일에만 관심을 두었던 나는 반창고가 감긴 손가락을 보는 순간 민망해졌다. 그동안 잘해 오더니 일을 저질렀구나 싶기도 하지만, 아내의 손이 그만하길 다행이라고 여겼다.

그러고 보니 오래된 사진 한 장이 생각났다. 나를 포함, 9남매를 키워내신 것도 모자라셨는지, 어머니는 우리 큰 아이가 태어났을 때 세이레 동안 막내며느리인 내 아내를 수발해 주셨다

아내의 말에 의하면, 광어 미역국은 물론, 과일 주스를 만들어 매일 아침 며느리 머리맡에 갖다 놓으셨단다. 아기에게도 오롯이 정성을 쏟으셨는데 그때 찍힌 어머니의 손 사진이다.

아기를 왼팔로 안고, 어머니의 오른손 장지를 아기의 다섯 손가락으로 잡게 하시고는 ‘이 다음에 세상을 돕는 큰 인물이 되어라’고 어르곤 하셨다. 아기의 고사리 손이 할머니의 굵은 마디 손가락을 꼭 잡고 할머니를 올려다보는 모습은 작품사진이었다. 그 아기들은 잘 성장했으니, 할머니의 덕담이 이루어진 셈이다. 불현듯 돌아가신 어머니가 보고 싶다.

어머니의 마디 굵은 손이나 아내의 베인 손을 떠올리니, 슬며시 못생긴 내 손에 눈이 간다. 야구공도 잘 던졌고, 컴퓨터 키보드도 매일 두들기며, 막걸리도 곧잘 만드는 내 손, 참 많은 일을 하는 손이라 생각하니 새삼 괜찮이 느껴진다. 앞으로 내가 이 괜찮은 손으로 얼마나 좋은 일을 더 할 수 있을까.

세상에 소중한 손은 참 많다. 그 중 하나는 아시아 최초 청각 장애 사제 박민서 신부의 손이다. 장애인으로서 사제가 되기 위해 미국 유학 등 갖은 어려움을 극복한 신부님. 농아인들에게 수화통역사가 해주는 미사보다 사제가 직접 수화로 미사 집전을 해주고 싶어 했다. 드디어 사제가 되어 그들에게 수화로 미사를 집전하는 신부님의 손은 과연 귀한 손이다.

아내의 손을 잡아 본다. 역시 내겐 귀한 손이다.

손가락은 왜 베이고 그래…”

“……?”

()들이 많이 오면 이래저래 나는 즐겁지만, 쪼끄만 당신 손은 진짜 고달프겠다.”

시애틀의 여름 열기가 서서히 사위어 간다. 구월이 오는 소리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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