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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8-21 13:41
[시애틀 수필-정동순] 열다섯 살의 여름
 글쓴이 : 시애틀N
조회 : 4,534  

정동순 수필가(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 지부 회원)

 
열다섯 살의 여름

 
아들이 속한 보이 스카우트에서는 이번 여름에 레이니어 산의 원더랜드 트레일을 도는 6일간의 산행을 계획했다. 파라다이스에서 시계방향으로 산을 돌아 썬라이즈에 도착하는 일정이었다

뭐든 시큰둥하던 아이가 산행을 준비하기 위해 5월부터 주말마다 10마일 하이킹에 참여하는 등 뜻밖에 꽤 적극적이었다.

드디어 산행을 시작하는 날. 아이가 몇 번을 풀었다 쌌다 하며 무게를 줄였지만, 배낭은 여전히 무직했다. 깡마른 아이가 저 등짐을 잘 견딜 수 있을지, 산길을 잘 걸을 수 있을런지? 모든 걱정을 몽땅 나에게 안긴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는 무척 들뜬 표정이었다.

7월 초, 레이니어 산의 등산 철이 좀 일러서인지 야영장이 문을 열지 않는 곳이 있어 일정이 5일로 축소되었다. 또한 <50마일 하이킹> 이라더니, 실제로는 60마일 정도였다

첫날은 도착 후, 오후에 산행을 시작한 관계로 5마일만 걷고, 그 다음 나흘 동안55마일을 걸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큰 문제는 날씨였다.대원들이 출발한 날부터 비가 오거나 흐린 날이 계속되었다.

출발 전, 아이들과 동반하는 일행 한 명이 인공위성에 의한 위치추적 링크를 알려 주었다. 산에 간 사람들과 연락할 수는 없었지만, 이 첨단기술 덕분에 아이들이 산을 오르고 있는지 계곡을 건너고 있는지 시시각각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것이 자식에 대한 걱정을 사서 하는 부모에게는 꼭 좋지만은 않았다.

셋째 날이었다. 16마일, 25km를 걸어야 했는데, 어쩐 일인지 아이들이 아침10시쯤 좀 늦게 출발하더니, 9시가 다 되어 가는데도 예정된 야영장에 도착하지 못하고 있었다. 밖에는 빗소리가 제법 컸다.

‘비는 오고, 날은 어두워지고 등산화에도 물이 고여 질척거린다.이마에도 빗물이 흘러 잘 보이지도 않고, 등에 짊어진 배낭은 비에 젖어 어깻죽지는 찍어 누르는 듯 괴롭다. 주저앉고만 싶다.’

내 걱정에 탑을 쌓아 올리듯 밖은 점점 어두워져 갔다. 위치점은 아직도 산길에서 깜박이고 있었다. 올림픽 경기에 출전한 선수의 부모 마음이 이럴까? 자식을 군대에 보낸 마음이 이럴까?

입안이 바짝바짝 말랐다. 아들이 커갈수록 더 기도할 일이 많을 거라고 어느 분이 그랬다. 저절로 눈을 감고 손을 모았다. 9 20. 드디어 위치점이 야영장에 멈추었다. 무사히 도착했구나!

다음 날은 더 일손이 잡히지 않았다. 상념을 떨치려고 배추를 한 박스 사서 김치를 담그고, 아이의 이불을 빨고, 또 마당의 잡초를 뽑았다.

드디어 일행이 산에서 내려오는 날! 개선 장군을 환영하듯 부모들이 기다리고, 아이들을 태운 차가 도착하였다. 팡파르가 울리기도 전에 차문이 양쪽으로 열리더니 건장한 청년(?)들이 나타났다. 지친 기색도 없이 너무나 멀쩡하고 밝은 표정의 청년 하나가 나에게 다가왔다.

“엄마!”
청년은 엉거주춤 나를 안아주었다. 해 내었구나! 그 사이 청년이 되어 돌아온 아들은 배낭에서 젖은 옷, 침낭, 텐트 등을 꺼내었다. 퀴퀴한 냄새가 집안에 퍼졌다. 산에서 있었던 이야기도 삼계탕 국물에 풀어냈다. 그런데 아무리 살펴도 아들은 고생한 표시가 별로 나지 않았다.

다음날, 보이 스카우트 공유 사이트에 산에서 찍은 영상과 사진들이 속속 올라왔다. 텐트에 쏟아지는 빗소리를 녹화한 것, 계곡을 따라 시원하게 흐르는 물줄기, 수줍게 피어난 야생화 군락, 침엽수 너머로 보이는 만년설, 운무가 지나가는 산등성이에서 한가하게 풀을 뜯고 있는 산염소 떼. 나의 근심이 헛되었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듯이 모든 사진 속의 풍경들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며칠 어미의 애간장을 다 녹인 아이에게 갑자기 약간의 질투심마저 느꼈다.

아이는 이런 풍경들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한걸음 한걸음이 천근만근 무거웠을 순간들이기도 하다. 나보다 훌쩍 키가 커버린 아이. 어쩌면 산행에서 아이가 어깨에 짊어진 것은 무거운 짐이 아니라 미래를 향한 꿈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한 장의 사진을 오래도록 바라본다. 청년은 커다란 배낭을 메고 구름이 살짝 내려앉은 만년설 봉우리를 향해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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