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들이 외국인들에게 하는 거짓말 중 한 가지.
‘안녕하세요’는 가족을 포함하여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쓰는 인사말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아들이나 딸이 아빠, 엄마에게 ‘안녕하세요’라고 아침마다 인사하는 집은 없다. 식구끼리는 꺼리는 인사말이다. 그렇지만 식구의 범위를 벗어나 따로 떨어져 사는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인사하는 것은 이상하지 않다.
TV에서 아나운서가 시청자들에게 ‘안녕하세요/안녕하십니까’라고 인사하는 표현도 이상하지 않다. 부모와 자식 간에 ‘안녕하세요’는 어색하지만 가족이 아니라면 허용되는 인사말이다. 결혼한 딸이 친정 엄마나 아빠에게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한다면 부모와 자식 간의 거리를 짐작하게 만든다. 예컨대, 재혼한 부모인가 하는 오해를 불러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친정 부모에게 사위는 얼마든지 장인 장모에게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할 수 있다. 직접적인 부모와 자식 간의 거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PCC에서 나는 학생들에게 ‘안녕하세요’를 한국의 ‘식구(食口) 문화’로 설명한다. 식구는 나의 몸 곧, 나와 항상 함께 있는 공동 운명체이다. 부모와 자식은 한 몸뚱이인 것이다. 그렇지만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벗어나면 그 순간부터는 딴 몸뚱이가 된다. 딴 몸뚱이는 한 식구가 아니기 때문이다. 아까 손자가 같이 살고 있지 않는 할아버지나 할머니에게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는 것은 이상하지 않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한 집에서 한 식구로 사는 한 몸뚱이 문화로 인식할 때는 '안녕하세요'는 어색한 표현이 된다. 학교 갔다 온 손자의 인사로는 '학교 다녀왔습니다, 할아버지!'라고 해야 자연스러운 인사말이 된다. 한 가지 더 예를 든다면, 장가 못 간 삼촌이 한 집에 살고 있다면, 조카는 삼촌에게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지 않는다. 한 식구의 개념인 한 몸뚱이이기 때문이다. 식구(食口)는 한 식탁에서 함께 밥 먹는 사이를 말한다. 그러므로 '안녕하세요'의 인사말은 한 집에서 한 몸뚱이 인식의 판단으로 결정된다.
예외 한 가지가 있다면, 군대 간 아들이 부모님에게 그동안 ‘안녕하셨는지요/안녕하셨습니까’라고 편지글을 썼다면, 이 상황은 아들과 부모의 거리는 서로 떨어진 기간만큼 딴 몸뚱이가 된다. 그렇지만 제대한 후 아들이 집에 왔다면, 다시 예전처럼 딴 몸뚱이에서 한 몸뚱이의 관계로 회복된다. 한 몸뚱이가 된 이상 ‘안녕하세요’란 인사말은 더 이상 허용되지 않는다.
어제 수업 중 예상치 않은 질문을 하나 받았다.
왜 ‘안녕하세요’는 맞는데 ‘안녕이에요’는 맞지 않느냐는 질문이다.
한글 학교 선생님들이나 일반 국어 선생님들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75회 말뿌리 공부 ‘나(Jerry)야, 공부(Study)해’에서 ‘하다’ 동사는 보이지 않는 단어/‘이다’는 보이는 단어 뒤에 쓰인다고 설명했다.
‘안녕’이란 단어는 눈에 보이는 단어가 아니다. 그러므로 ‘안녕+하다’의 결합으로 ‘안녕하다’란 형용사를 형성할 수 있다. 또 하나, 외국인들이 많이 쓰는 표현 중에 ‘감사합니다’란 단어는 ‘감사+하다’의 결합으로 이뤄진 말이다. '감사예요'가 될 수 없다. ‘감사’는 눈으로 볼 수 없고 가슴으로 느낄 수 있는 단어다. '예요/해요'의 쓰임은 문법의 굴레에서는 해석되지 않는다. 각자 인식의 결정으로 알 수 있다.
나는 ‘하다/이다’가 한국어 학습에서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10주 과정 동안 가르치고 있다.
한국어를 공부할 때 맞춤법만 고집하는 학습보다는 머리로 느끼고 판단하는 학습법이 나는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