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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06-11 17:03
정동순/포세이돈과 벌새
 글쓴이 : 시애틀N
조회 : 3,786  

정동순 수필가


포세이돈과 벌새

 
오월이 왔네요. 정원에 내린 햇살이 정말 눈이 부셔요
살랑살랑 부는 바람은 부드럽게 새잎들을 간지럼 태우고요. 바람이 얼러준 나무는 부쩍부쩍 키를 키워 새들을 불러요. 제 마음도 한 점 바람이 되어 새를 따라 높은 전나무 위에 올라가 봅니다. 높은 나무에 흐르는 바람이 나뭇가지와 어울려 노래를 해요. 나뭇가지를 비벼서 쏴아쏴아 파도소리를 내요.

찌이르찌이르, 치카디디디, 칩 칩, 쓰르 쓰르 쓰르르르륵. 나뭇가지마다 갖가지 새들이 봄에 겨워 노래를 해요. 새소리에 귀를 열어두고 뒷마당을 거닐어요. 윗집 담장을 따라 무성하게 핀 라일락은 보랏빛 향기로 벌써 동네잔치를 벌였답니다

호기심을 감추지 못하는 여학생 같은 아랫집 분홍색 로드댄드론은 발돋움을 하고 담장을 넘겨다보다 나에게 들키고 말았어요. 물오른 모란꽃 봉오리도 선 볼 날을 잡아둔 처녀 같은 눈부신 자태를 하고 있네요. 텃밭에는 어린 채소들이 올망졸망 자라고 있어요.

저는 오월이 베푼 잔치에 무엇을 할까 하다가 물을 주러 가기로 해요. 마음먹고 새로 장만한 분사기는 새싹들을 위한 이슬비, 좀 더 자란 토마토를 위한 샤워비, 또 먼 곳의 나무를 위한 폭포비를 뿌리는 다양한 기능이 있지요. 이런 호사스런 분사기의 기능들을 시연해 보며, 뒷마당에 있는 텃밭에 물을 주고 있었어요.

분사기에서 물방울들이 떨어질 때, 문득 그 분사기가 다이아몬드를 만드는 기계가 아닐까 착각이 들더군요. 햇빛을 받은 물방울이 정말 다이아몬드처럼 반짝반짝 떨어지더라고요

물방울의 춤사위가 무르익을 때, 라일락 향기도 물을 먹으러 오나 봐요. 물을 주고 있으면 라일락 향기가 더 진해지는 것 같아요. 여기에 오래 서 있으면 내 몸에서도 라일락 향기가 날까요? , 라일락은 우리말로 수수꽃다리래요. 이름이 정말 예쁘죠?

분사기에서 뿜어 나오는 물을 보고 있으니까 문득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생각났어요. 유럽에 가면 멋진 분수마다 서 있는 포세이돈의 조각상이 있잖아요. 포세이돈은 지진을 일으키고 무시무시한 해일을 불러오기도 하지요

현대인들은 어쩌면 매일매일 성난 포세이돈처럼 사는 것 같아요. 말을 타고 바다를 휘달리는 포세이돈처럼, 자동차를 타고 오늘도 거친 운전자들 사이에서 돌아다니셨죠? 성난 포세이돈처럼 지내신 분은 제 말을 들어 보세요. 아무리 무서운 포세이돈이라 할지라도 꼼짝 못할 일이 있어요.

뒷집에는 새잎들이 무성한 버드나무가 있어요. 그 눈록색 가지가 실바람에 잠시 흔들리는가 싶은 순간이었어요. 마치 동화 속에서처럼 그 가지들 사이에서 엄지손가락만한 새 한 마리가 포르르 날아왔어요. 순간 저는 꼼짝할 수가 없었어요

제가 움직이면 그 새가 놀라서 날아가 버릴까 봐서요. 제 눈은 새를 따라다니며 부동자세로 호스를 들고 있는데, 글쎄, 그 조그만 새가 물줄기 사이로 날아드는 거예요. 마치 샤워하며 물장난치는 아이처럼요. 날개는 보이지 않고 길쭉한 부리와 등만 보였어요. 한 마리 벌새였어요. 몸의 빛깔이 초록과 파랑이 반짝반짝 어우러진 무지개 색이었어요.

벌새는 1초에 날갯짓을 20~90번도 한다지요. 후진비행도 할 수 있대요. 꽃들을 찾아 다니며 꿀을 먹을 땐 부동자세로 비행을 하고요. 벌처럼 꿀을 먹기 때문에 벌새라고 한다죠? 그런데 그 작은 몸으로 어떻게 1초에 90번의 날갯짓을 할까요?

땅에 약간씩 물이 고이기 시작했어요. 포르르르 날아다니던 벌새가 갑자기 물방울이 떨어지는 곳에 가만히 내려앉았어요. 날개를 살포시 접고 앉으니, 등의 깃털이 무지갯빛으로 더욱 반짝였어요. 작은 대롱 같은 긴 부리로 가만히 물을 몇 번 찍어 마시더군요.

저는 이 신기한 광경을 놓칠까 봐 숨도 쉴 수가 없었지요. 이 작은 새 앞에서 분수를 굽어보는 포세이돈 동상처럼 꼼짝 할 수 없었지요. 날아다닐 때는 보이지도 않게 분주하던 날개를 접고 그 작은 등에 가만히 물도 몇 방울 맞았어요. 그리고 시원한지 깃털을 털더니만 다시 새잎들이 무성한 나뭇가지 사이로 포르르 날아갔어요.

페루에 있는 나스카 평원에는 거대한 벌새 그림이 있다고 해요. 엄지만한 작은 벌새를 높은 하늘에서만 알아볼 수 있는 거대한 크기로 그려놨다고 하더군요. 벌새 그림의 몸길이는 100m에 달한다고 해요. 누가 어떤 목적으로 어떻게 그렸는지는 아직도 신비에 싸여 있다고 해요. 아무튼 벌새는 예전부터 특별한 주목을 받아온 것만은 틀림이 없나 봐요

저는 오늘 전설같은 이 벌새를 보았어요. 다시 벌새를 본다면 언제든지 시원한 물줄기를 내뿜으며, 온순하고 착한 포세이돈 동상이 되어 줄 거예요.

아아, 그런데 어쩌죠? 텃밭에 물을 줄 때마다 그 녀석이 오지 않나 기다리게 될 것 같은데….


포세이돈 13-06-11 23:50
답변 삭제  
글이 너무 경쾌해요...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본듯하게 맑은 느낌입니다. 감사해요.
나도 포세… 13-06-12 13:52
답변 삭제  
저도 함께 벌새를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예쁜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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