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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12-17 09:02
[시애틀 문학]김윤선 수필가/나무에서 부처를 만나다
 글쓴이 : 시애틀N
조회 : 3,304  

김윤선 수필가
(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 지부 회장)
 

나무에서 부처를 만나다

 
쓰레기 수거일이다
잔디 쓰레기통을 내어놓다가 현관 앞에서 울타리를 이루고 있는 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나무는 지난 여름동안 잘 자라주었다. 작년엔 거름이 부족했던지 한여름에도 빈가지로 지냈는데 그 바람에 이웃 보기가 여간 민망하지 않았다

올 봄엔 일찌감치 흙 갈이도 해주고 곰국을 끓일 때면 웃물도 식혀서 부어주었더니 어찌나 가지가 번성하던지, 집을 다 가릴 지경이었다. 남편은 진작부터 가지치기를 해야겠다고 하더니 말뿐, 기약이 없다.

가위를 들고 나섰다. 처음엔 그저 쓰레기 수거차가 올 동안 입구 쪽의 서너 가지를 잘라 사람이 드나드는데 부딪치지나 않게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한 번 가위를 들이대니 그게 아니었다. 이곳을 자르면 저곳이 눈에 띄고, 저곳을 자르면 또 다른 곳이 삐죽 나와 있는 것이었다. 아래를 자르면 위가 무거워 보이고, 위를 자르고 나니 옆이 눈에 거슬렸다. 꼭 복잡한 내 두통을 닮았다.

나무의 가지치기가 이럴진대 사람 사는 세상에서야 오죽할까, 한쪽을 취하면 다른 한쪽이 섭섭해하고, 다른 한편을 취하면 또 다른 편이 섭섭해 하니, 공정을 기한다는 명분은 자칫 상대방에게 냉정하고 야멸차기까지 하다. 급기야 내분의 조짐까지 보이고 나면 서툰 전지 솜씨로 나무의 모양새를 망가뜨리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웬만큼 정리를 하고 나니 듬성듬성 드러난 구멍으로 가지의 숨 쉬는 소리들이 들린다. , 이제 살만해. 주눅 들어 움츠리고 있던 놈들의 어깨 펴는 소리도 들린다.

, 이제 다리 좀 뻗겠네. 불현듯 드러난 때문인지 는적거리던 거미가 얼른 안으로 몸을 숨긴다. 한여름 햇빛을 피하기에 이보다 더한 곳이 또 있었을까, 게다가 가만히 있어도 절로 찾아오는 벌레들이 실수로 그물망에 닿기만 하면 제 밥이니 오죽 좋았을까. 참 영악한 놈이다.

그런데 겉에서 보기보다 안이 부실하다. 누런 이파리들이 많다. 햇빛이 부족했는지 아니면 물이 부족했는지 빈 가지들도 많다. 그때서야 봄에 웃자란 가지들을 쳐주지 않았다는 생각이 났다. 피폐한 가지에 새잎 나는 게 반가워서 내버려두었더니 그게 화근이었다. 저들도 그랬다.

황폐한 땅에 거름을 부어주자 종족이 끊길세라 가지 뻗는데 급급했던 모양이다. 새 가지에 잎이 무성하면서 나무는 지금 주저앉을 것 같다. 지나치면 오히려 모자람보다 못하다더니 그렇다.

짐이라곤 이민 가방 네 개뿐이던 우리는, 시애틀에 도착한 다음날 아침에 신문지를 펼쳐 놓고 아침 식사를 했다. 빈 아파트엔 된장과 멸치, 고춧가루와 세 식구의 수저와 옷가지 몇 벌뿐이었다. 한편으론 언제라도 손쉽게 돌아가려는 속셈이었으리라

그러나 예측할 수 없는 게 사람 사는 일이 아니던가. 이곳에서 집을 사고 가구를 들이고 텃밭을 가꾸게 될 줄은 미처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집안의 공간들이 점차로 비좁아지면서 그때 좀 더 넓은 집을 선택하지 않은 걸 후회하는 날이 많아졌다. 그런 요즘의 내가 울타리 나무와 무엇이 다르랴.

내친 김에 뒷마당을 둘러보았다. 꽃이 진 백합은 줄기가 누렇게 변해 있고 그 새로 뒤늦게 핀 코스모스가 한들거리고 있다. 한때 뒷마당을 한 폭의 그림으로 수놓았던 꽃들이지만 제 철 지나고 나니 덧없다. 마른 줄기들을 걷어내고 나니 마당이 한결 단정하다

그런데 저쯤, 담장 모퉁이엔 어느 새 무성해진 호랑이발톱나무가 아젤리아를 위협하고 있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는 격이다. 바람에 날아와 이곳에 둥지를 튼 게 기특해서 내버려두었더니 어느 새 뿌리가 깊다.

뽑아낼 게 그뿐일까, 어느 새 찬장 가득 들이찬 그릇과 나중에 읽을 거라는 핑계로 재여 있는 서가의 책들과 자리만 지키고 있는 옷과 그릇들. 내 안의 욕심이다. 그런데 예금자산이라곤 달랑 29만원뿐이라던 전직 대통령의 재산이 기천 억 원에 이른다는 보도가 듣는 이의 마음을 허탈하게 한다. 그도 우리 집 울타리나무처럼 피폐한 마음에 닥치는 대로 욕심의 가지를 뻗어나간 것일까. 곳곳에서 일고 있는 크고 작은 단체들의 세력다툼 또한 마찬가지다.

호랑이발톱나무에 가위를 들이댄다. 덥석 큰 가지 하나를 자르니 밑에 숨 죽어있던 아젤리아가 놀란 듯 호들갑을 떤다. 다른 쪽 가지 하나를 또 자른다. 휑하니 넓어진 공간에 바람이 들이찬다. 짓눌려 있던 아젤리아 이파리들이 바람에 흔들거린다

올 여름엔 날씨가 좋아서인지 아젤리아도 잎이 무성해 가지가 휘청거린다. 이참에 아젤리아도 가지치기를 해야겠다. 방향을 보아가며 서너 군데 가지를 치고 나서 허리를 굽혀 떨어진 가지들을 줍는데 아젤리아가 내게 속삭인다.

“내려놓아라. 무거운 네 머리를 식히려면 욕심을 내려놓아.

깜짝 놀라 고개를 드니 아젤리아가 부처의 모습으로 앉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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