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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11-17 17:33
[시애틀 문학]정동순 수필가/가을에 심는 씨앗
 글쓴이 : 시애틀N
조회 : 3,828  

정동순 수필가
 

가을에 심는 씨앗

 
가을이 깊어지니 바람이 불지 않아도 나뭇잎이 뚝뚝 떨어진다. 유난히 고왔던 단풍잎도 몇 장 남아 있지 않다. 거리에는 나뭇잎을 쓸어 모으는 기계음이 웽웽 요란하다

우기가 오기 전에 빗물길이 막히지 않도록 부지런히 낙엽을 청소하는 것이리라. 이렇게 또 한 해가 깊어간다. 하지만 올 가을은 쓸쓸하지는 않다.

몇 주 전에 화단에 심을 튤립 알뿌리를 사러 갔다가 원예사에게 가을의 정원관리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튼튼한 나무를 원한다면 겨울이 오기 전에 꼭 비료를 주어야 한다고 알려준다. 꽃이 진 장미 줄기를 잘라주고, 과일나무를 적당하게 가지치기를 하는 것도 가을에 해야 할 일이다. 낙엽을 긁어 모아 퇴비가 되게 하고 달팽이의 번식을 막는다. 특히, 원하는 과실수가 있으면 가을에 심어 겨울 동안 뿌리를 내리게 하는 것도 좋다고 했다.

가게에 다녀온 뒤로 나름 바쁘게 지냈다. 여름내 무성했던 토마토 줄기를 걷어내고 고춧대도 뽑아내었다. 진한 흙 냄새와 함께 탐스러운 지렁이가 나왔다. 흙을 골라 퇴비를 넣고 겨울에도 잘 자라는 배추와 갓을 심었다. 종자로 보관한 육쪽마늘도 줄을 맞추어 정성스레 심었다.

화단에는 튤립, 수선화, 히아신스도 심었다. 다른 꽃들이 결실을 보는 계절인 가을에 구근을 심어 두어야 봄에 화사한 꽃을 볼 수 있다. 올망졸망 밤톨같이 작은 그 알뿌리들이 겨울 동안 땅속에서 긴 어둠과 추위를 견디고 마침내 고개를 쑥 내밀고 꽃을 피워낼 것이다. 봄의 처음을 여는 그 꽃들을 생각하면 그냥 예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참으로 대견하다.

이렇게 긴 겨울을 겪고 나서야 제대로 꽃을 피우고 결실을 맺는 것은 이런 꽃들뿐이 아니다. 보리와 밀도 그렇다. 차가운 북풍과 눈보라 아래서 낮게 엎드려 조금씩 제 싹을 키운다. 예전의 농부들은 알고 있었다. 가을걷이가 끝났다고 해서 마냥 수확의 기쁨에 차 있기보다는 오는 봄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어렵던 시절, 사람들은 한겨울 눈 속에서 씩씩하게 자라는 밀과 보리를 보며 겨울을 인내하는 법을 배우고 봄이 올 것을 잊지 않았다.

가을은 믿음의 씨앗을 뿌리기에도 적합한 계절이다. 모든 것이 풍성하여 부족함이 없을 것 같을 때나 빈 가지만 있어 쓸쓸하고 한기가 느껴지는 계절일수록 추위를 딛고 자라는 씨를 골라 마음 밭을 일구어야 한다. 씨를 뿌린 사람은 한겨울이 되어도 든든하다. 한 줌 비추는 햇살이 다른 사람보다 몇 배는 더 반가울 것이고, 고마울 것이다.

아침에 보니 갓이 제법 손바닥만큼이나 자랐다. 싱싱한 보라 빛깔이 나를 기쁘게 한다. 마늘도 뾰족뽀족 제법 잎이 펴졌다. 가을에 심은 마늘은 5월쯤에 마늘종도 먹을 수 있고, 생마늘의 향기도 좋다. 여름이 오기 전에 수확의 기쁨을 누릴 수도 있다. 그뿐만 아니라 겨울에 창 밖을 내다볼 때, 저기 빈 밭에 갓이랑 마늘이 제 온 힘을 다해 생명을 키우고 있구나 생각하면, 그 생명의 역동성이 보는 사람의 마음에 전해질 것 같다.

집에 화단이 없더라도 또 다른 계절을 위하여 화분에 알뿌리 하나를 숨겨두고 긴 겨울을 맞을 채비를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봄이 어디쯤 오는지도 모르게 지친 어느 날, 그 녀석이 화사한 얼굴로 깜짝 선물을 전해줄 것이다. 한 해가 또 간다고 나이 드는 것만 서운해하기엔 시간이 너무 아깝다. 가을이나 겨울이나 모두 소중한 생명의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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