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순
수필가(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 지부 회원)
하다
‘자유하다’ 나 ‘욕망하다’는 표현은
사전에 있는 말일까?
우리말에는
명사에 ‘-하다’를 붙여 동사가 된 말들이 많다. 거기에는 나름의 규칙이 있다. 표준 국어 대사전에는 ‘하다’의 첫 번째 의미로 ‘어떤
사람, 동물, 물체가 행동이나 작용을 이루다’라고 제시한다. 명사 다음에 ‘-을/를’을 붙이고 ‘하다’를 써서 자연스러우면 대개 말이 성립한다.
그런데
‘자유하다’처럼 사람들이 헷갈리게 되는 것은 일부 명사 뒤에
붙어 동사나 형용사를 만드는 접미사 ‘-하다’ 이지 싶다. ‘공부하다, 밥하다, 절하다’는 동사가
되고, ‘건강하다, 순수하다, 행복하다, 정직하다’는
형용사가 된다. 어떤 이들이 여기에 ‘일부’가 아닌, 아무 명사 뒤에 ‘하다’를 붙이기 때문이다.
찬송가를
부르는데 ‘자유하신 하나님’이란 구절이 목구멍에 가시처럼
걸린다. 자이언티라는 가수가 부르는 ‘양화대교’라는 노래의 후렴구에는 ‘행복하자’가
반복된다. 어째서 그들에겐 ‘행복하자’가 이상하게 들리지 않았을까? 일부러 의도한 것일까?
요즘
많은 신조어가 홍수를 이루고 있지만, 찬송가의 ‘자유하다’나 광고에서 많이 듣는 ‘욕망하다’는
말은 내게 내재된 모국어 본능을 의심하게 만든다. 얼얼한 상태로 사전을 찾아보니 ‘자유하다’는 없는 말이고, ‘욕망하다’는 있다.
우리말을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자유하다’나 ‘행복하자’는 쉽게 집어 던지기엔 고약한 돌멩이다. 규칙을 찾아내어 조근조근 왜 되는지, 왜 안 되는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
여름, 고국에서 한국어 교사 초청 연수가 있었다. 미국 공립학교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교사들이 대상이었다. 하루는 국립국어원을 방문하였다.
교사들은 한글을 잘 가르쳐야 하겠다는 마음으로 고무되었다.
시내의 한글 교육 전문 서점에
가보니 전보다 많은 종류의 다양한 한국어 교재들이 판매되고 있어 이제는 교재가 없어 한글을 가르치기 어렵다는 말은 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저녁
시간이었다. 낮에 충만했던 분위기와는 달리 세종로, 광화문
일대와 서울 중심가를 둘러보는 동안 많은 실망을 했다. 실망이 아니라 분노라고 해야겠다. 거리의 간판들은 십중팔구 외국어다. 외국어를 한글로 표기한 것도
아니고, 아예 영어 간판들이다.
그것이 서울 중심가의 ‘패션’인지, 국제화 시대에
발맞춘 ‘센스’인지는 모르겠다. 한국어를 가르치는 교사들은 드문드문 ‘한글 간판’ 이 있으면 반가워 교육 자료로 쓸 사진을 찍었다. 누군가의 입에서
한글 간판으로 치자면 엘에이 다운타운이 더 많겠다는 한탄이 나왔다.
한국에서
유행했던 우스개가 있다. 어떤 며느리가 시어머니가 자주 찾아오는 것을 막으려고 영어 이름의 아파트로
이사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다음엔 어떻게 되었을까? 며느리의 원대로 시어머니가 길눈이 어두워 못 찾아왔을까? 한 수
위인 시어머니가 시누이까지 데리고 찾아왔단다. 크으.
그동안
뵙지 못한 분들을 방문하는데, 이 농담은 씁쓸한 진실이었다. 인기
드라마 제목 <스카이 캐슬>처럼 지인들은 모두들
힐 스테이트, 스카이 뷰, 허브 스카이, 아이파크, 그린월드 유로메트로 등 이상한 이름의 아파트에 산다. 신축 아파트는 한글이 아예 없고 오직 영어로만 씌여 있다. 오 마이
갓, 자유하신 하나님은 아무것도 아니다.
유치원부터
영어를 배우느라 외국어가 너무 자연스러워 지금 청소년들은 어떤 말이 외래어인지도 잘 구분하지 못한다고 한다. 얼마
전엔 어떤 기업인의 망신스러운 동영상이 돌았는데, 한국에 살면서도 가정에서 자기 자녀를 영어로 꾸짖고
있었다. 유럽 귀족들에게 불어가 교양어였던 것처럼 한국 부유층에서는 영어가 교양어라도 된 것일까?
한국은
한류라는 문화를 수출하는 나라다. 필자가 한국어를 가르치는 인터넷 아카데미에도 케이 팝에 반해서 한국어를
배우려고 하는 학생들이 적지 않다. 사유리, 다이애나, 소피아, 에이샤, 세쓰
등 학생들은 대부분 한국계가 아니다. 정작 한국계 학생은 드물다. 우리가
오히려 우리 것을 지키고 배우려는 노력을 소홀히 하는 인상을 받는다.
하다. 우리말의 ‘하다’를 발음하면
나는 기분이 좋아진다. 일단은 ‘ㅎ’음의 화사하고 경쾌한 소리가 좋고, 다음으로 ‘하다’는 의미가 좋다. 무언가
행동하는 것, 또는 무언가의 상태를 나타내는 ‘하다’.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들이 자모를 배우고 나서 읽기 연습을 시작할 때 처음 배우기도 하는 말이다.
하지만 ‘자유하다’처럼
엉뚱하게 쓰거나, 우리말을 잘 살려 쓰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하다’처럼 역할이 많고 아름다운 우리말의 운명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