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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6-25 18:35
[시애틀 수필-이 에스더] 선물
 글쓴이 : 시애틀N
조회 : 4,630  

이 에스더 수필가(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 지부 회원)

선 물


막내의 생일이 다가온다아이에게 꼭 필요한 것을 선물하고 싶은데 마땅히 생각나는 게 없다. 뭔가 특별한 선물이 없을까 하며 이것저것 헤아리는데 문득 그니의 얼굴이 떠오른다.

애들은 그니를 예쁜 이모라고 불렀다. 황량한 벌판에 달랑 우리 식구만 서있는 것 같았던 때, 커다란 쌀 포대를 든 그니가 문 앞에서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그니의 차는 식료품과 아이들 간식거리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그날 예쁜 이모와 함께 놀이공원에 갔던 아이들은 얼굴에 함박꽃을 그리며 돌아왔다. 어린 나이에 입양되어 간호사가 된 그니는 어려운 사람을 보면 언제 어디서든 내 일처럼 나서서 도와주곤 했다. 예쁜 이모를 통해 우리 집에 흘러온 사랑의 물줄기는 그니가 그랬던 것처럼 쌀 포대를 앞세우고 다른 곳으로 이어졌다

어느 가정에 막 들어서는데, 그이도 마침 쌀을 사러 가려는 중이라고 했다. 아침에 쌀이 동났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냐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아이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커뮤니티로부터 꽤 큰 장학금을 받았다. 아이들에게는 격려와 희망이 되고, 우리에겐 위로와 감사가 넘치는 커다란 선물이었다. 그러나 마음 한 구석에는 기쁨보다 더 큰 부담감이 자리를 잡았다. 귀한 사랑의 빚을 어떻게 갚아야 할지 커다란 숙제가 되었다. 그런 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막내가 사회인이 되었다.

오랜 만에 아이들과 한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제는 우리가 받았던 사랑의 빚을 갚을 때가 되었다며, 커뮤니티를 위해 작은 것이라도 시작하자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졸업 시즌에 맞춰 가족 장학 기금을 마련하기로 했다. 작은 겨자씨를 심는 아이들의 가슴에는 이미 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첫 걸음을 내딛는 모두의 얼굴에 웃음꽃이 가득하다. 작은 마음들이 어우러진 기쁨의 꽃이다.

지난 겨울 옆집 나무가 우리 뒷마당으로 쓰러졌다. 부서진 담장보다 쓰러진 나무에 마음이 갔다. 밤새 몰아친 비바람을 견디지 못해 부러진 나무는 차디 찬 바닥에 누워 하늘만 바라고 있었다. 한 무리의 새들이 몰려들어 나무의 젖가슴을 헤치며 열심히 먹이를 찾고 있다. 문득 죽은 엄마 곁에서 젖을 찾으며 울다 지친 아이의 텅 빈 눈동자가 떠올랐다.

언젠가 본 사진 한 장이 쓰러진 나무 위에 겹쳐 보였다. 나무는 내 안에 그 아이의 눈동자를 새겨놓고 토막 난 몸으로 트럭에 실려 갔다.

쓰러진 나무 이야기를 귀담아 듣던 막내가 며칠 후 제 방에 두 아이의 사진을 걸어놓았다. 인도를 마음에 품었던 아이는 그곳의 아이들과 인연을 맺었다. 귀엽고 예쁜 여동생들에게 생일선물을 보낸다며 부산을 떨기도 했다

원래 생각했던 대로 우리 다섯 식구 수와 짝을 맞추려면, 아직 한 아이를 더 기다려야 한다. 지구촌 어디에선가 우리를 향해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을 그 아이의 모습이 궁금하다.

언제 심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데 화단 가운데 연한 줄기가 쑥 올라오더니 보랏빛 공 같은 꽃이 활짝 피었다. 처음엔 탁구공만 하더니 한 겹이 더 피어나 테니스공만큼 커졌다. 잊고 있었던 꽃이 피어올라 마당을 환히 밝혀주는 것만도 고마운데, 제 가슴을 열어 벌들에게 꽃물을 나눠주는 모습이 기특하고 갸륵하다.

내 안에도 작은 씨앗 하나가 심어져 있다. 때론 조급하여 흙을 들추어보기도 하고 추위에 얼어 죽지 않을까 염려도 했지만, 어느 땐 기억조차 못할 때도 있었다. 그런데 이제 굳은 땅을 뚫고 올라오는 작은 새싹의 숨소리가 점점 가까이 들려오는 것 같다. 꽃이 되기 위해 오랜 잠을 자야 했던 알뿌리처럼, 한 알의 겨자씨가 큰 나무를 이루어 그 가지에 새들이 깃들 날을 그려본다.

선물을선한 물이라고 나름 뜻풀이를 하고 싶다. 우리가 받은 귀한 선물들은 선한 물이 되어 우리의 마음 밭을 흡족히 적셔주었다. 이제는 기쁨의 꽃을 피우며 다른 곳을 향해 흐르고 있다. 작고 얕은 물줄기라 흐르다가 행여 막히지나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하지만 걱정보다는 마음 바닥에 자꾸만 쌓이는 욕심의 쓰레기들을 치우는 부지런함을 더욱 앞세워야지 싶다. 그러고 보면 선한 물을 흘려 보낼 수 있는 오늘’present이야 말로 가장 좋은선물’present이 아닐까.

아무래도 막내의 생일 선물은 며칠 더 고민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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