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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7-10 15:22
[시애틀 수필-김윤선] 쟈가 누고?
 글쓴이 : 시애틀N
조회 : 4,442  

김윤선 수필가(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 지부 고문)

쟈가 누고?

 
“띵똥!”

기척이 없다. 거실에서 현관까지, 노인네의 느린 걸음이라도 지나치다.

“안 계실 리가 없는데…….”

또 한번 초인종을 눌렀다.

“띵똥!”

아니나 다를까, 어머니의 높은 지청구가 밖에까지 흘러나온다. 이윽고 현관문이 열리고 젖은 손을 훔치며 어머니가 나를 맞는다.

“너거 아버지가 저렇다. 실컷 니 온다고 문 열어주라고 일렀는데 웬 낯선 여자가 현관 앞에 서 있다며 문을 열지 않는다. 들어와라. 먼 길 오느라 고생했다.”

여느 때 같으면 얼른 가방을 들어주셨을 아버지가 남 보듯 맨송맨송하다. 나는 어머니 뒤에서 그렇게 서계시는 아버지를 두 팔로 감쌌다.

“아버지, 미국에서는 이렇게 인사해요.

“허허”

엉거주춤 몸을 맡긴 아버지가 멋쩍은 표정이다. 젊었을 때 쌀 한 가마니를 번쩍 들어 올리셨다는 기운은 물기 없는 지푸라기마냥 허망하다.

“아, 오랜 만에 아버지랑 엄마에게 절하고 싶네.

만류하는 어머니를 앉히고 두 분께 절을 했다.

“한번만 해라.

넙죽 절하고 일어서려는데 눈물 한 방울이 뚝 떨어졌다. 어느 새 어머니의 눈에도 눈물이 괴어 있다. 그 사이, 또 이 년이 흘렀다.

이튿날 아침밥을 먹으면서 생선살을 발라 아버지의 수저 위에 얹었다. 아버지의 체구가 한없이 작아 보인다.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아버지가 따라다니면서 묻는다. 쟈가 누구냐고? 웬 낯선 이가 우리 집에서 자느냐고?”

아버지가 뜬금없이 내게 물으셨다.

“남해서 왔어요?”

“예? 하기야 남해서 왔지예. 아버지를 따라. 하하.”

경남 남해군 남해면이 아버지 고향이다.

오후에 어머니와 함께 장보러 나가서 망고 한 상자를 샀다. 수입 과일이라며 값이 엄청났다. 우리 동네 코스코(costco) 가격의 다섯 배는 됨직했다

손이 오그라들었지만 /반중 조홍감이 고와도 보이 나다/....../ 찾아가 반길 이 없으니 그를 서러 하노라/ 속으로 고시조를 읊조리며 배포를 늘렸다. 서울에 사는 동생 덕에 몰랑몰랑한 망고에 맛을 들이셨다나. 잘 익은 한 개를 골라 아버지께 드리면서 어머니가 말했다.

“영감, 이 비싼 과일을 우리 큰딸, 윤선이가 샀소.”

이튿날엔 빵집에 들러서 빵을 샀다. 아버지께 드리며 이번엔 내가 큰소리로 말했다.

“아버지, 이 빵은 아버지 큰딸, 윤선이가 샀습니다.”

날마다 아버지께 새로운 먹거리를 사드렸다. 그리고는 그것을 큰딸인 윤선이가 샀다고 생색을 냈다. 과연 먹을 것에 마음이 동했는지 아니면 혈육의 정이 이어졌는지 설핏설핏 나를 바라보는 눈이 애틋했다.

며칠 뒤, 과일 한 접시를 들고 아버지 옆에 앉았다. 아버지의 망각 속에 묻혀 있을 내 기억을 되찾기 위해서다. 먼저 고향의 기억을 들추어냈다. 어린 시절을 찾아가는 아버지의 기분이 무척 즐거워 보였다

초등학교와 사범학교 시절을 거치고 해방 이후, 교직에 들어서면서 아버지의 기분은 고조됐다. 결혼을 하고 이윽고 내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마침내, 어린 날 잃어버리고 찾아 다녔던 일을 회상하면서 흐릿하나마 나를 기억하는 듯했다.

친정에 있는 동안 우연히 아버지의 책장에서 내 어린 시절의 앨범과 상장 상자를 발견했다. 나도 잊어버린 초등학교와 중고교 때의 상장은 물론이고 대학 졸업장, 교사자격증까지 상자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간 몇 번이나 이사를 다녔는데도 상처 하나 없이 보존돼 있다니, 울컥했다. 그날 밤, 내 기억 여행 또한 참으로 달달했다.

며칠 뒤에 귀국길에 올랐다. 아파트 현관문을 나서는데 아버지가 가방 끈을 만지작거리며 서성인다.

“또 오너라.”

쟈가 당신의 큰딸, 윤선인 줄 이제 확실히 아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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