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원숙 시인(워싱턴주 기독문인협회 회원)
골프장에서 생긴 일
남편과 싸우고 나면 시애틀로 나를 찾아오는 LA 친구가 있다.
함께 골프도 치고 2~3일 놀다 보면 스트레스와 화가 모두 풀렸다며 돌아가곤 한다.
지난해 여름, 그 친구와 함께 골프장을 찾았다 생긴 일이다. 골프는
통상 4명이 함께 치는데 마침 시간대가 맞아 두 남자가 우리와 함께 치는 썸(sum)이 됐다. 한 남자는 30 대로
보이는 흑인이었고, 다른 남자는 홍콩에서 왔다는 50대였다.
즐겁게 골프를 즐기자며 서로 인사를 나누고, 첫 홀에서 티샷을 하게 됐다. 나와 친구는 상대 남자들에게 기다리는 번거로움 등을 주지 않으려는 배려로 여자 티로 가지 않고 그냥 남자 티에서
같이 치기로 했다. 우리가 먼저 치게 됐는데 문제는 이때부터 시작됐다.
나와 친구는 필드에서 벗어나지 않고 똑바로 180 야드와170 야드를 잘 쳐냈다.
이어 남자들의 차례가 됐다. 홍콩 남자가 먼저 나섰는데 여자들보다 더 잘 쳐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이었는지 있는 힘을 다 주고 치더니 그대로 필드를 벗어나, 볼을 칠 수 없는 OB(Out of Bounds) 가 나고 말았다. 이어 티샷에 나선
흑인남자 역시 있는 힘을 다해 쳤지만, 땅만 판 채 공을 맞추지도 못했다.
처음에 그렇게 친절하게 대했던 그 남자들이 화가 났는지 첫 홀부터 말을 하지 않고 딱딱한 분위기로 돌변했다. 다섯 홀쯤에서는 흑인남자가 친 볼이 모래밭 가장자리로 떨어졌다. 이
남자는 이때부터 혼자 소리를 내며 욕을 하기 시작했다. 모래밭에서 공을 쳐내지 못하자 화가 치밀어 쌍욕을
하더니 골프채를 집어 던져 높은 나뭇가지에 걸려 떨어지지 않았다.
골프채를 찾으려고 시름하고 있는 그를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 홍콩 남자와 세 사람이 다음 홀로 이동했다.
그런데 마지막 홀인 18 홀에서 홍콩 남자에게 웃지 못할 해프닝이 벌어졌다. 140 야드 파3 인 이 홀은 그린이 언덕 위에 자리하고 있어 티샷을
하는 아래에서는 그린을 볼 수 없다. 세 사람이 각자 볼을 치고 올라가보니 공이 두 개 밖에 없고 하나가
보이지 않았다.
홍콩 남자는 두 개의 공이 자기 것이 아닌 것을 확인하고는 그린 옆 풀밭으로 가더니 슬그머니 주머니에서 공을 꺼내 떨어뜨리고 큰소리로 외쳤다. “여기 내 공이 있어요”라고.
골프장에서는 이런 행동을 ‘알 깐다’고 하는데 우리는
모른 체 하며 퍼딩을 하려고 깃대를 뽑는 순간, 공 하나가 홀 안에 끼어있었다. 홍콩 남자가 홀인원을 한 것이었다. 우리가 “홀인원”이라고 기뻐 소리를 쳤더니 거짓말한 것이 들통난 그는 허둥지둥
떠나버렸다.
평생에 한번도 못하는 사람이 많을 정도로 힘든 홀인원을 하고도 축하를 받을 수 없는 안타까운
사건을 자처한 것이다.
골프도 우리네 인생살이와 꼭 닮았다. 힘이 있다고 힘만 믿고 치다가는 OB가 나고 뒤 땅을 치기도 하듯 우리도 함부로 살다간 모래밭 같은 험난한 곳이나 되돌릴 수 없는 웅덩이 속으로
빠지기 십상이다.
골퍼들에게는 익숙한 이야기지만 골프를 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힘을 빼는 것이다. 힘을 많이
주고 욕심을 내면 그 만큼 유연성이 떨어져 더 점수를 못 낸다. 힘을 빼고 또박또박 치면 늦게 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좋은 점수를 얻게 된다. 권력과 돈을 믿고 호기를 부리며 힘을 쓰게 되면, 교만해져서 결국은 무너지고 마는 인생의 이치와 같은 셈이다.
홀인원을 하고도 도망쳐야 했던 홍콩 남자처럼 거짓과 속임수로 사는 인생은 결국은 자기 것을 모두 잃게 된다. 욕심내지 말고 겸손한 자세로, 그리고 자신과 남을 속이지 않는 정직한
삶을 살다 보면 결국은 기쁨과 보람으로 되돌아오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