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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08-04 10:26
[시애틀 수필-이한칠] 내 신발
 글쓴이 : 시애틀N
조회 : 2,796  

이한칠 수필가(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지부 회원)
 
내 신발
 
신발을 가지런히 벗어놓아라.’어려서 자주 듣던 말이다. 나는 여기 한 짝 저기 한 짝 벗어던지기 일쑤였다. 한 짝이 마당 멀리 개집까지 날아가 개가 물어뜯었던 일도 기억난다. 신발, 내가 가는 곳마다 말없이 함께해주니, 소중한 친구가 아닐까. 내 몸이 아니면서 내 몸인 것이 바로 신발이지 싶다.

중학교 때까지 운동화를 신었다. 서울로 고등학교를 와보니, 친구들은 구두를 신고 있었다. 멋 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 나도 검은색 구두를 맞추어 신었다. 시간을 아껴야 했던 예비고사 준비 중에도, 나는 구두약을 박박 칠해 빛나는 구두를 신고 다녔다.

새 등산화를 신고 산행한 덕에 발가락에 물집이 생겼다. 매일 신던 구두 대신 샌들을 신으려고 차고에 있는 신장을 기웃거렸다. 아니, 이럴 수가. 깜짝 놀랐다. 큰 신장 세 개가 신발로 꽉 찼다. 아이들이 동부로 떠날 때 못 쫓아간 신들은 상자에 얌전하게 앉아 있었다.

아내의 신발도 적지 않았다. 길고 짧은 부츠와 단화들, 갖가지 샌들 등, 몇 켤레인지 셈하기가 민망했다. 한국에서도 미국에 와서도 하이힐을 좋아하더니, 십 센티미터가 넘는 킬힐도 꽤 있었다. 그나저나, 이 높은 구두들을 언제 골고루 신으려나.

아뿔싸, 사돈 남 말 한다더니 내 신발도 만만찮다. 검정과 갈색톤 캐주얼화와 정장 구두들, 운동화도 여러 켤레였다. 등산화는 목이 긴 것, 중간 것, 짧은 것과 골프화도 헌 것, 새 것 등 샌들과 슬리퍼도 한몫 했다. 댄스화까지 반갑다고 고개를 내밀 때, 나는 두 손 들었다. 내가 단순한 삶을 주장했던 건 말뿐었다는 것이 들통나는 순간이었다.

미국인 친구가 헌 신발을 모아 기부하는 일에 열성이다. 남아메리카와 아프리카 오지에 신발을 보내는 줄 알면서도 나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기부할 신발이 없는 줄로 착각했다. 이다지 많은 신발을 갖고 있었으면서도. 맨발인 누군가가 내 신발을 신어 행복하고, 발을 보호하여 전염병도 예방할 수 있다니 얼마나 좋은 일인가.

이탈리아로 여행을 다녀왔다. 패션 도시 밀란의 라 스칼라에서 오페라를 감상하고 피렌체로 갔다. 두우모 성당 가까이 있는 페라가모 구두 박물관을 둘러보았다. 페레가모 제품은 가방, 벨트, 지갑 등 다양하지만, 구두가 제일 인기인 것 같다.

아홉 살 때 구두공으로 시작한 페라가모는 구두업계에 독보적인 존재가 되었다. 그는 마릴린 먼로와 오드리 헵번, 다이애나비 같은 유명한 이들의 구두를 도맡았다. 전시장을 둘러보니, 신발도 액세서리였다. 페라가모 신발이 값진 이유도 알 듯했다.

아무리 값나가는 구두라 해도 내 발에 맞아야 내 신발이다. 등산화가 불편하다. 새 신이 내 발과 친해지려면, 시간이 필요한 줄 알면서도 헌 등산화에 자꾸 손이 간다. 친구도 옛 친구가 좋다고 하더니, 헌 신발이 내 발에 착 감긴다. 새 등산화와 친구가 될 때까지 기다려야하듯이, 인간관계도 서로를 알 때까지 인내심이 필요한 것 같다. 

사람의 첫인상이 중요하듯, 신발도 그 사람을 나타낸다. 때마다 내게 맞는 신발을 잘 선택해야 원하는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다. 신발을 신고 어디를 돌아다녔느냐가 바로 나의 이력서(履歷書)가 아니던가. 이력서의 한자어가 신발의 역사라는 뜻을 나타내는 걸 보면 재미있다. 

남의 신을 신고 걸어보라는 속담이 있다. 상대방의 입장에 서보라는 말인데, 실행하기는 쉽지 않다. 내 차선으로 조심 운전을 하여도 예기치 않은 상황에 맞닥뜨릴 때가 있다. 옳은 일을 하기 위해 주어진 현실에 지혜롭게 헤쳐 나아가야 하는 일은 당연하다. 경우에 따라, 상대의 말이나 행동에 타내기보다 침묵하는 편이 훨씬 나을 때도 있다.

미중 무역전쟁이나 한일관계처럼 나라의 운명이 걸린 큰일이 아니라면, 서로 보듬어 주는 미덕이 필요하다. 허물을 덮어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 자라고 하지 않던가. 헌신짝 내던진다는 좀 뭣한 표현처럼, 판단과 행동을 섣불리 하여 좋은 사람을 잃는 일은 없어야겠다. 개인은 물론, 여느 공동체에서도 적용되는 일이지 싶다.

온 신발들을 펼쳐 놓으니, 차고 바닥이 빼곡하다. 희로애락을 같이 느끼고, 무거운 내 몸무게를 지탱해주었던 내 신발들, 정성껏 손질했다. 차곡차곡 상자에 넣어 떠나 보낼 준비를 끝냈다.
지구촌 먼 곳에서 다른 이의 고단한 발을 감싸줄 내 신발,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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