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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9-29 03:01
눈산조망대/ 카바노와 범고래
 글쓴이 : 시애틀N
조회 : 5,556  

윤여춘 한국일보 시애틀지사 고문


카바노와 범고래

 
모든 언론이 대법관 지명자 브렛 카바노의 ‘낙마위기’를 둘러싸고 떠들썩했던 사흘 전, 시애틀타임스는 ‘범고래 멸종위기’를 로컬판 톱기사로 보도했다

최근 새끼 범고래 두 마리가 잇따라 굶어죽은데 이어 어른 범고래(27) 하나도 영양실조로 비실거린다며 그도 죽으면 퓨짓 사운드 범고래 가족이 73마리로 줄어 멸종위기 상황이 심화된다는 내용이었다.

한인들은 범고래에 별로 관심이 없다. 나도 그랬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들은 매우 매력적인 짐승이다

우선 ‘살생고래(killer whale)’라는 통칭과 달리 근본적으로 고래가 아니다. 덩치가 가장 큰 돌핀이다. 흔히 ‘오카(orca)’로도 불린다. 학명(Orcinus orca)에서 땄다. ‘이빨 고래’라는 별명도 있다. 날카로운 송곳니가 아래위턱에 여남은 개씩 무장돼 있다.

몸길이가 최고 26피트(암컷은 23피트), 체중이 12,000 파운드(암컷은 6,000파운드)까지 자라는 범고래는 바다의 제왕이다. 누구도 도전하지 못한다. 범고래보다 ‘늑대고래’로 불리는 게 제격이다. 늑대처럼 무리가 몰려다니며 먹이사냥을 합작하기 때문이다. 각종 대소 물고기와 물개, 바다사자, 돌핀, 거북, 펭귄은 물론 상어도, 진짜 고래도 잡아먹는다.

범고래 가족은 철저한 모계사회이다. 가장 나이 많은 암컷의 영도에 따라 가족이 늘 함께 다니며 함께 사냥하고 함께 잠잔다

위기상황에 처한 위의 27살 수컷 ‘스코터’도 그 나이가 되도록 어미 곁을 떠나지 못했다가 지난해 어미가 죽은 후 갑자기 쇠약해졌다. 사냥을 지휘해온 어미가 죽자 일용양식을 충분히 보급 받지 못한 탓으로 전문가들은 추정한다.

범고래는 5대양 어디에나 산다. 극지 얼음바다에도, 적도 열대바다에도 나타난다. 대략 상주파, 떠돌이파, 대양파의 세 그룹으로 분류된다. 상주파는 서북미 연안에 살며 주로 물고기를 잡아먹고, 떠돌이파는 알래스카에서 중가주 연안을 오가며 물개, 돌핀, 밍키고래 등 주로 해양동물을 잡아먹는다. 대양그룹은 심해의 물고기떼를 공략하며 상어도 먹어치운다.

당연히 사람들 눈에 가장 많이 띄는 상주 범고래(Residents)가 관심을 모은다. 특히 워싱턴주 내해인 퓨짓 사운드와 캐나다 밴쿠버 아일랜드의 샐리시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는 ‘남부 상주파’(Southern Residents) 2005년 연방정부에 의해 멸종위기 동물로 지정돼 당국은 물론 환경단체, 동물보호단체, 원주민 부족 등이 구제운동을 적극 벌이고 있다.

남부 상주파는 J, K, L 3개 ‘문중(pod)’으로 구성돼 있다. 이들 중 J문중의 35번 ‘탈레콰’가 지난 7월 출산 후 30여분 만에 죽은 새끼고래의 사체를 머리에 이고 17일간 1,000마일 이상을 애도 항해해 세인의 심금을 울렸다. 뒤 이어 같은 J문중의 3살짜리 암컷 ‘스칼렛’(50)이 극심한 영양실조에 시달리다가 당국이 구제조치를 취하기 전에 숨졌다.

남부 상주 범고래는 하루 평균 386 파운드의 물고기(주로 치누크 연어)를 먹는다. 하지만 퓨짓 사운드의 치누크 연어는 씨가 말라가고 있다. 수온이 올라간데다 내륙 하천의 산란장이 많이 훼손된 탓이다. 당국은 범고래를 살리려면 치누크 연어부터 늘려야한다며 어획량을 제한하고 있다. 일부 시애틀 식당들은 메뉴에서 아예 치누크 연어 요리를 빼버렸다.

범고래는 영리하다. 뇌가 해양동물 중 향유고래 다음으로 크다. 오래전 샌디에이고 시월드에서 ‘샤무’ 범고래 쇼를 보다가 집채만한 샤무의 짓궂은 장난으로 물벼락을 맞았다. 이런 쇼를 위해 1990년대까지80여 마리의 범고래가 생포돼 전국의 해양 놀이공원에 팔려갔다. 어린 범고래가 잡혀갈 때마다 그의 가족이 현장을 맴돌며 밤새 울부짖었다고 했다.

최근 서북미 지역에서 등산객 2명이 쿠거(산사자)에 물려 죽고 한명은 산양에 받혀 죽었다. 옐로스톤국립공원에선 관광객 소년이 그리즐리 곰의 공격을 받았다. 사슴과 흑곰의 동네 나들이는 예사다. 정치인들이 신물 나는 정략싸움을 그만하고 자연환경과 야생동물 보호에 더 신경 써줬으면 좋겠다. 우선 멸종위기의 서북미 범고래와 치누크 연어부터 살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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