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기업 역대 최대규모 M&A, AI 시대 수요 급증 전망 반도체에 과감한 투자 평소 "위기를 기회로" 강조, 정유화학·통신·바이오 등에서도 활발한 인수합병 진행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포스트 코로나'를 겨냥해 반도체 사업에 다시 한번 승부수를 던졌다. 빅데이터 시대를 맞아 급성장하고 있는 낸드플래시(전원이 공급되지 않아도 저장된 데이터가 지워지지 않는 비휘발성 메모리) 분야에 국내 기업 M&A 역사상 최대 규모인 10조3000여억원을 베팅한 최 회장의 과감한 결단 배경에 재계의 관심이 모아진다.
SK하이닉스는 20일 미국 인텔의 NSG 사업부문에서 옵테인을 제외한 낸드플래시 사업 전체를 90억달러(10조3104억원)에 인수한다고 밝혔다.
이번 인수합병(M&A)은 D램(전원이 켜져 있는 동안에만 정보가 저장되는 휘발성 메모리)에 비해 열세인 낸드플래시의 경쟁력을 강화하려는 SK하이닉스와 시스템반도체 집중하려는 인텔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로 풀이된다.
SK하이닉스는 글로벌 D램 시장에선 매출액 기준 점유율이 삼성전자의 뒤를 이은 2위를 기록 중이지만,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낸드플래시 분야에선 지난 상반기 말 기준 점유율 11.4%로 삼성전자(33.8%), 웨스턴디지털(17.3%), 웨스턴디지털(15.0%), 인텔(11.5%) 등에 이어 5위에 머물렀다. 낸드 부문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점유율 차이가 22%p(포인트)가 넘어 격차 극복이 쉽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날 이석희 SK하이닉스 대표이사 사장은 인수 발표 직후 내부 구성원들에게 "낸드 사업에서도 D램 사업만큼 확고한 지위를 확보하기 위한 결정"이라고 설명하면서, "후발 주자가 갖는 약점을 극복하기 쉽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이번 인수로 SK하이닉스는 D램과 마찬가지로 낸드플래시에서도 단숨에 삼성에 이은 글로벌 2위로 올라설 것으로 예상된다. SK하이닉스와 인텔 양사의 낸드플래시 매출과 시장점유율을 산술적으로 더하면 22.9%가 돼 삼성과의 점유율 격차를 10%p가량으로 좁힐 수 있다.
특히 이번 인수합병 배경에는 평소 '코로나19라는 위기를 오히려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구성원에 강조해 온 최태원 회장의 과감한 결단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최 회장은 최근 구성원에 보낸 이메일에서 "코로나19에서 비롯된 예측하기 어려운 경영환경 변화와 새로운 생태계의 등장은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면서 "이 낯설고 거친 환경을 위기라고 단정 짓거나 굴복하지 말고 우리의 이정표였던 딥체인지에 적합한 상대로 생각하고, 성장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독려했다.
SK하이닉스는 이번 인수로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AI(인공지능) 시대를 맞아 급성장하고 있는 낸드플래시 분야에서 기업용 SSD 등 솔루션 경쟁력을 강화해 글로벌 선두권 기업으로 도약한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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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원 SK그룹 회장이 2018년 10월 충북 청주에 위치한 SK하이닉스 M15 신공장 준공식에서 환영인사를 하고 있다. (SK하이닉스 제공)2018.10.4/뉴스1 | 이번 M&A 규모는 SK그룹은 물론 국내 기업 중에서도 가장 큰 규모여서 특히 주목받는다. 2016년 삼성전자가 미국 전장기업 하만을 인수할 때 쓴 80억달러보다도 10억달러가 많고, 2012년 2월 SK그룹이 하이닉스를 인수할 때 투자한 금액의 3배가 넘는다. 하이닉스 인수 당시 최 회장은 그룹 경영진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 3조4000억원을 들여 하이닉스 지분 21%를 인수한 바 있다. 정유와 통신과는 또 다른 반도체 사업영역에 진출한 SK는 2011년 16조원으로 시가총액 순위 13위에 머물던 SK하이닉스를 현재 61조원의 시총 2위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SK그룹은 이번 인텔 낸드플래시 사업뿐만 아니라 정유, 통신, 바이오 등 주요 사업 분야에서 활발한 M&A를 진행 중이다. 2017년 2월 SK종합화학은 다우케미칼 EAA부문을 4200억원에 인수했고, 같은 해 6월 SK바이오텍은 BMS 아일랜드 생산시설을 1700억원에 사들였다.
2018년 3월 SK텔레콤은 양자암호통신 기업인 스위스 IDQ를 700억원에, 같은 해 7월 지주사인 SK㈜는 미국 암팩을 5100억원에 각각 인수했다.
2019년 9월에는 SK실트론이 미국 듀폰의 SiC웨이퍼 사업부를 5100억원에 인수했고, 올해 6월 SK종합화학은 프랑스 아르케마 폴리머를 4392억원에 사들였다.
재계 관계자는 "1953년 작은 직물회사로 출발했던 SK그룹은 정유, 통신, 반도체, 바이오 등으로 사업영역을 넓히며 오늘날 재계 서열 3위 기업으로 성장했다"며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겨냥해 메모리에 과감하게 투자한 최 회장의 결단이 다시 긍적적인 결과를 가져올지 많은 관심을 끈다"고 말했다.
기사제공=뉴스1(시애틀N 제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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