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순해 수필가(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 지부 회장)
대체 뭐로 만든 걸꼬
식약청에서 스크럽 제품 생산중단을 권고한단 기사가 언뜻 눈에 스쳤다.
스크럽이라… 뭘 북북 문지른단 거지? 생소한 용어가 어디 이뿐이랴. 뭘 뜻하는 외국어(?)인고 해서 내용을 읽었다. 뒤지지 않으려면 그저 부지런해야 한다.
“우리가 쓰는 생활용품, 화장품속 미세 플라스틱은 물과 함께 씻겨 내려가 세면대로 흘러간다. 제품당 많게는 무려 36만개, 심지어 280만개의 플라스틱 알갱이가 들어갈 수 있고, 한 번의 세안에 많게는
약 10만개의 마이크로비즈가 사용될 수 있다. 문제는 이
알갱이들이 하수처리시설에서 걸러지지 않을 만큼 크기가 작다는데 있다. 이렇게 흘러간 마이크로비즈는 강, 하천으로 흘러 바다로 직행, 해양생태계를 위협한다. 생태계 먹이사슬을 통해 다시 우리 식탁에 오른 물질은 신체 내분비 계통과 뇌에 이상을 일으킬 수도 있기에 정부는
내년 7월부터 이 물질이 들어간 제품의 생산과 수입을 전면 금지하기로 했다.”
이건 화장품 가게에서 몇 번 받아왔던 세안제 얘기잖아. 고백하건대, 촌스럽게도 세 종류 화장품으로 평생 만족해왔는지라, 스크럽 제품이란
용어가 생소했다.
하지만 경제성을 따져, 화장품 살 때마다
주는 시제품은 깔축없이 챙겼기에 몇 번 써본 적 있다. 각질 제거에 효과적이란 판매원의 업투데이트(?)한 설명에 몇 번 사용해봤고, 작은 알갱이들을 얼굴 위에 얼마간
굴린 뒤 물로 씻어내면 뽀드득한 느낌이 나는 게 나쁘지 않았다. 그래서 앞으론 세 종류 외에 이것 하나
더 추가할까 궁리 중이었건만…
세상에! 그게 플라스틱이었다고? 이 신통한 물건이
대체 뭐로 만든 것일꼬, 혹시 감자조각 아닐지, 나름 가늠해보며
궁금했던 차라, 사탕 뺏긴 애처럼 멍해졌다. 립스틱에 갈치
비늘이 들어간단 기사에 기막혔던 건 아무 것도 아니게 뭔가 속은 듯, 자신의 무지함이 부끄러웠다.
그 폐해에 대한 경각심으로 이젠 마트에서 조차 사용하지 않는 플라스틱 백. 태평양
한 가운데 텍사스주 크기 만한 플라스틱 섬이 떠다니고 있다 하는데 화장품이랍시고 얼굴에 플라스틱 알갱이를 굴리고 있었다니.
문제의 그 스크럽 제품을 가차없이 쓰레기 통에 던져 넣었다. 하고 보니 연전에도 화장품을 버린
적이 있다. 워낙 유행에 뒤진 지라, 판매원이 아무리 좋은
신제품이라 권해도 바람에 쓰러져 누운 나무둥치처럼 꿈쩍도 하지 않아 왔는데, 그 날은 태반제품이라며
시제품을 가방에 넣어주기에 께름한 채 그냥 집에 왔다.
하지만 께름함의 정체가 맘에 걸렸다. 태반? 아기와 엄마를 이어주는 생명의 연결기관이다. 미에 대한 욕망이 아무리 강렬하게 공격해와도 생명이 시작되는 태반을 화장품의 원료로 써야 할까? 괴기스러운 월하의 공동묘지 영화장면이 떠올라 순간 소름이 돋았다.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할 수 없는 일이 있다. 차라리
밭두둑에 선 할머니의 주름진 피부가 더 미적일 수도 있다. 집에 도착하자 미련 없이 그것들을 쓰레기통에
버렸다.
60줄에 들었을 때, 이젠 나이대접 좀 하잔 깜냥에, 물경 삼백불 넘는 영양크림을 산 적이 있다. 분수에 넘는 소비였다는
반성에 절로 기대감도 높았다. 하지만 거금을 쾌척한 그 영양크림은 다 쓰도록 피부에 아무 변화도 주지
않았다. 아무리 살펴보아도 기대한 바를 찾을 수 없었다.
ABC 크림세대에겐 지금은 화장품박물관에 들어 앉아있는 ABC크림이
그저 제일이다. 오래 전, 아무리 화려한 외양을 입혀, 고급원료를 사용한 제품이라 광고할지라도 그 기본은 ABC 크림에
향료를 고급화한 것에 불과하다는 전문가칼럼을 읽은 이래, 최신 브랜드 화장품 구매를 자제해왔다.
해당 브랜드 중 가장 저렴한 제품으로 시종일관, 평생 만족했다. 하기에 주저 없이 태반화장품을 버렸는지도 모르겠다.
한데 이 시점에서 문득 의혹이 떠오른다. 기본중의 기본으로 알았던 ABC크림은 그럼 무엇으로 만들었을까? 매일 사용하는 치약에 부동액, 분필가루 등이 들어간단 기사에 얼마나 황당했던가. 매일 마시는 커피
생산을 위해 10여세 아이들의 노동력이 동원된다는 기사.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은 세상. 심지어 가장 잘 안다는 자신에 대해, 당신은 자신이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아는가? 이점 생각해본 적 있는가? 잘 알지도 못하면서 너도 나도 잘 아는 척, 훤화(喧譁) 사설하며 살아가는 세상.
돌아보면
인간으로서의 절도를 지키고, 분별하며 살기가 참으로 힘들다. 도대체
어떻게 하는 것이 소중한 나를 지키고 사는 최선의 길일까? 하니 아이들 말을 흉내 낼 수 밖에. 합죽이가 됩시다, 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