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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12-25 10:48
[시애틀 수필-공순해] 네 꾸러미를 이 땅에서 수습하라
 글쓴이 : 시애틀N
조회 : 3,085  

공순해 수필가(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 지부 회장)

 
네 꾸러미를 이 땅에서 수습하라

 
큰 조카딸이 수술을 받았단다. 경과가 궁금해 전화를 했다. 전화선을 타고 들려오는 그 애의 낭랑한 목소리를 듣는 순간 눈물이 쿡 쏟아졌다. 생각지도 못했던 상황에 놀라 그만 어물쩍 말꼬리를 내리고 말았다. 이보다 더한 일들도 넘기며 살아왔는데, 눈물이라니

워낙 활달한 조카딸이었기에 거기에 편승해 짐짓 너스레를 늘어놓았다. 네 짐 덩어리 노인네들 놀라게 하지 말고 빨리 회복해라. 기둥이 아프면 쓰냐. 그 애가 이쪽의 눈물을 눈치채지 못하도록 이 기적(?)인 덕담으로 통화를 마쳤다.

전화를 끊은 뒤, 왜 눈물이 쏟아졌던가, 자꾸 곱씹게 됐다. 뼈가 약해지는 나이가 되면 마음도 물러지는 건가, 희연을 받아먹고 나니 나잇세 치르려 하는 건가… 

종일 달라붙어 떠나지 않던 모호한 심사에 종지부를 찍게 해준 키워드는 가족이었다. 가족이잖아! 가족에게 대한 염려.

연말이다. 또 한 해가 가고 있다. 해마다 하는 경험임에도 당할 때마다 첫 경험처럼 당황스러운 연말. 시간을 도둑맞은 느낌에 마음은 허둥대기만 한다. 못다한 숙제를 안고 새해를 맞아야 하는 심정은 늘 개운치 않다. 얼마나 가지게 됐느냐, 얼마나 더 움켜쥐었느냐에 대한 회한이 아니라, 얼마나 나눴느냐, 얼마나 곁을 돌아보았느냐에 대한 미진함으로 마음이 복잡하기 때문이다.

이 헝클어진 마음을 그나마 붙잡을 수 있는 건 가족이 있단 안도감에서 비롯되는 게 아닐까. 가족사랑. 연말의 가족사랑을 표현한 문학작품으론 오 헨리의 <크리스마스 선물> 만한 게 없다

20대 초반의 어린 부부, 짐과 델라가 서로를 위해 사온 크리스마스 선물을 저자는 현자의 선물이라고 불렀다. 그들이 준비한 선물, 시곗줄과 머리빗의 가격을 현실적으로 따져 본다면 매우 기우는 가격이다. 또 둘에게 더는 필요하지 않은 선물들이기도 하다

하지만 둘은 세상에 둘도 없는 소중한 물건으로 여겼다. 금액으로 비교하지 않고 사랑의 함량으로 달았기 때문이다. 하기에 동방박사의 선물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의미를 한걸음 더 나아가 생각해본다. 짐의 시계는 아버지에게서 물려 받은 것이니, 그냥 시계가 아니고 가계(家系)를 이어갈 전통의 의미이고, 가장인 남성으로서의 권위의 상징일수도 있다

델라의 머리 또한 시간이 지나면 다시 자랄 수 있는 단순한 머리가 아니라 여성의 자부심을 상징하는 미를 뜻한다. 스르르 흘러 내리는 황금의 폭포라니! 하면 이처럼 정체성을 포기하며 얻은 그들의 사랑이 의미하는 건 뭘까. 자신을 낮추고 버려, 상대에게 부어주는 마음, 나 아닌 너를 아끼는 이타(利他)의 완곡한 표현이다.

사랑의 정곡(正鵠)은 이타다. 인류는 누구나 이런 사랑을 이미 골고루 차별 없이 받았다. 못 받아 의아해하는 분이 있다면, 이 사실을 모르고 있거나, 그 분을 선물로 인정하지 않는 탓일 게다. 혹시 자신의 내부에서 울고 있는 또 하나의 나를 발견한 적이 있으신지. 그렇다면 당신은 이미 그분을 만난 적이 있는 것이다.

시간상 그 분은 이미 다녀 가셨다. 그리고 해마다 연말이면, 소설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꼬인 결말로 얼룩진 우리 삶을, 꼬인 그 현실을 사랑으로 정화한 젊은이들처럼 반듯하게 펴서 환한 현실을 만들라고 깨우쳐주며 함께 해주신다. 한 해를 다시 살아갈 용기를 주신다

나를 위해 근심해주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은 혼란의 세월을 살아야 하는 오늘날 참으로 미더운 힘이 된다.

오늘도 그 분의 말씀을 듣는다. 네 꾸러미를 이 땅에서 수습하라. 가족에 대한, 인간에 대한 마음이 곡진해지는 것도 이 때문인지 모른다. 살아낼수록 꼬이고 무거워지는 짐, 갈등으로 찢긴 상처를 털어내는 방법은 오직 비우고 덜어 내기다. 쓸모 없는 것을 소중한 것으로 여기고 꾸려 넣진 않았는지, 덜어낼 것을 무심히 그냥 싸담진 않았는지 잘 살펴볼 일이다

덜고 비워 이르는 가벼움, 비상(飛翔)의 경지에서 누리는 자유로움. 이때 무엇보다 꼭 덜어내야만 할 것은 애착이란 애물이다.

길에 서있는 사람들에겐 행장이 가벼워야만 한다. 어느 날 갑자기여름 실과 한 광주리턱 안겨주실 때, 회한으로 받지 말고, 하나 하나 짐을 덜어내, 광야를 걷기에 알맞은 크기로 가뜬한 행장을 꾸릴 일이다

하기에 꾸러미를 돌아볼 수 있는 성찰과 변화의 시간, 연말이란 시간이 매우 귀하다. 아직 선물을 못 받으신 분들이 있다면 이 소중한 선물을 꼭 받으시길 빈다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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