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순 수필가(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 지부 회원)
소확행
우리 집 뒤뜰엔 사계(四鷄)가 평화롭게 노닐고 있다. 자칫 삼계탕이 될 뻔한 닭들을 우리 집에
데려온 것은 아무래도 우리 복이었다. 우리도 닭을 키워볼까 하던 참이었다. 옆집도 몇 년째 닭을 기르고 있어 용기가 났다. “닭들이 곧 알을 낳기 시작할 만큼
컸습니다. 처녀 닭이에요.” 키워 준 공으로 삼계탕용 닭을 드리고 귀염둥이들을 데려오게 되었다.
닭들이 뒤뜰에 오자 작은 변화가 일어났다. 방에만 있던
십 대 아이들이 마당에 나가기 시작했다. 닭이 모래 목욕하는 것을 관찰하기도 하고, 먹이도 주면서 어울려 놀았다. 그래서 사과나무 그늘에 평상을 만들었다. 해먹도 달았다. 가족들이 평상에서 점심을 먹으며 닭들을 보기도 하고, 해먹에 누워 책을 읽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닭들도 곧 이름을 갖게 되었다. 봄, 여름, 가을, 겨울-민들레다. 둘째가 네 마리이니까 봄,
여름, 가을, 겨울로 하자고 했다. 물을 잘 마셔서 여름이, 순둥이 봄이, 대장 가을이, 마지막 한 마리의 이름이 문제였다. 큰애는 민들레를 잘 먹으니까 민들레로 하자고 하고, 둘째는 사계절에
맞추고 싶어 했다. 그래서 중재한 이름이 겨울-민들레가 되었다.
“닭들을 먼저 볼까, 아이들을 먼저 볼까?” 직장에 다녀온 남편은 곧장 뒤뜰로 나가 닭들과 논다. 상춧잎을
들고 있으면 닭들이 달려와 뜀뛰기 경쟁을 한다. 작은 샴페인 포도를 던져 주면 그걸 먹으려고 달리기
시합을 한다. 아이들 과자는 안 사 줘도, 닭들에게 주려고
여치를 사 오기도 한다. 남편에게서 천진한 어린 아이의 모습이 보인다.
뉴저지에 사는 친구에게 닭 사진을 보내 줬더니 생긴 모습이 다 다르다고 신기해했다.
“얘들이 다 출신지가 달라. 봄이랑 가을이는 조상이 중국에서
왔고, 여름이는 남미 페루 종이래, 겨울-민들레는 미국 토종이고.”
“미국이라 닭들도 출신지가 인터네셔널한가 보네.”
닭이 조금 더 자라자 사과나무에 두른 울타리가 더는 소용이 없어졌다.
닭들이 날아서 울타리 너머로 진출했다. 결국은 울타리를 걷어내었고 뒷마당 전체가 닭들의
놀이터가 되었다.
가을에 접어들면서 닭들이 하나둘 알을 낳기 시작했다. 끙끙
앓으며 알을 낳는 수고를 안쓰럽게 지켜보게 되었다. 아직 따뜻한 달걀을 손에 쥐며 우리가 먹는 알 하나에
담긴 자연의 정성을 알게 되었다.
키워 보니 닭들은 학습을 잘 하고 꽤 영리한 동물이다. 소리도 잘 듣고 눈도 아주 밝다. 닭들이 기분 좋을 때 내는 소리, 겁먹을 때 내는 소리와 배고플 때 내는 소리도 이해하게 되었다.
일하다가 가끔 눈도 쉴 겸 뒷마당을 내다본다. 닭들은 마당
저쪽 끝에서 땅을 헤집고 놀다가도 내 모습이 창가에 어리기만 해도 머리를 쭉 내밀고 전력을 다해 달려온다. 닭들에게
나는 무엇일까? 그 모습을 보면 꼭 무언가를 줘야 할 것 같은 부채감을 느낀다. 닭들을 훈련시키는 것은 고사하고 닭들이 나를 훈련시키고 있지 않나 싶다.
요즘 소확행(小確幸 )이란
말이 유행이다. 작지만 확실한 행복.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수필집에서 유래한 말이라고 하는데 이 말에 공감하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크고 원대한 목표를
위해 일상을 희생하지 말고, 평범한 일상이 주는 소소한 행복의 가치를 발견하고 실천하자는 면에서 호소력이
있는 것 같다.
예전에 문병이나 문상 간 어른들에게서 자주 들었던 말이 있다. 그리 고생하다가 이제 살 만하니 이리되었다. 많은 사람이
부와 성공을 향해 쉼 없이 스스로를 다그치면서 미래를 담보로 현재를 누리지 못한다.
나에게도 빽빽하게 할 일들만 적힌 수첩, 늘 바쁘지 않으면
뭔가 불안했던 때가 있었다. 요즘은 ‘너무 노력하지 말아요’나 ‘각자의 리듬으로 살자’는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소확행은 그 목표가 달성되면
큰 행복이 오리라는 믿음 때문에 지금 자신이 누릴 수 있는 행복을 놓치지 말자는 것이다.
우리에게 닭을 준 집에서는 우리에게 준 것이 닭이 아니라 행복이라고 말한다. 행복은 강도(强度)가
아니라 빈도(頻度)가 중요하다고 한다. 작지만 확실하게 자신의 기분을 좋게 해 주는 것, 닭들에 대해 배우고
함께 놀면서 깨달았다.
소소한 일상을 즐길 줄 아는 여유, 그리고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도 습관이다. 마당에 닭을 보러 나간다. 닭들이
내 뒤를 졸졸 따라다닌다. 오후의 햇빛이 수선화 꽃봉오리에 내려앉는다.
가진 것을 감사하고 오늘을 누리자.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