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문자
수필가(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 지부 회원)
세상이
아름다운 것은
뉴욕의
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카톡이 아니고 전화가 올 땐 혹시 하는 염려가 앞선다. ‘엄마, 나 속았나 봐.’‘뭐? 뭐라고? 속다니.’ 엄마의
호들갑을 진정시키려는 듯, 아이는 해해해, 웃는다.
퇴근길이다. 전철역 입구로 부지런히 나오는데 ‘한국 사람이에요?’하며 초라한
남자가 다가왔다고. 그는 서울의 연세대학교 교수인데 방금 소매치기를 당했단다. 급히 영사관에 가야 되는데 70불이 필요하니 꾸어 달라는 것. 연세대를 아느냐고 물으며 자기는 거지가 아니라고 한다.
수상쩍긴
해도 측은한 마음에 돈을 털어 40불을 주었더니 실망한 표정을 짓더라나. 그가 기어이 연락처를 적어갔지만 아무래도 속은 것 같단다. 나는
속단하지 말고 기다려보라고 말했다.
잠시
후, 깔깔대며 딸이 또 전화했다. ‘엄마, 너무 웃겨. 남편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어? 배이지색 바지에 블루 재킷?
결혼하기 전 자기에게도 같은 이야기(영어로)를
하는 한국인이 있었다고. 5불밖에 없다니까. 에이 씨, 하며 홱 채가지고 사라졌는데 에이, 씨가 무슨 말이냐고 물었다는군.’
아이는 베이지와 블루라고 까르르 웃다가 생각난 듯 ‘엄마, 그때
그 일도 있었잖아?’ 누가 엿듣기라도 하는 듯 속삭인다.
시애틀에서
겪은 일이다. 무더운 여름이었지. 한인들을 위한 봉사기관의
사무실은 큰 행사 준비로 북적였다. 역시 전화통도 불이 나는데 “따르릉, 따르릉.” 안타까운 사연이 전선을 타고 왔다.
다급한 음성이다. 한국인 가정 네 식구가 라스베이거스 사막을 운전해오다가
강도를 만나 갖고 있던 돈을 몽땅 털렸단다. 차의 가스도 바닥이 나가는데 도움 청했던 경찰관은 어쩔
수 없다며 한국인에게 전화하라고 했다지. 다행히 차에 한국 신문이 있어서 이 단체의 전화번호를 찾았다고
했다.
자기네는 벨뷰에 산다며 꼭 갚을 터이니 200불을
웨스턴 유니온으로 보내주면 감사하겠다며 떨리는 목소리로 간청하더란다. 가뜩이나 분망한 사무실 안은 모두들
한 마디 씩하며 이 딱한 사정부터 돌봐주기로 했다. 사람 안 다친 게 다행이네, 우리 사무실 전화번호를 발견해서 잘됐지, 빨리빨리 은행 문 닫을라. 성급한 책임자는 정신없이 뛰쳐나갔다.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기다리는
직원들 앞에 은행 문이 닫히기 전에 간신히 송금했다고 헐떡이며 그가 나타나자 직원들은 와- 환성을 질렀다. 얼마 후에, 돈을 잘 찾아 무사히 가고 있으니 벨뷰에 도착하면 꼭
찾아 뵙고 갚겠다는 전화가 왔다. 자기는 딸인데 아빠가 운전 중이라 대신 감사드린다는 깍듯한 인사를
보내왔다. 아, 착하고 순진한 사회사업가들. 좋은 일 했다고 흐뭇해하던 젊은 똑똑 이들. 그들은 멋지게 당했다.
사람들은
보기 좋게 속아 넘어간 젊은이들에게 이렇게 말하리라. 아니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눈 뜨고 코 베가는 세상 아닌가. 에구, 헛 똑똑했구먼. 쯧쯧.
그러나
나는 아니다. 어처구니없이 속은 그들을 오히려 칭찬하고 싶다. 앞
뒤 따지지 않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무조건 도와줘야겠다는 착한 마음은 아무나 가질 수 없다. 측은지심이
발동하여 희생과 봉사가 몸에 밴 사람들만이 가진 사랑의 발로가 아니겠는가.
죄를
짓고 사는 사람들은 어느 기회에, 법으로 또는 무슨 방법으로든 변화되리라고 믿는다면 억지일까? 하나님이 눈 여겨 보는 사람이라면 바르게 세울 것이라 믿고 싶다. 내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건 두 목사님의 삶에 감동을 받았기 때문이다.
‘나는 목사인데도 도저히, 이 사람을 사랑할 수 없다. 속이고 또 속이는 그 사람을 죽어도
용서할 수 없다. 목사를 고만 두고 싶다며 몸부림쳤지만 하나님께서 타이르시며 그를 사랑하도록 도와 주셨다. 나는 하마터면 더 이상 목회는 커녕 인간 노릇도 못할 한심한 사람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은혜로운 간증을
들려줬다.
우리
가족이 좋아하던 또 한 분은 고아들의 아버지, 거지들의 친구였던 H목사님이다. 가련한 그들을 먹이며 가르치고 사랑하는데도 속이고 또 속이는 불쌍한 청소년들에게 알고도 속고 모르고도 속았다.
이젠 그만하자고 만류하던 사람들을 향해 목사님은 ‘희망을 가집시다. 우리
실컷 이용당합시다. 그에 대한 책임은 하나님이 지지 않겠어요? 예수님의
십자가는 바로 이들을 위해 지금도 피를 흘리고 있습니다.’ 라고 눈물로 호소하시던 목사님! 사랑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목사님이셨다.
세상에서 손해 보는
삶이 도리어 승리하는 삶이라고 가르치시던 목사님. 자신의 것을 다 내어주고도 속고만 계셨던 목사님이
잘 이해되지 않았지만, 목사님이 이용만 당하며 뿌렸던 눈물의 씨앗들은 지금 눈부신 나무들로 자라고 또
자라 세상 곳곳에서 큰 숲을 이루고 있다.
자애로운 목사님들, 사람을
사랑하고 믿어주는 젊은 사회사업가들, 이런 분들 때문에 세상의 아름다움은 이어지고 사람들은 살맛을 찾는
것이 아닐까.
사기꾼에게
속는 건 한 번으로 족하다. 그러나 정말로 구제불능의 사람들을 만났을 때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내 속에 사랑의 샘을 더 깊게 파야 될 것 같다.
연세대
교수…. 그는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정말로 연세동산의
백양로를 알고 나 있을까? 그래도 분명한 건 그도, 하나님이
불쌍히 여기는 사람일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