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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12-26 00:00
[북한100℃] 화장으로 '여신강림'?…북한에도 주경이가 있을까
 글쓴이 : 시애틀N
조회 : 2,582  

드라마를 통해 생각해 본 남북의 메이크업 문화


"어머 둘째야? 장군감이네." "딸인데요."


tvN 드라마 '여신강림'은 어린 주경(문가영 분)을 향해 '툭' 던져진 마을 사람들의 외모 평가로 시작된다. 고등학생이 된 주경은 어릴 적부터 받아온 외모 스트레스를 스스로 터득한 화장 기술(?)로 극복해나간다. 주인공의 드라마틱한 변화를 보는 재미도 있겠지만, 외모로 한 번쯤은 스트레스를 받아본 이들의 공감을 얻어내며 드라마는 인기를 얻고 있다.  

외모에 대한 관심과 스트레스는 남한에만 있을까.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취임 초기 화장품공장을 관심 있게 둘러보며 여성의 니즈(Needs)를 직접 전달해 화제를 모은 적 있다. "우리 화장품은 하품만 하더라도 너구리 눈이 된다"는 솔직하고 구체적인 발언은 한국에서도 큰 화제가 됐다. 자본주의를 '날라리풍'이라 경계하며 집단주의 속에 살아가는 북한이 외모 가꾸기의 연장선인 화장품 소비를 권고한다는 건 흥미로운 대목이다. 북한에도 화장으로 여신이 될 수 있는, 혹은 되어야만 하는 주경이가 존재하는 것일까.

(평양 노동신문=뉴스1) = 평양화장품공장 화장품 전시장을 찾아 화장품을 고르고 있는 북한 주민들의 모습.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DB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Redistribution Prohibited] rodongphoto@news1.kr

◇ 여성은 꽃?…북한은 왜 화장을 권고할까

"나는 순정만화 속 주인공보다는 저주의 가면을 쓴 호러만화 속 주인공에 가깝단 사실을 그 때 깨달았다"라며 어린 시절을 회고하는 주경. 그는 꾸밀 줄도 모르고, 그저 호러만화를 좋아하는 아이로 자랐지만 못생겼다는 이유로 좋아하던 오빠에게 거절당하고, 일진들의 '만두셔틀'이 되자 달라지기 시작한다. 전학 첫 날 등교를 앞두고 매일 밤낮으로 화장 기술을 연마하던 그는 수려한 외모로 변신, 일명 '여신'으로 거듭나는데….

만화나 드라마에나 있을 법한 이야기지만 어쩐지 공감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누구나 한 번쯤은 잘났든 못났든 외모로 한소리를 들어본 경험이 있기 때문일 터. 우리에게 화장은 자유의 영역이지만 그렇지 않은 순간도 비일비재하다. 고등학생인 주경은 못생겨서 싫다는 친구들의 무리에 들어가고자 화장을 택했지만 만약 주경이가 대학생 혹은 직장인이었다면 화장은 흔한 '사회생활'의 연장선이었을 것이다. 화장을 하면 당연해보이고, 그렇지 않으면 이상해 보이는 사회 말이다.

평창동계올림픽에 참가하기 위해 방남한 북한 응원단 여성들이 경기도 가평군 가평휴게소에 잠시 정차해 이동하며 취재진에게 손인사를 하고 있다. 2018.2.7/뉴스1 © News1 오대일 기자

북한은 어떨까. 북한에서 화장은 여성이 집단의 '꽃'으로서 인격을 수양하는 행위로 인식된다. 화장을 곱게 잘한 여성은 가정과 사회에서도 역할을 잘 하게 된다는 것. 사회적으론 밝은 피부에 단아한 얼굴을 연출하는 화장이 권고된다. 배급제도가 약화되고 장마당이 활성화된 요즘은 이전에 비해 사회, 도덕적인 이유보다는 개인적으로 외모를 가꾸는 차원에서 화장을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한다. 물론 외모 가꾸기가 '먹고사는 문제'보다 앞설 순 없어 화장 여부는 지역과 소득 수준에 따라서도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북한에서 여성의 화장은 국가 차원에서 권유돼 온 측면도 있다. 김일성 주석은 6·25전쟁 이후 경공업 정책 육성의 일환으로 초기부터 화장품 공장 건설을 추진했고, 대를 이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김정은 국무위원장도 화장품 사업에 관심을 보였다. 특히 김정은 위원장은 부인 리설주 여사와 함께 현지지도에 나서며 화장품에 대한 세부적인 지식을 뽐낼 만큼 관심을 쏟았고 수요 맞춤형 생산까지 지시해 이목을 끌었다. 아름다워지고 싶은 여성의 욕구를 자극한 고도의 통치술이라는 분석이 제기되기도 했다.  

◇ 학생이 화장을?…북한에서도 가능할까

그런데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하는 이 드라마는 '요즘 학교'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이해하기 어려운 설정일 수 있다. 풀메이크업을 하고 온 아이에게 '한 소리'하는 교사가 없다. "요즘은 이러고 화장하고 가도 안 잡혀? 라떼(나 때)는 비비(크림)만 발라도 바로 학주(학생주임)한테 (혼나)!"라는 주경의 언니 희경의 말에 공감이 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요즘은 화장을 시작하는 연령이 점점 낮아지고 있다. 더 나아가 화장을 잘 하고 외모를 예쁘게 가꾸는 게 '또래문화'로 형성된 것 같다. 유튜브에 '학생 화장법'이라고 검색해보면, 한 듯 안한 듯 수수한 화장법을 소개하는 영상들이 줄을 잇는다. 

북한 학생들이 교문 앞에서 체온을 재고 있는 모습. (선전매체 내나라 갈무리) © 뉴스1

반면 북한은 아직까지는 소위 '라떼' 시절에 머물러 있다. 간혹 고급중학교(고등학교) 때 화장을 하는 학생이 있긴 하지만 교칙이 엄격해 많진 않다고 한다. 교문에서부터 김일성 김정일 초상휘장과 검은색 신발 착용 여부, 머리길이까지 검사하기 때문에 그 문턱을 넘기가 쉽지 않다. 북한에서는 대학교 입학 이후 혹은 20~25세 사이 처음 화장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렇다면 화장은 어디서, 어떻게 배울까. 남한과 달리 북한에는 시청각 자료가 많진 않다. 가족이나 친구, 직장동료를 통해 정보를 얻고 따라하는 게 대부분이다. 북한 예술단원이나 배우들의 화장법을 따라하는 경우가 간혹 있긴 하지만, 요즘은 한국 드라마에서 본 스타일을 보고 배우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북한 노동신문에는 청소년, 청년 세대의 이색적인 옷차림과 머리단장을 비사회주의적 요소로 지적하고 사상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기사가 자주 실린다.

북한의 화장품. (북한 선전매체 메아리 갈무리)© 뉴스1

◇ 살결물·물크림·눈썹먹…북한의 화장품

북한 당국은 여성들에게 자연스럽고 연한 화장법을 권고하고 있다. 실제로 살결물(스킨), 물크림(로션), 햇빛방지크림(자외선차단제) 등 기초화장품에 비해 입술연지(립스틱), 눈썹먹(아이브로우) 등 색조화장품은 가짓수가 많지 않다. 색조화장을 한다면 피아스(파운데이션)나 가루분으로 피부를 하얗게 연출하고, 눈썹먹으로 눈썹의 형태를 그려준 뒤 입술연지로 마무리하는 게 대부분이다.

물론 예외도 있다. 공연 무대에 오르는 예술단원이나 배우들은 진한 화장을 선보이기도 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배우의 분장을 '성격창조의 예술'이라고 정의할 정도다. 2018년 2월 우리나라에 방문해 공연을 펼쳤던 삼지연관현악단 등 예술단원들의 모습을 떠올려 보면 알 수 있다. 당시 예술단원들은 눈 주변을 까맣고 진하게 표현한 '스모키' 화장법으로 국내 언론에서도 주목을 받았다. 함께 무대에 올랐던 남한 가수 서현의 수수한 모습과 대조될 정도였다.

서울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열린 북한 예술단 공연에서 가수 서현이 북한 예술단 여자 가수들과 ‘우리의 소원’이라는 노래를 부르고 난 뒤 손잡고 있다. (청와대 페이스북)2018.2.11/뉴스1 © News1 이광호 기자

북한에선 소득 수준이나 사회적 지위에 따라서도 화장법이 달라진다. 북한산 화장품마저도 고가이기 때문에 일반 주민들은 다양한 화장을 해보는 데 한계가 있다. tvN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에서 평양 최대 규모 백화점 사장으로 나온 서단의 어머니 고명은(장혜진 분)은 남조선의 유행 화장법이라면서 '도랑 화장'을 선보인 적 있다. 코와 턱에 세이딩을 진하게 해 강한 인상을 주는 화장법이다. 자신의 딸과 결혼할 생각이 없는 리정혁(현빈 분)을 혼내주기 위해 특별히 남조선 화장을 했다는 설정이었다. 우스꽝스러운 장면이었지만 그가 고소득층 주민이 아니었다면 남조선 화장을 시도하긴 어려웠을 것이다.

◇ 북한에서 대접받는 남한 화장품? 

그렇다면 북한에서도 남한의 화장품, 화장법을 알고 있는 걸까. 알고 있을뿐더러 인기도 높다. 다만 당국에서 수입 금지품으로 차단하고 있어 한글이나 영어 이름은 지운 채로 유통된다. 한국 제품이지만 상표가 영어라면 해외 제품으로 착각해 유통되기도 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집권 초기 종합주민편의시설인 '해당화관'을 방문했을 때 한국 브랜드 '라네즈' 간판이 슬쩍 보인 해프닝도 있었다.

북한 장마당의 모습을 재연한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tvN 제공)© 뉴스1

하지만 한국 화장품은 북한이나 중국 제품에 비해 2~3배가량 비싸기 때문에 핵심 권력층이나 재력가들이나 구매할 수 있다. 한국산 제품은 장마당 매대 아래 숨겨져 은밀한 요청이 있을 때마다 몰래 판매된다. 이는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에서도 재연된 적 있다. 남한에서 화장품 회사를 운영하는 세리(손예진 분)는 자회사 제품이 장마당에서 판매되는 걸 보고 놀라워하기도 한다.

세리는 이후 우여곡절 끝에 다시 남한으로 돌아가고, 인연을 쌓은 북한 주민들을 모델 삼아 '그리움'이라는 이름의 한정판 화장품을 출시한다. 이 화장품은 평양백화점 사장 고명은이 유럽에서 구입해 주민들에게 전달한다. 화장품으로 서로에 대한 '그리움'을 나누는 장면은 그리 비현실적인 일은 아닐 수 있다.  

드라마 여신강림 갈무리.tvN © 뉴스1

"못 생긴 게 내 잘못도 아닌데 왜 다들 나만 미워하는 건데. 화장하고 예뻐지면 뭐하냐. 난 여전히 못난 임주경인데."

주경은 화장 후에도 자신의 낮은 자존감까지는 감출 수 없음을 깨닫는다. 하지만 주경의 화장 전, 후 모습을 모두 알고 있는 수호(차은우 분)와 내면의 상처까지 치유해나가게 될 것이다.

"주경이가 얼평(얼굴 평가)하는 아이들 앞에서 더 이상 고개 숙이지 않는, 사랑 앞에서도 주춤하지 않고 당당한, 자존감 충만한 소녀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게 이 드라마의 기획 의도다. 사실 화장에 집착하는 주경의 모습이 '남일 같지 않다'는 모든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아니었을까. 어쩐지 꽃으로서 역할을 다하기 위해 화장을 하는 분단선 너머의 여성들에게도 전해졌으면 하는 마음이다.

기사제공=뉴스1(시애틀N 제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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