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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10-13 11:11
눈산조망대/ ‘기청제’라도 지내야…
 글쓴이 : 시애틀N
조회 : 5,650  

윤여춘 한국일보 시애틀지사 고문

‘기청제’라도 지내야…
 
북부 플로리다의 ‘팬핸들’(프라이팬 손잡이처럼 좁고 길게 뻗어 나온 지역)이 엊그제 엄청난 태풍피해를 입었다

허리케인 ‘플로렌스’가 할퀴고 간지 2주 만에 그보다 더 센 ‘마이클’ 허리케인이 또다시 덮쳤다. 지난 수십년간 미국본토를 때린 허리케인들 중 위력이 가장 큰 놈이라고 했다. 이 지역은 지난 5월말에도 아열대 태풍 ‘알베르토’가 휩쓸고 지나갔었다.

올해는 지구촌에 큰 자연재해가 유난히 많았다. 인도네시아는 지난달 지진과 쓰나미로 풍비박산된 뒤 화산폭발 세례를 받았다. 하와이에선 킬라우에 화산이 폭발했고(5), 폭풍 레인이 덮쳤다(8). 괌과 필리핀에서도 태풍으로 거의 70명이 죽었고(9), 일본에서는 홍수가 일어나 100여명이 죽었다(7). 캘리포니아는 올여름 역대 최악의 산불난리를 겪었다.

마이클이 플로리다 팬핸들을 강타한 직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재민들을 외면하고 반대방향인 북쪽 펜실베이니아의 이리에서 열린 선거 집회장으로 달려가 빈축을 샀다

트럼프는 그곳으로 떠나기에 앞서 “나를 보려고 길게 줄지어 수 시간씩 기다리고 있는 수 쳔명의 착한 사람들을 실망시킬 수 없다. 이 행사일정은 오래전부터 짜여있었다”고 트윗했다.

하지만 이 트읫은 트럼프에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그는 2012 11월 태풍 샌디가 동부를 엄습한 후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콜럼버스에서 정치집회를 열자 “샌디 희생자들이 죽어가고 있는 마당에 가수들을 대동하고 정치집회를 벌이는 것은 잘못”이라고 트윗했었다. 그는 이번 행사 후 민주당 측 비판자들로부터 똑같은 문구로 된 트윗을 되돌려 받았다.

당시 오바마 정치집회는 샌디가 지나간 며칠 후였지만 트럼프는 마이클이 플로리다를 때린 뒤 단 몇 시간 만이었다. 그는 집회연설에서 “팬핸들 이재민들에게 사려와 기도를 보낸다”며 의례적으로 인사했지만 오바마는 2012년 콜로라도스프링스에 큰 산불이 일어나자 현장으로 달려가 “이런 자연재해가 터지면 온 미국이 함께 나선다”고 연설해 감동을 줬다.

트럼프의 재앙 개념은 애매하다. 매사 남의 탓이다. 트럼프가 곧 재앙이라는 비아냥도 있다. 작년 여름 미국령 푸에르토리코가 태풍 ‘마리아’에 맞아 폐허가 된 후 현지를 돌아보고 온 트럼프는 사상자가 6~18명이라며 “3,000명이 죽었다는 말은 민주당의 모략”이라고 주장했다. 실제 인명피해는 4,600명이 넘었고, 1년이 지나도록 전기조차 복구되지 않고 있다.

캘리포니아가 전대미문의 산불로 북부 레딩에서부터 남부 리버사이트 카운티까지 쑥대밭이 됐지만 트럼프는 제리 브라운 민주당 주지사의 행정부가 수자원관리를 잘못했기 때문이라며 눈도 꿈쩍하지 않았다. 모든 강물을 미리 빼돌려 산림을 적셔놨어야 했다는 논리다. 지구온난화가 산불의 원인이라는 당초 쟁점은 엉뚱하게 수자원 이용문제로 방향이 틀어졌다.

농본민족인 우리 조상은 신라시대부터 가뭄이 심할 때 비 오기를 기원하는 기우제(祈雨祭)를 지냈다. 극심한 한발이 이어지면 임금이 몸소 제주로 나섰다. 비가 오지 않는 것은 자신이 부덕한 탓이라며 임금이 식음을 전폐하고 궁궐에서 나가 비가 올 때까지 초가에 우거했다. 보리농사철인 겨울에 눈이 적당히 내리지 않으면 기설제(祈雪祭)를 지내기도 했다.

반대로 장마가 지긋지긋 오래 끌어 농사를 망칠 염려가 있을 때는 날씨가 청명해지기를 비는 기청제(祈晴祭)를 지냈다. 영제(禜祭)라고도 불린다. 조선시대엔 예조(현재의 교육인적자원부+문화관광부) 산하의 전향사가 기우제와 기청제를 전담했다. 태종은 재위 18년 중 17년간 기우제를 한해 최고 9차례나 지냈고 기청제도 통산 6차례 지냈다는 기록이 있다.

우연이겠지만, 그리고 본인은 하나님 탓이라고 우기겠지만,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대형 자연재해가 많았다

그에게 캘리포니아 등 서남부에선 기우제를, 플로리다 등 동남부에선 기청제를 지내라고 권하면 “웃기지 말라”고 호통 칠 터이다. 그러나 그런 거국적 기도대회를 주도해 국민화합을 도모한다면 트럼프의 이미지는 훨씬 좋아질 것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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