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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11-08 16:21
[이효경의 북리뷰]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이윤기 옮김, 열린 책들ㆍ2000)
 글쓴이 : 시애틀N
조회 : 3,893  

이효경(UW 한국학도서관 사서)
 
밑줄을 그으며 읽어도 좋을 삶의 철학 담겨져 있어
  
 
그리스 하면 뭐니 뭐니 해도 그리스 신화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방대한 양과 복잡한 내용은 말할 것도 없고 신화에 등장하는 각종 신의 이름과 계보를 기억하기도 벅차다그리스인들에게 신의 이야기는 그들의 역사이자 문학이며 삶 그 자체이다.
 
여기 신이 아닌 인간의 이야기가 있다비록 소설 속의 인물이지만 실존 인물을 배경으로 했다는 『그리스인 조르바』의 주인공 ‘알렉시스 조르바이다.
 
지난 여름 ‘조르바는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시작했다조르바 때문에 어느 교수가 사표를 썼다는 말을 들은 것이 시작이었다조르바의 무엇이 안락한 직장을 포기하고 사표를 던지게 했는지 궁금했다
 
그러다 우연히 읽게 된 무라카미 하루키의 그리스 여행 체류기에서 다시 한 번 조르바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하루키는 그가 만난 그리스인들을 ‘조르바 같은 그리스인과 그렇지 않은 그리스인으로 이분화해서 인식하고 있었는데 과연 조르바는 어떤 인물인지 알고 싶어졌다.
 
책을 집어 들자 조르바 만큼이나 저자 니코스 카잔차키스에 대한 안내가 흥미롭다현대 그리스 문학을 대표한다는 카잔차키스는 노벨 문학상 후보로 지명될 정도의 뛰어난 문학성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작품의 성격이 신성을 모독했다는 이유로 인해 교회로부터 맹렬히 비난받고 금서로 지정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고 한다.
 
신을 모독한 인간의 이야기란다그것도 전 국민의 97% 이상이 그리스 정교회의 기독교인인 그리스에서 말이다.  
    
이쯤이면 고대 그리스 신화를 넘어서 현대 그리스 문학을 배워 보고자 이 책을 읽어볼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어 보인다.
 
책은 줄거리보다는 조르바와 소설의 서술자인 젊은 지식인과의 대화로 대부분 이루어져 있다둘 사이에 이어지는 대화는 온갖 주제를 넘나들며 그들만의 독특한 우정을 쌓는다.
 
 
색달라서 신선하다 못해 충격적이고 원시적
 
  
특히 조르바의 대사는 밑줄을 그으면서 읽어도 좋을 삶의 철학이 거침없이 담겨있는데 이 책을 읽는 재미의 백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색달라서 신선하다 못해 충격적이고 원시적이기까지 하다.
 
조르바의 대사보다 조르바를 더 잘 묘사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 책에서 몇 마디 인용해 보고자 한다.
 
육체에는 영혼이란 게 있습니다그걸 가엽게 여겨야지요두목육체에 먹을 걸 좀 줘요뭘 좀 먹이셔야지아시겠어요육체란 짐을 진 짐승과 같아요육체를 먹이지 않으면 언젠가는 길바닥에다 영혼을 팽개치고 말 거라고요
 
사람들 좀 그대로 놔둬요그 사람들 눈뜨게 해주려고 하지 말아요그래뜨여 놓았다고 칩시다뭘 보겠어요비참해요두목눈 감은 놈은 감은 대로 놔둬요꿈꾸게 내버려 두란 말이에요…… 만에 하나그 사람들이 눈을 떴을 때 당신이 지금의 암흑세계보다 더 나은 세계를 보여 줄 수 있다면…… 보여 줄 수 있어요?”
 
먹은 음식으로 뭘 하는가를 가르쳐 주면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나는 말해 줄 수 있어요혹자는 먹은 음식으로 비계와 똥을 만들고혹자는 일과 좋은 유머에 쓰고내가 듣기로는 혹자는 하느님께 돌린다고 합디다그러니 인간에게 세 가지 부류가 있을 수밖에요두목당신은 당신 나름대로 먹는 걸 하느님께 돌리려고 애를 쓰는 것 같소만 그게 잘 되지 않으니까 괴로운 거예요까마귀에게 일어났던 일이 당신에게도 일어나고 있는 겁니다원래 까마귀는 까마귀답게 점잖고 당당하게 걸을 줄 알았어요그런데 어느 날 이 까마귀에게 비둘기처럼 거들먹거려 보겠다는 생각이 난 거지요그날로 이 가엾은 까마귀는 제 보법(步法)을 몽땅 까먹어 버렸다지 뭡니까뒤죽박죽이 된 거예요기껏해야 어기적거릴 수밖에는 없었으니까 말이오.”
 
 
젊은 지식인은 이런 거침없고 야생마와도 인간 조르바를 크레타 섬을 향해 떠나기 위한 항구의 한 카페에서 우연하게 만나게 된다그 만남의 배경을 잠시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조르바를 만나기 전 젊은 지식인은 사랑했던 친구의 제의를 거절한 직후였다친구는 위험에 처한 그리스 동포를 구하기 위해 카프카스로 함께 떠나기를 바랐다친구로부터 행동하지 않는 지식인이라는 의미의 ‘책벌레라는 비난을 받고 젊은 지식인의 마음은 한없이 무거운 상태였다.
 
친구의 말 한마디는 자신이 평생 사랑해온 책과 잉크의 세계에 대한 회의를 느끼게 했는데 결국 그의 내부에서 조용한 혁명을 일으키기 시작했다친구와 그렇게 마지막 이별을 한 후젊은 지식인은 책벌레 족속들과는 거리가 먼 노동자광부 같은 단순한 사람들과 새 생활을 해보기로 마음을 먹고 크레타 섬의 갈탄 광 채굴을 시작하고자 떠난다바로 그 순간 조르바를 운명처럼 만나게 된 것이다.
 
조르바 영혼이 자유로운 인생을 살아라
조르바에게서 자신이 믿었던 이성과 정신 세계와 충돌 느껴

 
 
고뇌하는 젊은 지식인에게 조르바라는 인물은 놀라움과 감탄과 충격의 대상이 된다
조르바는 ‘지식의 세례를 받은 적이 없지만 교육받은 사람들의 이성보다 더 깊고 더 자신만만해’ 보였고 몇 년에 걸려 얻을 정신의 높이를 단숨에 닿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원시적이고 야성적인 영혼을 소유하고 있었지만 복잡하고 난해한 문제도 조르바는알렉산드로스 대왕이 고르디아스의 매듭을 칼로 자르듯이’ 풀어냈다.
 
이 호탕하고 농탕하기까지 한 조르바는 ‘인생의 신비를 사는 사람들에겐 펜대 운전할 시간이 없다며 젊은 지식인에게 냉소적인 태도로 자신과 같은 영혼이 자유로운 인생을 살라고 권유한다.   
 
당신의 그 많은 책 쌓아 놓고 불이나 싸질러 버리시구려그러면 알아요혹 인간이 될지?”
 
젊은 지식인은 조르바의 자연 그대로이며 지극히 인간 본연의 모습을 한 그의 삶에 점점 매료되기 시작한다자신이 믿어 왔던 이성과 정신의 세계와 충돌도 느낀다그런 지식인에게 조르바는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고 투쟁적으로 사는 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를 말하며 일침을 가한다.  
 
모든 것이 어긋났을 때자신의 영혼을 시험대 위에 올려놓고 그 인내와 용기를 시험해 보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보이지 않는 강력한 적(혹자는 하느님이라고 부르고 혹자는 악마라고 부르는)이 우리를 쳐부수려고 달려오는 것 같았다그러나 우리는 부서지지 않았다외부적으로는 참패했으면서도 속으로는 정복자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 인간은 더할 나위 없는 긍지와 환희를 느끼는 법이다외부적인 파멸은 지고의 행복으로 바뀌는 것이었다.”
 
전능하신 하나님당신이 날 어쩔 수 있다는 것이오죽이기밖에 더하겠소그래요죽여요상관 않을 테니까나는 분풀이도 실컷 했고 하고 싶은 말도 실컷 했고 춤출 시간도 있었으니… 더 이상 당신은 필요 없어요!“
 

무게를 극복하려는 인간이 처절한 노력을 이해하다
 

춤추는 조르바를 가만히 바라보며 지식인은 처음으로 ‘무게를 극복하려는 인간의 처절한 노력이자 인간의 신들린 역사를 이해해 가며 마음에 깊은 감동을 받는다.
 
그러나 지식인은 조르바의 자유로운 삶으로의 초대에 응하지 않는다자신의 내부에서 들리는 ‘신성한 야만의 목소리를 따르지 않고 정중하고 차가운 논리로 대신 귀를 기울인다그때 조르바의 마지막 편지가 도착한다.
 
두목이런 말을 해서 어떨는지 모르지만 당신은 가망없는 펜대 운전사올시다평생에 한 번이라도 그 아름다운 녹석을 봐야 하는 건데당신은 보지 않았어요젠장일이 없을 때 나는 자신에게 이렇게 물어봅니다지옥이 있습니까없습니까 하고. 그러나 어제 당신의 편지를 받고 나는 두목 같은 펜대 운전사에게는 지옥이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그 후 두 사람 간의 우정과 애정의 관계는 여기서 멈추게 되지만지식인의 조르바를 향한 회상은 그의 내부를 계속해서 요동시킨다.
 
내 친구는 이 땅에서 육체의 노예 상태를 해방시킬 시간죽음의 순간에 정복을 거부할 수 있도록 자신의 영혼을 계발시킬 시간이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었다나는그에게는 불멸의 것으로 만들어야 할 내부적 요소를 그렇게 만들 시간이 없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비록 조르바와 같은 길을 가지는 않았지만그와 더불어 크레타 해안에서 함께 보냈던 추억은 젊은 지식인에게 조르바에 대한 글을 쓰게끔 하는 거센 욕망으로 찾아왔다처음엔 애써 그 알 수 없는 힘을 강력히 거부하려 하나 결국 조르바의 연대기를 완성하기에 이른다
 
조르바의 말과 행적을 찾아 과거를 현재로 재현시키고 그를 마치 죽음에서 살려내듯 생생하게 조르바를 글로 재탄생시킨다산고 끝에 얻은 아이를 안은 기쁨처럼 탈고한 원고 앞에서 지식인은 조르바의 임종 소식을 듣게 되는 것으로 이 책은 끝이 난다.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고 싶은 욕망에 대한 대리만족


『그리스인 조르바』는 감동적이다이 책이 우리에게 큰 감동을 주는 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조르바처럼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고자 하는 보편적 욕망이 있다는 것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고 사는 현실을 시원하게 대리 만족하게 해주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것이 인간 조르바를 하늘의 신보다도 더 위대한 초인의 경지로 승격시켜 준다.
 
인생을 후회 없이 자신의 철학대로 육체를 이성으로 제어하지 않고 두려움 없이 살아간 조르바의 모습에 이 책을 읽는 독자는 묘한 대리 만족과 더불어 억압되었던 욕망이 해소되는 짜릿한 경험도 갖게 해 준다.
 
그러나 대부분의 우리는 조르바 보다는 이 젊은 지식인의 모습에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만난다조르바의 자유함을 동경하고 또 그것이 얼마나 숭고한지 신마저 대적할 수 있는 인간의 삶에 대한 투쟁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면서도 정작 우리는 조르바의 길을 걷지 못한다.
 
무엇이 젊은 지식인과 우리를 자유인이 되지 못하도록 막고 있는 것일까?
젊은 지식인의 고뇌는 아직 끝나지 않아 보인다그는 설령 펜대 운전사라는 모욕을 받을지언정 자신의 육체와 영혼을 진정으로 자유롭게 할 그 무언가를 찾아 계속해서 고민하고자 한다.  
 
조르바가 인간에게 있는 욕망 덩어리를 끌어안으면서 자유를 쟁취했다면젊은 지식인은 욕망의 덩어리를 욕망으로 느끼지 않으려고 자신의 영혼을 길들이며 자유를 정복하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욕망조차 느끼지 않는 인간의 영혼이야말로 인간이 추구해야 할 진정한 자유가 아닌지 질문을 던져 본다.
 
신을 거부하고 인간으로 몸부림치던 조르바의 인생도 결국 죽음 앞에서 그 육체는 끝을 맞이한다그의 자유로운 영혼도 육체와 함께 사라지고 우리 앞에 없다.
 
조르바를 보내고 이제 홀로 남은 이 젊은 지식인이 앞으로 어떤 길을 과연 선택하고내부에 들끓었던 조르바의 열기를 자신의 삶 속에서 어떻게 해결해 나가며 살아갈지 궁금하다책은 거기까지 우리를 안내하지 않는다왜냐하면그것은 우리 스스로 선택할 문제이고 우리의 삶이기에 그렇다.      
 
그리스 신화의 어떤 영웅보다도 더 감동적일 위대한 인간이야기는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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