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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3-26 15:01
[시애틀 수필-정동순] 봄이 쳐들어 왔다
 글쓴이 : 시애틀N
조회 : 2,321  

정동순 수필가(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 지부 회원)

 
봄이 쳐들어 왔다

 
오호라, 해다. 맑고 깨끗한 해가 떴다. 몇 주 동안 이어진 시애틀의 궂은 날씨를 겪어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마침내 비가 그치고 밝게 해가 난 날의 기분을.

열 일 제쳐 두고 산책을 나선다. 마을의 호수와 그린벨트 숲길을 한 바퀴 돌아오는 코스다. 햇살이 환하니 사람들의 표정도 밝다. 만나는 사람들도, 따라나선 개들의 발걸음도 경쾌하기만 하다

호수로 가는 길엔 갖가지 크고 작은 나무들이 있다. 나뭇가지 사이로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를 듣는다. 작은 새들은 추운 겨울 동안 어디서 비를 피했을까? 짝짓기하려는지 그 노랫소리에서 지극한 정성이 느껴진다.

빨간 날개 블랙버드는 떨기나무 끝에 저만치 혼자 앉아 호수를 보며 길게 ‘트윗’ 하고 소리를 뽑는다. 잠시 후엔 저편에서 ‘트윗’ 하고 맞장구치는 소리가 들린다. 코튼 트리의 높은 가지에 앉아 경쾌하게 지저귀는 새는 주황색 가슴 털로 보아 로빈이다. 로빈의 노래는 피아노 건반 위를 부지런히 움직이며 만들어내는 봄의 왈츠 같다.

작은 참새들이 낮은 관목에서 촉촉거린다. 소리는 박자를 받쳐주는 마림바 소리 같다. 찌이릉 찌이릉 노래하는 새는 이름을 모르겠다. 까마귀도 질세라 여기에 ‘까악’ 엇박자를 넣는다. 그리고 나무통을 두들기는 딱따구릿과의 소리가 ‘다다다닥’ 이어진다.

새들의 노랫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는지 블루베리의 붉은색 가지도 마디 끝마다 통통하게 부풀어 있다. 꽃 몸살을 앓고 있는 것 같아 애처롭다. 겨울을 견디며 땅속의 유기물들을 가지 끝으로 뽑아 올리기 위해 얼마나 많은 애를 썼을까? 

한겨울에 눈이 오면, 나무의 밑동 부분이 제일 먼저 녹는다. 살아있는 생명의 몸부림이 아니고서야 어찌 식물의 몸체 부분의 눈이 먼저 녹겠는가. 이른 봄에 노오란 꽃을 피워 우리를 즐겁게 하는 수선화도 몇 주 이상의 추운 날씨를 견뎌내는 과정을 거쳐야 꽃을 피운다고 한다. 작은 식물도 노력 없이 저절로 꽃을 피우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봄은 아프면서 오는 거라 했던가. 겨울의 끝자락이 보이기도 전부터 앓기 시작했다. 몸이 확실히 전과 같지 않았다. 옷을 여러 겹 입어도 한기가 느껴졌다

한 번 시작된 기침은 잦아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무슨 수치가 높고 뭐가 안 좋으니 꾸준히 운동하라는 의사의 처방을 실천하기 위해 규칙적으로 산책을 시작했다. 이제 건강을 걱정해야 하는 나이가 되었구나 생각하니 우울하기까지 했다.

빗소리에 잠을 설치기도 여러 날이었다. 어느 날은 모처럼 좋은 날씨에 허겁지겁 길을 나섰는데, 순식간에 검은 구름이 몰려와 해를 가리더니 빗방울이 후두둑 떨어졌다. 갑작스럽게 내린 작달비에 꼼짝없이 흠뻑 젖었다. 

겨울비가 잦았던 탓에 호수 둘레길은 물웅덩이로 막힌 부분이 생겼다. 산책길 중간에 잠시 쉬면서 호수의 풍경을 내려다보던 전망대. 거기 가는 길도 물에 막혔다. 아쉽지만 왔던 길로 되돌아 가야 했다. 호수에서 서식하는 물오리들만 좋은 시절을 만났는지 모여 있는 무리가 아주 많았다.

비가 너무 자주 내려 뜰을 살펴볼 엄두마저 나지 않았다. 어느 날, 비가 그친 틈을 타서 내다보니 앞마당에 수선화가 피기 시작했다. 뒷마당에 나가 보았더니 웬일인가! 쑥이 벌써 수북이 자랐다. 머위는 손바닥만한 잎사귀들을 가득 펴고 꽃대를 올리고 있었다. 

가을에 심었던 마늘은 어느새 한 자나 자라 있었다. 뜰에서 가장 일찍 꽃을 피우는 자두나무는 하얗게 꽃이 피어서 꽃잎을 떨어뜨리고 있다. 변덕스러운 날씨, 반갑지 않은 방문객처럼 찾아와 좀처럼 일어나지 않으려는 잔병들과 씨름하는 사이에 바깥세상은 그렇게 변화하고 있었다.

모처럼 점심 약속이 있었다. 날씨 이야기를 하다가 일행 중에 누가 그런다. “올해는 봄이 그냥 쳐들어 왔어.” 고개를 끄덕이며 웃다가, 같이 먹고 있는 여인네들이 대나무 소쿠리를 들고 양지바른 밭둑에서 나물을 캐는 상상을 했다

햇살을 등에 업고 밭둑을 따라 나물을 캐며 집안 대소사며, 소소한 웃음거리를 나눈다. 달래며 냉이도 캐고 마른 풀섶에서 통통하게 자란 쑥을 찾으며 행복해한다. 저녁을 넉넉하게 해줄 나물을 한 소쿠리씩 채울 때쯤이면 몸에 깃든 겹겹의 잔병들과 우중충한 기분이 봄바람에 실려 멀리 날아갈 것 같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노란 개나리꽃이 흐드러지게 핀 것을 보았다. 우리 집 앞마당에도 연분홍 로드덴드론이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다. 정말로 봄이 왔구나! 아직도 겹겹이 겨울옷을 껴입고 있던 마음이 화들짝 깨어났다. 나는 무엇으로 이 봄에 장단을 맞추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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