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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10-17 00:55
[시애틀 수필- 공순해] 우회로
 글쓴이 : 시애틀N
조회 : 3,771  

공순해 수필가(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 지부 회장)


우회로

 
비가 온다. 7월에 비가 온다. 4월 우기가 끝나면 9월까지 지상 낙원을 펼치는 이 고장. 이곳은 그간 7개월간의 우기를 참으면, 5개월간의 지상천국을 즐길 수 있는 고장이었다

그러나 한국의 삼한사온이 없어졌듯 여기도 이젠 그 구분이 없어져갈 모양이다. 요즘은 7월 야외행사에도 일기예보를 점검해야 한다.

살기가 점점 불편해진다. 여기 와서 가장 불편했던 건 길이었다. 달리다 길을 놓치면 주저 없이 U턴해야 한다. 다른 도시에선 길을 놓치면 그 다음 블록으로 돌아가면 됐다. 그러나 여긴 대부분 길이 그대로 끊기고 만다. 길은 늘 숲앞에서 끝나거나 호수 앞에서 끊어진다. 막다른 길이니 돌아갈 우회로가 없다.

이뿐 아니다. 길 하나에 이름은 왜 그리 많은지. 뉴욕 맨해튼 남쪽 끝 478 도로에서 이어져 브루클린을 관통하는 오션 파크웨이는 길 끝나는 남쪽 바닷가 코니 아일랜드까지 그대로 오션파크웨이다. 브루클린은 미국에서 네 번째로 큰 킹스 카운티를 이르는 이름이다또 퀸즈 동쪽에서 시작해 보로를 관통하는 노던 부르바드도 서쪽 마지막 동네까지 줄곧 노던 부르바드다

한데 여기 남북을 잇는 도로 99번은 지나가는 동네마다 이름이 달라진다. 동네의 짧은 도로 또한 마찬가지다

좀 달리다 보면 달라진 도로명에 초보들은 순간 핸들 흔들리는 경험을 하게 된다. 처음 찾아가는 동네엔 그야말로 내비게이션 없이는 갈 수 없다. 왜 그렇게 길 이름을 정해야 했는지 나름대로 이유가 있겠지만, 새로운 거주자들에겐 적응 잘 안되는 일이다.

차선 운용도 마찬가지다. 뉴욕에서 트럭은 전용차선으로 달린다. 한데 여기선 마음 놓고 차선변경하며 달린다. 익스프레스 차선, 합승차선, 추월차선, 입맛대로다. 그야말로 운전수 맘대로차선 변경하며 달리는 트럭 뒤를 따라 가려면 간이 콩알만해진다

특히 몇 개씩 연결된 트레일러 뒤나 화공 물질을 실은 덩치 큰 트럭 옆을 따라가려면 식은 땀이 솟고 입안이 바싹 마른다. 보통 그들은 속력을 늦추고 달리기에 체증유발까지 심하다. 트럭 전용차선을 운용한다면 도로 환경이 훨씬 개선되지 않을까.

이 고장에서 또 하나 낯선 건 바람이다. 바다에서 직접 불어오는 야생의 바람은 수시로 나무를 쓰러 뜨려, 자주 끊어지는 전선으로 해서 생활에 불편을 겪기도 한다. 한데, 길만 나서면 늘 불만스럽던 어느 날, 문득 내부에서 그 바람에 걸린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거침없이 불어오던 바람이 아무렇게 나팔 벌리며 치솟은 나뭇가지가 걸리적 대기에 우지끈 부러뜨려 버렸던 걸까. 불편이란 이름의 부러진 가지. 불편이란 순응의 반대 개념이다

새로운 곳에 적응하지 못하는 불편함은 외부로부터 영향받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부에 도사리고 있던 어떤 옹이였다.

성장한 곳에선 눈 두는 어느 곳에나 산이 있었기에, 20분 정도 버스를 타고 교외로 나가면 언제나 등산이 가능했다. 버스 안에서 잘생긴 인수봉을 힐끗 거리며 도봉 입구에 도착하면 가뿐하게 산을 오를 수 있었던 즐거움. 하기에 여기 처음 도착했을 때 그 익숙한 느낌이 좋았다

게다 여긴 산정(山頂)마다 골짜기마다 호수가 오롯이 숨어있어, 비경(秘境)을 이룬다. 조금만 달리다 보면 문득 맞닥뜨리는 이름없는 호수들과 숲. 어느 주거지에나 호수가 있고, 마을은 숲으로 둘러싸였다. 숲은 모든 것을 환경에 내어주고, 산에는 늘 안개가 감돈다

선녀 옷자락 같은 안개. 하기에 산은 갑사로 치장한 청신한 여인네의 느낌이다. 선계(仙界)에 든 듯싶다. 벌판 바닷가 뉴욕과는 사뭇 다른 정취다.

여긴 마을과 길 이름 또한 생소하다. 거의 토착민 인디언의 이름인 탓이다. 시애틀시의 이름이 추장 시애틀 이름에서 왔다는 건 주지의 사실. 사는 동네 이사콰만해도, 어느 인디언 용사의 이름이겠거니 했더니, 그들의 언어로 새소리라는 뜻이란다. 새소리동네? 알게 된 순간,사는 곳이 더욱 정겹게 다가왔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며 더 알게 된 이곳의 특징은 되도록 자연을 훼손하지 않으며 길을 내었다는 점이다

뉴욕과 같이 서로 우회로가 되어 주는 곧은 도로를 갖추려면 산을 허물고, 호수를 메꿔 도로를 냈어야 하리라. 이점을 깨닫고 나니 숲과 호수 앞에서 끝나고 마는 길에 앙앙불락했던 자신이 머쓱했다숲과 호수를 무찔러 길을 내고, 거침없이 달려야만 직성이 풀리는 도시인의 습성이 무안했다

길의 우회로를 요구하기 전, 먼저 마음 안으로 우회로를 냈어야 했을걸. 이제 7월의 비에 불평을 거두고 화해를 청해야만 할까? 삶의 도약은 먼 곳에 있지 않으이. 자연과 더불어 숨쉬는 생활은 평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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